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울에서 성남까지 왔어요 너무 배고파서”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8 14:00
  • 호수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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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發 무료급식 중단에 끼니 위협받는 취약계층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9월16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성남동성당 마당이 갑작스레 북적였다. 한두 명씩 모여들다가 일정한 대열을 이룬 사람들은 뙤약볕을 그대로 맞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뭔가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노인이 많았고 20~30대도 간혹 보였다. 대부분 모자를 푹 눌러썼고 피부는 구릿빛을 넘어 붉은빛을 띠었다. 

이들은 노숙인, 독거노인, 쪽방촌 주민 등으로 불리는 취약계층이다. 리어카를 끌고 나타난 노숙인 최아무개씨는 “근처의 모란고가교 밑에서 지내고 있다”며 “(사회복지시설인) ‘안나의 집’이 주는 밥을 먹기 위해 여기 왔다”고 전했다. 옆에 있던 한 노인은 “산성역 쪽 월세방에 산다”면서 “더 묻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황급히 자리를 떴다. 

ⓒ시사저널 임준선
‘안나의 집’ 구성원들이 취약계층에게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도시락이라도 주는 곳 찾아 대이동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가뜩이나 힘겹던 취약계층의 삶을 더욱 궁지로 내몰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속에 수많은 무료급식소와 사회복지시설이 문을 닫아서다. 끼니를 때우기조차 어려워진 이들은 주먹밥, 도시락이라도 나눠주는 시설을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하기도 한다. 

‘안나의 집’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중단 없이 양질의 도시락을 취약계층에게 제공해 왔다.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안나의 집’을 찾는 사람은 점점 더 늘어났다. ‘안나의 집’ 운영을 총괄하는 김하종 신부는 “얼마 전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을 때 80대 노숙인이 ‘(다니던)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아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전 성남동성당 맞은편에 있는 ‘안나의 집’은 월~토요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무료급식소를 운영했다. 방역 당국이 지난 2월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을 당부한 이후 무료급식소는 쭉 사람들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급식소의 밥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급식을 도시락 제공으로 대체한 것이다. 김 신부는 “많은 인원이 모여 식사할 경우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에 성남시청에서 급식소 운영을 중단해 달라고 했다”며 “고민 끝에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도시락을 나눠주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도시락 전달 시간인 오후 3시를 1시간30분여 앞두고 ‘안나의 집’ 급식소에선 도시락 포장이 시작됐다. 먼저 김 신부가 모두의 안전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조리팀이 만든 제육덮밥과 깻잎지, 김치, 된장국은 김 신부와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개별 포장됐다. 주황색 앞치마와 모자, 비닐장갑 등을 꼼꼼히 착용한 자원봉사자들은 말없이 포장작업에 매진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부식을 옮기고 있는 김하종 신부와 자원봉사자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줄 서서 도시락을 받아가는 사람들 ⓒ시사저널 임준선

업무 강도 높아지고 예산은 빠듯해져 

업무 강도는 코로나19 사태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5년째 ‘안나의 집’ 주방장을 맡아온 조동석씨는 “급식소를 운영할 땐 정돈된 시설 내에서 3시간여 동안 천천히 배식하면 됐는데, 도시락으로 바뀌면서는 한꺼번에 (음식 만들기, 포장 등에) 힘을 쏟아부어야 해서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찾는 이가 많아짐에 따라 도시락 개수도 늘려왔다”며 “다른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기 전엔 550개 정도였던 도시락 준비 물량이 요즘은 650~700개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1999년부터 자원봉사를 해 온 이상원씨도 “원래 ‘안나의 집’ 정문 앞에서 도시락을 제공하다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한)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돼 전달 장소를 성남동성당 마당으로 옮기게 됐다”면서 “성당이 협조해 줘서 다행이긴 하나, 도시락을 그쪽으로 일일이 옮겨야 해 다소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다. 비가 내리면 더 어려워진다”고 했다. 

누적된 피로야 보람으로 극복하고 있지만, 예산과 안전 문제는 불가항력이다. ‘안나의 집’은 소액 후원금, 정부 보조금 등으로 빠듯하게 살림을 꾸린다. 중단된 무료급식과 청소년 방문 상담을 제외하고 노숙인 자활시설, 청소년 쉼터, 공동생활가정 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후원금 모금 활동이 급격히 위축된 상황이다. 급식소 운영보다 훨씬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도시락 제공 사업을 계속 진행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 못 한다. 

