분양가의 25%만 내면 입주가 가능하다고?
  •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gil@sisajournal-e.com)
  • 승인 2020.09.20 11:00
  • 호수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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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적립형 분양주택 실효성 논란…입주 때 준비금 예상보다 높아

정부는 지난 8월4일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분양주택 모델로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주택은 분양가의 20~40%만 내면 입주가 가능한 게 특징이다. 다만 처음부터 완전한 내 집은 아니다. 나머지 지분은 20년 혹은 30년에 걸쳐 나눠 취득하게 되는데, 자신의 지분이 100%가 되기 전까지는 공공과 공동 소유하는 구조다.

정부와 서울시는 기존 공공분양에 비해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의 초기 취득자금 부담이 적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점이 낮아 청약이 어렵거나 자금이 넉넉지 못한 무주택자들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더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집값 폭등과 공급 부족 불안감에 3040세대를 중심으로 급증한 주택 ‘패닉바잉(공포심에 따른 매수)’을 진정시키겠다는 복안도 담겨 있다.

김세용 SH공사 사장이 8월12일 서울시청에서 지분적립형 주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세용 SH공사 사장이 8월12일 서울시청에서 지분적립형 주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수요자들 반응은 ‘시큰둥’

하지만 정책 당국의 기대와 달리 실수요자들 사이에선 입주 때 준비해야 하는 금액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가 예로 든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의 마곡9단지 전용면적 59㎡에 적용해 보면 수분양자는 입주 때 분양가 5억원의 25%인 1억2500만원을 마련해야 한다. 초기 자금에 대해선 대출받을 수 있지만 제한이 있다. 서울은 투기과열지구이니만큼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40%만 적용된다. 분양가격 5억원이 아니라 초기 취득금액 1억2500만원의 40%(5000만원)만 대출이 가능한 것이다.

더군다나 취득하지 못한 나머지 공공지분에 대해서도 행복주택 수준의 보증금과 임대료를 내야 한다. 유사한 지역의 행복주택 공급 사례를 기준으로 최초로 입주할 때 내야 하는 임대료는 대략 보증금 1억원, 월임대료 14만원 수준이다. 초기 취득금액 1억2500만원과 임대보증금 1억원을 더하면 입주 때 2억2500만원이 필요한 셈이다. 월임대료는 별도다. 목돈이 부족한 경우 임대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전환할 수 있는데, 최대 절반을 전환하면 임대보증금은 1억7000만원으로 줄어든다. 다만 월 임대료는 31만원으로 늘어난다. 획득 지분이 점차 증가하면 초기에 납입했던 보증금을 돌려받아 지분 취득에 보탤 수 있고, 임대료도 점점 낮아지게 된다.

일각에선 시중은행에서 대출받는 게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으로 집을 취득하는 것보다 금전적인 부담이 덜하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 예로 든 마곡9단지의 경우 먼저 취득한 지분 25%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 75%는 20년 동안 살면서 15%씩 나눠 총 5번, 4년마다 1회당 7500만원을 추가로 납입해 취득하게 된다. 4년마다 7500만원을 모으기 위해선 해마다 1875만원의 저축이 필요하며, 월 156만원을 모아야 한다. 여기에 월 임차료 14만원을 가산하면 대략 매월 170만원이 필요하다.

반면에 초기 부담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2억5000만원)을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만기 20년, 연 3% 금리)로 빌려 원리금균등상환 방식으로 갚는다면 월 부담금은 138만6494원이다. 현재 시장의 주담대 금리 수준이 2%대임을 감안하면 주담대가 입주자에게 유리한 셈이다.

오는 11월 결혼을 앞둔 30대 수요자는 “그동안 집을 매입하지 못한 3040세대 중 현찰 2억원을 들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며 “대출을 이용한다고 해도 매월 수십만원에 달하는 이자를 부담하면서 추가 지분 취득금액을 모아야 하고 취득세와 보유세 등 세금도 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전매 제한이다. 정부는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을 분양받을 경우 투기 방지를 위해 전매 제한 20년(서울시 10년 검토 중), 5년 실거주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처분 시에도 소유한 지분만큼의 수익만 가져갈 수 있다. 보유지분이 적으니 가격 상승에도 시세차익이 적고, 주택을 매각할 유인이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분할기간을 20년으로 설정했다면 10년이 됐을 때 지분은 50%다. 만약 전매 제한기간이 끝나고 주택가격이 2억원 상승했다면 수분양자와 SH가 각각 1억원씩 나누게 된다. 취득세, 보유세 등 세금도 지분에 따라 나눠서 내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전매 제한으로 투기 수요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실수요자들의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전매 제한”이라며 “주택이라는 게 평생 쓰는 게 아니라 옮겨 다니는 게 정상적인 주거 생애 주기인데 싸게 받았다고 해서 눌러앉으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역시 “정부가 제시하는 평수들은 20평형대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데 자녀가 자라면서 30~40평형대 넓은 평수로 가야 하는 수요자들은 10년 혹은 20년 전매 제한에 묶여 곤란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 우리나라의 평균 거주기간이 7년임을 감안하면 10~20년 전매 제한은 과도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문가들 “10~20년 전매 제한은 과도”

시장 전문가들 역시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이 큰 실익이 없는 만큼 3040세대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울 것으로 진단했다. 김학렬(필명 빠숑)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정부나 서울시에서 정책을 내기 전에 시장조사를 하거나 반응을 봤어야 하는데, 시간에 쫓기다 보니 그러지 못한 것 같다”며 “아직 날짜나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은 만큼 지금 제도 실효성에 대해 논의할 가치도 없다”고 지적했다.

지분적립형 분양주택를 공급할 부지의 불확실성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서울시는 2028년까지 서울시에 총 1만7000가구의 지분적립형 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서울의료원을 시작으로 △상암동 DMC 미매각 부지(2000가구)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3500가구) △SH 마곡 미매각 부지(1200가구) 등에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지분적립형 주택이 도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중 구체적인 공급 날짜가 확정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아울러 대다수 지자체 및 주민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어 향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불협화음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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