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 떨어진 의원들, ‘로펌’ 가거나 아니면 ‘대기업’ 가거나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0.10.06 10:00
  • 호수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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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20대 국회의원 취업 실태 조사
17명 중 11명 대형 로펌행…로펌의 국회 대관업무 확대와 무관치 않은 듯

최근 추혜선 전 정의당 의원이 LG유플러스 비상임 자문직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됐다. 추 전 의원은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의원 퇴임 후 상임위의 피감기업으로 직행한 것은 ‘이해충돌’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정의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9월4일 정의당은 “추 전 의원이 국회의원 임기 종료 후 피감기관에 취업하는 것은 재벌기업을 감시해 왔던 정의당 의원으로서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밝혔다. 결국 추 전 의원은 비상임 자문직을 사임했다.

ⓒ일러스트 정찬동

대기업 중 LG에서 유독 전직 의원 채용 많아

시사저널은 이번 추 전 의원 논란을 계기로 다른 전직 의원들의 경우는 상황이 어떠한지 살펴봤다. 8월까지 공개된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심사 결과를 토대로 전직 의원과 관계자들을 취재했다. 전직 20대 국회의원 155명 중 현재 17명이 퇴직공직자 취업심사를 신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모두 국회로부터 ‘취업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국회가 공개하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는 개인정보보호법상 이름과 정당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와 시자저널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국회윤리위에 취업심사를 청구한 20대 의원 17명 중 절반 이상이 김앤장·율촌·대륙아주 같은 대형 로펌을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한 전직 의원 17명 중 이름이 확인된 13명의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2명,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8명, 민생당 1명, 정의당 1명, 무소속 1명 등이었다. 4명은 이름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들 중 로펌을 택한 의원은 총 8명이다. △최운열 전 민주당 의원-김앤장 법률사무소 비상임자문 △조배숙 전 민생당 의원-법무법인 로고스 상임고문변호사 △손금주 전 무소속 의원-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김재원 전 통합당 의원-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김정훈 전 통합당 의원-법무법인 충정 고문변호사 △최교일 전 통합당 의원-법무법인 해송 대표변호사 △윤상직 전 통합당 의원-법무법인 율촌 고문 △강효상 전 통합당 의원-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등으로 확인됐다. 이 외에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전직 의원 중엔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한결, 예일회계법인 등에 3명이 취업한 것으로 보인다. 로펌에 취업한 의원은 총 11명이 되는 셈이다.

기업으로 간 전직 의원은 5명이다. 특히 LG가 전직 의원 채용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LG유플러스 취업을 철회한 추 전 의원을 포함해 통합당 소속인 장석춘 전 의원과 김규환 전 의원이 LG전자 자문으로 재취업했다. 20대 국회의원이었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임기 도중에 의원직을 상실한 최명길 전 민주당 의원도 9월 LG화학 경영자문직으로 영입됐다.

강석호 전 통합당 의원은 가족회사인 삼일 고문으로 입사했다. 지난 7월 강 전 의원은 국회윤리위에 취업심사를 청구했다. 삼일은 포항에 위치한 대형 운수기업이다. 강 전 의원은 과거 삼일 부회장과 상임고문을 지냈다. 강 전 의원은 “취업심사를 받았지만,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입사할지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이외 언론사 헤럴드에 취업한 전직 의원 1명도 있었다. 