더군다나 실무자나 자원봉사자, 찾아오는 취약계층 가운데 단 1명이라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 모든 활동은 ‘올스톱’된다. 김 신부는 “매일같이 그야말로 기적처럼 도시락 제공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시락 제공 장소인 성남동성당 출입구에는 발열 체크기, 손 소독제 등이 갖춰져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일일이 방문자들 상태를 확인했다. 아울러 혹시 모를 감염 위험 차단을 위해 연신 “조금만 떨어지세요” “천천히 와주십시오” “간격을 유지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전달 시간 10분 전 김 신부가 대기 중이던 한 무리를 향해 “오셔서 도와주세요!”라고 외치자 노인 4명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서로 힘을 합쳐 구멍이 숭숭 뚫린 낡은 천막을 설치했다. 간이 배식대도 뚝딱 마련됐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간격을 두고 마당을 메운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김 신부를 따라 두 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함께 “안녕하십니까”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늘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바쁘세요?” 김 신부는 기자에게 페이스 실드를 건네며 마스크 배급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안나의 집’은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마스크를 같이 제공하고 있다. 옆에 있던 (주)유디 직원들도 후원 물품(칫솔)을 전하고 가려다 발길을 되돌려 부식인 호빵 전달을 도맡았다. 

ⓒ시사저널 임준선
성남동성당 마당에서 도시락을 기다리는 사람들(위) 사람들이 발열 체크 후 손 소독제를 바르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노숙인 면역력 증가, 전체의 안전에 도움” 

노란 비닐봉지에 담긴 도시락과 마스크, 호빵이 붉게 그을린 손, 퉁퉁 부은 손, 장애로 불편한 손에 쥐어졌다. 웃는 사람, 무표정인 사람, “할렐루야”라고 외치는 사람 등 반응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모두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주는 이와 받는 이’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지난주부터 이곳에서 자원봉사해 온 취업준비생 고은지씨는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몸을 씀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이 커질수록 도시락 제공, 방역 강화 등으로 한 단계씩 더 깊이 들어가 봉사하게 됐다. 덕분에 8개월간 찾아오는 취약계층과 실무자, 자원봉사자 중에 단 한 명도 감염되지 않았다”면서 “끼니를 거르지 않게 된 취약계층의 면역력이 증가해 아프지 않음으로써 다른 국민들도 건강해질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오후 5시쯤 도시락이 소진된 후에도 드문드문 사람이 찾아왔다. ‘안나의 집’ 구성원들은 자리를 지키며 빵, 과자 등을 나눴다. 한 사람도 그냥 보내지 않기 위해서다. 한 노숙인이 멀리서 큰 소리로 “잘 먹고 갑니다!”라고 인사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모두의 땀을 식혔다.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 종로구 전국천사무료급식소 앞에 무료급식을 일시 중단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무료급식소·복지시설 정상화 ‘불투명’ 

코로나19 재확산세가 거세던 지난달 말 기준 노숙인 등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서울 시내 단체 54곳 중 17곳(31.5%)은 운영을 중단했다. 무료급식소뿐 아니라 사회복지시설 이용도 제한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월부터 사회복지시설 3601곳에 대해 무기한 휴관 조치했다. 노인종합복지관 36곳, 종합사회복지관 98곳, 경로당 3467곳이 포함됐다. 

서울 등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조치가 지난 9월14일 해제됐지만, 2단계 조치는 9월27일까지 유지된다. 이에 따라 실내 50인 이상, 실외 100인 이상이 대면으로 모이는 사적·공적 모임, 행사가 금지되고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휴관 및 휴원 권고도 그대로 이어진다. 

혹시 모를 감염 우려에 다른 지역 무료급식소들도 상당수 문을 닫은 상태다. 도시락이나 주먹밥 등을 제공하는 대체 급식으로 운영을 재개한 곳들도 수도권발(發)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다시 활동을 접었다. 

아직도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코로나19의 산발적 감염이 발생하고 있다. 신규 확진자 수는 2주 이상 100명대에서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8월 중순부터 시작된 급격한 확산세가 한풀 꺾였음에도 긴장감은 여전하다. 곳곳에서 중소 규모의 집단감염이 잇따르는 데다 언제, 어떻게 감염됐는지 분명하지 않은 환자 비중도 전체의 4분의 1에 이른다. 언제든 사태가 다시 악화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무료급식소와 사회복지시설이 언제 다시 코로나19 사태 이전처럼 운영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갈 곳 없는 취약계층은 그 어느 때보다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김하종 신부는 “(코로나19, 태풍 등으로) 많은 국민이 고생하고 있는 때에 정부가 재난문자, 대피소 안내 등을 통해 신경 쓰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라면서 “그러나 더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지원 방안도 고민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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