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명 “《소리도 없이》는 봄날의 낮술 같은 영화”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10 12:00
  • 호수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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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배우, 유재명

배우 유재명. 그는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40대 배우이자, 그 나이대 배우가 욕심낼 만한 굵직한 역할을 독식하다시피 하는 ‘섭외 0순위’ 연기자다. 호불호 없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이며, 장르 불문 천의 얼굴을 가진 연기파 배우다. 그러고 보면 그는 어느 날 불쑥 안방극장에 나타나 내공 있는 연기로 자연스레 주연을 꿰찼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 친숙한 연기자가 됐다. 중후하고 멋진 음색, 독특한 사투리 억양, 183cm, 78kg의 피지컬, 간혹 화보 속에서 보이는 댄디한 모습까지, 여심과 남심을 동시에 홀리고 있다.

사실 그는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부산대 생명공학과 92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대학생활 내내 대학극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후 부산 연극판에서 배우, 연출, 극작가로 오랜 시간 활동했다. 스스로를 “연극, 영상 작업하는 배우 유재명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의 정식 데뷔는 1997년 연극 《서툰 사람들》이다. 연극 무대에서 내공을 쌓은 그는 영화 《흑수선》(2001)으로 매체의 영역을 넓혔다.

이후 《연애》(2005), 《바람》(2009),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관상》(2013) 등에서 단역을 소화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의 고향 부산은 영화의 도시답게 영화 로케이션이 잦았는데, 그럴 때마다 현지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유재명은 자연스레 스크린에 등장하게 됐다. 훗날 그는 그 출연료가 후배들 밥 사주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렇게 출연한 영화 《바람》(2009)은 그의 배우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됐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PD가 《바람》에서 인상적으로 본 배우들을 대거 ‘응답하라’ 시리즈에 캐스팅했는데, 그중 한 명이 유재명이었던 것. 그는 tvN 《응답하라 1988》(2015~16)에서 ‘동룡이 아빠’로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오디션에 얽힌 일화도 유명하다. 유재명이 대본 한 줄을 읽자마자 스태프들이 일제히 빵 터졌고, 한 줄을 더 읽자 신원호 PD가 더 이상 들어볼 필요도 없다며 사인했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매 작품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 《하루》(2017), 《브이아이피》(2017), 《골든슬럼버》(2018), 《죄 많은 소녀》(2018), 《명당》(2018), 《영주》(2018), 《마약왕》(2018), 《비스트》(2019), 《나를 찾아줘》(2019) 등과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2017), 《비밀의 숲》(2017), 《라이프》(2018), 《자백》(2019), 《이태원 클라쓰》(2020) 등 그는 현재까지도 열일 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그런 그가 이번엔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제작 루이스픽쳐스)의 창복 역을 통해 새로운 캐릭터로 돌아온다. 《소리도 없이》는 납치한 아이를 맡기고 죽어버린 의뢰인으로 인해 계획에도 없던 유괴범이 된 두 남자의 위태로운 이야기를 그린다. 유아인과 호흡을 맞춘다. 두 사람은 범죄 조직의 일원도, 형사도 아닌, 범죄 현장의 뒤처리를 하는 청소부다. 계란 장수라는 본업이 있지만,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근면하고 성실하게 시체 수습을 하며 살아가는 신실한 남자 창복(유재명)과 그를 돕고 있는 말이 없는 태인(유아인). 단골인 범죄 조직 실장 용석의 부탁을 받고 유괴된 초희를 억지로 떠맡았는데, 다음 날 용석은 시체로 나타나고 두 사람은 계획에 없던 유괴범이 돼 사건에 휘말린다는 내용이다.

극 중 유재명은 근면 성실하게 범죄 조직의 뒤처리 일을 하는 인물인 창복으로 분해 허름한 옷차림부터 소심하면서도 친숙한 말투까지 자신만의 색깔로 캐릭터를 완성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SF 단편 《서식지》를 선보였던 홍의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오는 10월1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유재명은 “영상 작업을 늦게 시작했는데 작품이 주어지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감사하다. 운이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온라인 제작보고회를 통해 그를 만났다.

 

영화 《소리도 없이》를 선택한 이유는.

“배우들은 매번 시나리오를 받을 때 기대감을 갖게 된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하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읽게 되는데, 이번 시나리오는 읽는 순간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담백하기도 하고 강렬하기도 했다.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로서 정말 즐겁게 촬영했다. 연기를 하면서 이런 작품이 내게 왔다는 생각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창복’은 어떤 캐릭터인가.

“종교적 신념을 가졌지만, 범죄 조직의 청소부로 활약하는 역할이다. 평소 저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지만 극 중 창복은 쉴 새 없이 말을 하는 캐릭터다.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안분지족하고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다. 스스로 복이 많다고 생각하는 착한 사람이고, 성실하게 기도하며 살아간다. 극악무도한 인물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나쁜 일을 하는 착한 사람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연기를 하면서 캐릭터가 주는 교훈이 있었나.

“선과 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캐릭터였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험악하고 무서운 사람일 거라는 선입견이 많지만 태인과 창복을 보면 그 일을 하는 모습이 일상이고 나름의 이유가 있겠다고 생각하게끔 감독님께서 표현해 주셨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을 관객분들이 확인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홍의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에 출연했다.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처음 만났을 때도 글 자체가 아우라가 있어 무서운 분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인간적인 분이시더라(웃음). 앞으로 계속 응원하고 싶은 감독이다.”

 

지금 충무로에서 가장 뜨거운 두 사람(유재명X유아인)의 호흡도 화제다.

“최근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유아인씨의 모습을 인상 깊게 봤다. 배우로서 쉽지 않았을 텐데 멋있는 친구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작품에서 만나 보니 자유롭고 더없이 성실했다.”

 

이를 들은 유아인은 유재명에 대해 “선배님이 나오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와 《응답하라 1988》을 잘 봤다. 함께 호흡할 수 있길 바랐는데 하게 돼 기쁘다”며 “《이태원 클라쓰》에선 선배님이 나오는 부분만 빼서 봤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연출을 맡은 홍 감독은 캐스팅에 대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운을 떼며 “처음엔 제가 오디션을 보는 마음으로 두 배우를 만났다”고 회상했다. 이어 “두 배우를 설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무슨 얘길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순간의 느낌만 기억난다. 너무 감사하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유아인과의 첫 호흡은 어땠나.

“사실 팬의 입장에서 바라보다가 만나게 되니 설레었다. 첫 만남에서 팬이라고 고백했다. 이후 같이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자유로운 친구였다. 덕분에 동료로서 편하게 작품을 할 수 있었다. 작업을 하면서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후배와 선배 관계가 아닌 동료로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에 유아인은 “선배가 첫 만남에 팬이라고 해 주셔서 민망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스럽고 감사하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말씀을 이렇게 편하게 주시지?’ 싶었다. 나 역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됐다. 나이 차가 나는 선배지만 편하게 대해 주셔서 극 중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특히 재미있게 촬영했다”고 마음을 전했다.

 

《소리도 없이》는 어떤 영화인가.

“봄날의 낮술 같다. 자유롭다. 취해도 기분이 안 나쁜 낮술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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