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선 “해결하겠다”, 고객에겐 “좀 더 기다려 달라”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10.15 14:00
  • 호수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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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판매 논란 휩싸인 인니 지와스라야 사태
하나은행, 2년 넘도록 해결 못하고 뒷짐만...피해자 분통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이 연루된 ‘지와스라야(Jiwasraya) 사태’가 사건 발생 만 2년이 지나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이 인도네시아 국영 보험사 지와스라야의 상품을 판매한 뒤 해당 보험사의 투자금 지급 불능으로 불거진 이번 사태는 소비자에게 상품의 위험성을 정확하게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완전판매 논란에 휩싸였다.

2016년 지와스라야에서 판매한 저축성 보험상품 ‘제이에스 프로텍시(JS Proteksi)’에 가입한 한국인 피해자는 485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금융 당국에 따르면, 이 상품을 판매한 은행은 타붕안 느가라(BTN)·라크얏 인도네시아(BRI) 등 인도네시아계 은행을 비롯해 ANZ·QNB·빅토리아 인터내셔널·스탠다드 차타드(SC) 등 글로벌 은행들이며, 한국계 은행으로는 하나은행이 유일했다.

피해자들이 현재 가장 문제 삼고 있는 쪽은 투자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고 있는 지와스라야와 인도네시아 금융 당국이다. 한국 교민들은 2018년 9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방한 때 정상회담 의제로 이 문제를 다뤄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현재 이 부분은 양국이 외교라인을 통해 활발히 해법 마련에 나선 상태다. 국회  외통위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설 경우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다"고 밝혔다.  

자카르타에 위치한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본점 ⓒ시사저널 송창섭
자카르타에 위치한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본점 ⓒ시사저널 송창섭

하나銀, 지난해 국감에서 잘못 인정

그러나 정작 피해가 발생한 이후 뒷짐만 지고 있는 하나은행에 대한 반감이 더 거세다. 피해자들은 하나은행이 겉으로는 피해자 구제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지와스라야 사태는 지난해 10월 국감에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다음은 지난해 10월21일 열린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 참석한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전 하나은행장)의 대답이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이하 지): 하나은행 은행장 시절 인도네시아 지와스라야 보험상품을 교민에게 판매하면서 보험상품을 적금으로 설명하고 공동판매를 했고요. 장소만 빌려준 것처럼 말하고 서류도 대리로 작성해 하나은행 믿고 가입한 교민들 완전히 기망한 불완전판매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맞지요.

함영주 부회장(이하 함): 우선 교민들에게 좀 죄송하게 생각하고요, 맞습니다.

지: 이런 사실 맞지요? 잘못됐지요?

함: 예.

지: 그러면 그분들 구제하셔야겠네요. 그렇지요?

함: 예. 그 부분은 의원님들 지적대로 저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토록 하겠습니다.

 

이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은행은 어떤 노력을 했을까. 현지 교민들은 “지금도 하나은행은 ‘우리는 상품만 팔았을 뿐 책임은 지와스라야에 있다. 우리가 해결하려고 해도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이 반대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 관계자는 "작년 5월부터 현지에 지점장 출신 PB(프라이빗 뱅커)를 파견해 피해 교민들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해결책은 간단하다. 불완전판매의 책임을 지고 하나은행이 피해 원금을 선지급한 뒤, 인도네시아 금융 당국과 협상에 나서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태 해결을 바라는 하나은행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은행은 공식적으로 모든 책임을 인도네시아 금융 당국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자칫 우리가 먼저 나서면 다른 외국계 은행들에게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어 인도네시아 금융 당국이 추후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똑같은 상품을 팔아 큰 손해를 입은 인도네시아 국영 은행 2곳도 가만히 있는 마당에 우리가 나서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현지 금융감독기관에 비공식 채널을 통해 질의했는데 선지급과 관련해 마땅한 규정이 없다는 답변만 듣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그러나 ‘리퍼블리카’ 등 현지 언론들은 최근 은행 등 금융기관이 먼저 나서 투자 피해자에게 투자금을 돌려주는 것에 대해 OJK가 어떠한 규제도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고 보도했다. OJK 대변인은 사실 확인을 요청한 현지 언론들의 취재에 “일부 판매사가 지와스라야와 맺은 계약 때문에 투자금 정산의 모든 책임은 지와스라야에 있으며, 그렇기에 (은행이 대신 돌려주는 식의) 정산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데 꼭 그렇진 않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서도 하나은행은 "현지 언론을 통해 정부 관계자가 슬쩍 흘리고 있는 것일뿐, OJK의 공식 답변은 아니다. 해당 기관에 수차례 물어봐도 '아직 정해진 게 없다. 기다려라'는 답변만 듣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국인 피해자 30명이 9월11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국가사무처 앞에서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피해자모임 제공
한국인 피해자 30명이 9월11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국가사무처 앞에서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피해자모임 제공

인니 당국 “하나銀 선보상 해도 제재 안 한다”

현지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올 7월말 현재 지와스라야는 총 자산이 16조4000억 루피아(약 1조2939억원)인 반면, 총부채는 54조 루피아(약 4조2606억원)다. 모든 자산을 매각해도 37조7000억 루피아(약 2조9745억원)를 갚을 수 없다. 현재 지와스라야의 부채는 갈수록 늘어나는 구조여서 사태가 조기 해결되기는 어렵다.

이런 가운데 현지 매체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새로운 국영 보험사를 만들고 여기서 기존 지와스라야 부채를 떠안는 방식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 경제매체 ‘비즈니스닷컴’은 “새로운 보험지주사를 통해 지와스라야 부채의 40%를 ‘헤어컷’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헤어컷은 일정 비율만큼 순자산 가치를 털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경우에 따라선 고객들이 낸 투자금의 40%가 사라지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금융 당국 관계자의 아이디어를 현지 매체가 보도한 것에 불과하며 공식 루트를 통해 확인한 결과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이 밖에도 현지에선 100% 원금을 돌려받으려면 최소 2년 이상 기다리거나 만약 조기 반환을 원한다면 헤어컷 하는 방식 중 선택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 피해자들은 인도네시아 국회와 한국대사관을 찾는 등 조속한 사태 해결에 나서고 있다. 또 서울 태평로에 위치한 하나은행 본점과 자카르타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본점 등도 방문해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선 상태다. 피해자 모임에서 활동하는 박지현씨는 “투자를 권유할 때는 절대 돈을 떼이지 않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선 이제 와서 ‘우린 판매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대해 실망스럽다”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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