로펌 GR팀, 퇴직 의원 로비 창구로 

취업심사를 신청한 전직 의원들은 대부분 지난 5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취업 예정일자는 6월과 7월이었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상당수 의원이 퇴직한 후 자신이 갈 자리를 미리 점지해 둔다. 아마 4·15 총선 전부터 재취업할 곳과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 물망에 오른 이훈 전 민주당 의원은 내정설이 파다하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 전 의원은 8월 사장 후보자로 지원했다. 아직 그는 사장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다. 다만 8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에는 이 전 의원이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으로 9월부터 취업(예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취업한 전직 의원 이력과 업체(회사)를 분석한 결과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났다. 율사 출신, 특정 상임위 그리고 로펌행 등에 편중된 현상이다. 취업한 전직 의원들 중 절반 이상이 국회에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름이 확인된 13명 중 산자위 6명, 과방위 4명, 정무위 3명 등이었다. 손금주 전 의원은 20대 국회 전·후반기 산자위와 과방위 소속이었다. 김정훈 전 의원은 산자위와 정무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왜 이런 특징이 나타날까. 이는 최근 로펌들이 입법자문인 ‘국회 대관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기업 입법을 관리·감독하는 상임위 출신 의원들을 선호하는 현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로펌은 기업들의 대관 활동 축소로 일명 ‘정부관계(GR·Government Relation)팀’을 확대 개편하면서 퇴직한 고위 공직자를 공격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대관이란 입법·사법·행정 기관을 상대로 기업의 이익을 관철하는 업무를 포괄적으로 뜻한다. 쉽게 말해 로비 활동이다. 대관 활동은 기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상임위인 산자위·과방위·정무위 국정감사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대기업 오너나 임원들은 해당 상임위 국감 때마다 증인으로 불려 나간다. 증인석에 앉아 의원들의 질타를 받으며, 망신살이 뻗치는 일은 연례행사에 가깝다.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을 입안하는 과방위는 국내 포털 뉴스 편집과 관련된 네이버와 카카오 등의 경영진을 넘어 창업주 소환까지 언급하고 있다. 강제 결제 논란으로 구글코리아 사장의 증인 신청도 검토 중이다. 산자위는 아직 국감 증인 채택을 하지 않은 상태다. 다만 지난해 산자위 국감 때 여수산단 오염물질 측정치 조작 논란으로 한화케미칼·LG화학·GS칼텍스 등의 대표와 임원들이 대거 증인으로 출석해 기업들이 곤욕을 치렀다. 금융권 및 기업 공정거래와 관련이 깊은 정무위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증인 채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금융사와 대기업이 안도했다.

기업 대관팀은 국감 때마다 증인 출석 명단에서 자사 오너와 임원들의 이름을 빼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국회를 찾아간다. 대기업의 한 대관 관계자는 “증인 명단에 오너 이름이 올라오면 비상이 걸린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오너 이름을 빼야 한다. 그게 대관의 일이다”고 귀띔했다.

로펌들이 GR팀을 확대하고 있는 건 기업의 아웃소싱(외주화)이 크게 늘어서다. 그동안 기업들은 국회 대관팀을 직접 운영했다. 하지만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와 함께 각 사의 대관팀이 각종 비리에 연루되면서 기업들은 대관 조직을 없애거나 축소했다. 2017년 2월 삼성그룹은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한화그룹도 대국회 업무를 담당했던 경영기획실을 없앴다.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과 전·현직 공무원 접촉 사전 신고제 등도 기업 대관 활동에 큰 제약으로 작용했다.

낙선한 의원 중 취업이 가장 수월한 건 역시 변호사들이다. 오랫동안 국회에서 근무한 한 보좌관은 “의원들은 배지가 떨어지면 당장 할 게 없다. 요즘에는 구설에 오를까 봐 기업에도 잘 안 간다”며 “반면에 판검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출신 의원은 본업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일자리(로펌)를 잘 찾아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율사 출신 전직 의원은 대부분 변호사 신분으로 돌아갔다.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든 대형 로펌에 가든, 본업이기 때문에 취업할 명분도 있다. 물론 전직 의원의 대형 로펌행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지만, 대기업에 취직한 추 전 의원처럼 공분의 대상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이런 비난에서 한발 비껴난 측면이 있다.

일각에서는 본업이라는 명분으로 율사 출신 의원들이 대형 로펌에 취직해 사실상 대기업 ‘로비 창구’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대표는 “변호사 자격이 있다고 해서 대형 로펌에 가는 건 규제해야 한다. 대형 로펌의 고객은 주로 대기업이다”며 “로펌에 취직해 대기업과 직접 관련된 사건을 맡게 된다면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앤장·율촌·대륙아주, 대외협력 업무 점점 늘려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대형 로펌들이 최근 대기업들의 의뢰를 받아 기업 이익에 반하는 법규와 규제에 대응하는 일이 많아졌다. 유권해석 요청,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원 민원, 입법 청원 등 사법·입법·행정 등 모든 절차를 동원해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정부 관계자 설득뿐만 아니라 의견 전달 및 과정도 컨설팅한다. 이를 위해 로펌들이 퇴임 의원과 고위 공직자를 영입해 정부, 국회, 지방자치단체, 각종 기관을 접촉하는 인적 네트워크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나타난 20대 국회의원들이 재취업한 김앤장과 율촌, 대륙아주 등은 대외협력 분야의 강자로 꼽힌다.

김앤장은 국내 로펌 중 대관 업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장차관과 고위 관료 출신 등으로 구성된 고문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장 최근에는 2017년 퇴임한 이기권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율촌은 20~40명 규모로 GR팀을 운영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7월에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대륙아주는 대관업무 컨설팅과 경영법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법전략센터를 운용 중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때 핵심 인물로 꼽혔던 이승철 전 전경련 부회장이 입법전략센터 고문으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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