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 기업 대관 조직의 명과 암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10.06 10:00
  • 호수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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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키운 ‘기업 대관팀’, 열 ‘사업팀’ 안 부럽다?

지난해 3월 한 기업의 직원이 국회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출입증을 받급받았다가 구설에 휘말렸다. 이 직원은 중견 가구업체 홍보팀에 근무하는 A씨. 당시 국회를 상대로 로비를 하는 대관(대외협력)업무를 전담하고 있었는데, 한 의원실의 입법보조원으로 편법 등록해 국회 본청이나 의원회관 등을 마음대로 드나든 것이다.

A씨에게 출입증을 발급해 준 곳은 어머니가 있는 P의원실이었다. 이른바 ‘엄마 찬스’를 쓴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A씨는 출입증을 반납했다. P의원은 “보좌관이 출입증을 발급했고 나중에 보고를 받고 알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기업 직원이 국회의원 어머니 덕분에 받은 출입증을 이용해 입법기관을 마음껏 휘젓고 다녔다는 점에서 한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대관팀 구설

올해도 구설은 이어졌다. 피해액만 1조60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라임자산운용 사태가 최근 불거졌다. 라임 사태의 핵심 인사와 여권 인사의 연결고리로 SK 대외협력팀에 근무했던 B씨가 지목됐다. B씨의 공식 직함은 SK텔레콤 고문. SK텔레콤의 대외적 민원을 해결하는 일이 B씨의 주된 업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무급 연봉에 법인카드와 수도권 골프장 회원권까지 회사 측에서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일자 SKT는 3년간 이어진 고문 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막대한 보수를 주면서 청와대와 국회, 사정기관의 전직 인사들을 영입한 대기업의 대외협력팀에 대한 궁금증은 계속 증폭됐다.

기업 대관 조직은 말 그대로 국회와 정부부처, 사정기관 등을 상대하는 업무를 한다. 평소에는 출입처를 관리하고 정보를 수집하지만, 중요한 현안이 있을 때는 물밑에서 해결사 역할을 해 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외협력팀은 회사 내부에서도 어떤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하나만 제대로 처리하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매출 부서 이상의 가치를 내는 게 바로 대관팀이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주요 그룹들은 적게는 10명대, 많게는 30~40명의 대외협력팀을 운영해 왔다. 오래전 민영화됐음에도 정권 교체기마다 권력의 입김에 시달려야 했던 KT와 포스코가 대표적이다. 이들 회사 CEO들의 경우 연임 후 임기를 채운 사례가 거의 없다. 새로운 정권이 보내는 시그널을 무시하거나 버티다가 검찰과 경찰, 국세청 등 사정기관의 파상 공세를 받아야 했다. 이 때문에 역대 회장들은 보험 차원에서 사정기관이나 국회 출신 인사들을 데려와 로비 창구나 바람막이로 활용했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았다. 

건설이나 유통, 제약회사 등도 전통적으로 대외협력 조직이 강하다. 정부의 인허가나 규제에 따라 실적이 좌지우지되는 만큼, 정부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대외협력 조직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10대 그룹 중 하나인 C그룹의 경우 최근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유관기관과의 연결고리가 모두 끊어졌다”면서 “당시 대외협력 조직이 지연과 학연을 모두 동원해 겨우 정부부처와의 관계를 복원시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기업 간에 중요한 현안이 충돌할 때는 양측 대외협력 조직이 총출동해 물밑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삼성그룹과 CJ그룹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2년 발생한 이맹회-이건희 형제간 재산 다툼으로 두 그룹은 진흙탕 싸움을 이어갔다. 서로에게 밀어줬던 일감을 회수하는 것은 기본이다. 회사와 관련해 온갖 안 좋은 소문이 국회나 사정기관 주변에 무성하게 퍼졌는데, 배경으로 두 그룹의 대외협력팀이 지목됐다.

국정감사 때는 기업 총수나 CEO가 증인으로 불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대외협력팀이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어떤 기업의 총수가 증인으로 불려갔는지에 따라 그해 각 그룹 대외협력팀의 활약 정도가 평가됐을 정도다. 팀장을 포함한 대외협력팀 직원들이 대부분 정치권이나 사정기관 출신들로 채워진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8월 국회를 그만두고 재취업한 4급 이상 고위 공무원은 모두 45명이다. 이 중 기업에 재취업한 인사는 58%인 25명이었다. 범(汎)LG가가 5명으로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쿠팡(3명), KT(2명) 순이었다.

국회의원의 경우 보통 기업의 경영자문이나 법무법인 및 회계법인의 자문위원을 선호했다. 하지만 4급 상당이나 그 이상의 보좌관의 경우 전문 경력직으로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당 기업들은 “재취업 규정을 모두 준수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하지만 기업으로 간 전 국회 직원들이 대외협력팀에 배속된 후 국회 담당으로 돌아오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재계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 국세청, 공정위, 금감원 등 사정기관으로 범위를 넓히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넘겨받은 ‘퇴직자 재취업 심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재취업한 금감원의 4급 이상 고위 직원은 모두 34명이다. 이 중 76%(26곳)가 금융사에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기관을 감독하던 금감원의 직원들이 금융사에 재취업한 후 바람막이가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배보찬 야놀자 경영지원부문 대표, 조민수 코스트코 코리아 대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왼쪽부터)가 지난해 10월21일 국회에서 열린 산자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퇴직한 공직자 58%, 기업에 재취업

최근 들어 대외협력 조직의 위상이 예년만 못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6년 9월 공식 시행된 일명 ‘김영란법’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검찰 개혁 이슈 등으로 공무원들이 기업인들과 만나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룹 총수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구속됐던 삼성그룹의 경우 대외협력과 정보조직이 포함된 미래전략실을 해체한 상태다. 한화그룹도 그동안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대외협력팀을 모두 해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KT의 새 수장에 오른 구현모 사장의 경우 기업영업 부문과 대관 등 대외업무 부서의 법인카드 한도를 0원으로 만들었다. “사실상 일을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는 푸념이 내부에서 들릴 정도다. 대신 준법경영 강화 차원에서 검찰과 경찰 출신 고위 인사들을 잇달아 영입한 후 법무실 등에 배속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대외협력팀이 전담하던 사업 인허가나 규제 관련 로비 업무가 최근 대형 로펌이나 컨설팅 회사로 넘어가는 게 최근의 추세”라면서도 “하지만 대외협력팀이 하는 업무는 보통 은밀히 진행되는 만큼 외부에 맡기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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