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늘어나는 고층빌딩, 왜 화재엔 속수무책일까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10.17 09:00
  • 호수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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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제천 이어 울산 화재도 판박이 대형 참사…불에 잘 타는 외장재가 화마 키워

초고층 빌딩이 불길에 휩싸인다. 소방대원들은 사투를 벌인다. 설상가상으로 바람까지 분다. 사람들은 죽거나 살아남거나 둘 중 하나다. 달궈진 빌딩은 폭발하기 시작한다. 고층 건물의 화재 위험성을 경고한 영화 《타워링》의 기본 줄거리다. 이와 흡사한 ‘울산판 타워링’의 공포가 재연됐다.

“갑자기 불길이 올라왔습니다. 창문이 깨지고 거실과 침실에 불이 붙었습니다.” 10월8일 울산 남구 달동 주상복합아파트 삼환아르누보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혼비백산했다. 불길은 거센 바람을 타고 33층 아파트 전체를 집어삼켰다. ‘펑! 펑!’ 폭발음과 함께 불똥이 쏟아졌다. 살려 달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화재는 무려 15시간40분간 계속됐다. 중상자 3명을 포함해 9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사망자나 중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기적이었다.

10월9일 새벽 울산 남구 주상복합아파트 삼환 아르누보에서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번지고 있다. ⓒ연합뉴스
10월9일 새벽 울산 남구 주상복합아파트 삼환 아르누보에서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번지고 있다. ⓒ연합뉴스

아찔했던 15시간40분의 사투

불이 난 주상복합아파트는 지하 2층~지상 33층(높이 113m) 규모로 2009년 준공됐다. 127가구에 380여 명이 살고 있다. 아파트 3층에서 최초로 불길이 관측된 건 10월8일 밤 11시7분, 순식간에 아파트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소방본부가 긴급 출동했지만, 화세(火勢)가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었다. 당시 울산에는 하루종일 강풍주의보가 내려져 소방헬기가 뜰 수 없었다. 불길은 외벽을 타고 건물 전체를 집어삼켰다. 아파트가 불기둥으로 변하는 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울산소방본부 자체 진화로는 불가항력이었다. 8일 밤 11시44분 소방청은 인근 6개 소방관서 소방력을 모두 동원하는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 당시 아파트 안은 불길과 연기, 탈출을 시도하는 주민들의 비명이 뒤섞여 아비규환이었다. 소방대원들은 아파트 개별 호실로 들어가 부상자 26명을 구출해 병원으로 후송했다. 대피소에 갇힌 43명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이때 시간이 9일 오전 1시27분, 화재 발생 2시간20분 만에 1차 인명 구조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화염은 아파트 밖으로 계속 뿜어져 나왔다. 

문제는 고층 아파트 주민들이었다. 피난층인 28층과 33층 옥상 등으로 올라간 주민들은 구조를 기다리며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화재 발생 1시간30분이 지난 9일 0시40분, 아파트 외부의 불길이 잡히기 시작했다. 소방대원들은 옥상에 올라가 있던 주민들을 3시간 만에 무사히 구출했다. 

9일 오전 6시, 18층 외벽의 숨은 불씨가 되살아났다. 강한 바람을 타고 33층 꼭대기까지 거세게 번졌다. 거대한 불기둥과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급기야 소방청은 인근 8개 시·도에 특수장비(고가사다리차, 고성능 화학차, 펌프카 등) 동원령을 발령했다. 진화작업에는 소방헬기와 장비 148대, 소방인력 1300명이 동원됐다. 인근 도시에서 출동한 고가사다리차 4대도 투입됐다. 하지만 불은 오전 내내 꺼지지 않았다. 같은 날 오전 8시30분,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울산 화재 현장에 도착해 진화와 인명구조 상황을 살폈다. 

총력전을 펼치며 4시간 동안 화재와 사투를 벌인 끝에 소방 당국은 9일 낮 12시25분쯤 초진을 완료했다. 불이 난 지 약 13시간30분 만이다. 소방 관계자는 “불길이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확산됐고 아파트 내부에 있던 스프링클러들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수조에서 물이 빨리 고갈된 게 진화작업이 길어진 원인”이라고 밝혔다. 울산소방본부는 9일 오후 2시50분, 화재가 완전히 진압됐다고 밝혔다. 화재는 15시간40분 만에 막을 내렸다. 

 

가연성 외벽 패널 접착제가 불쏘시개 역할

아파트 외장재와 강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빌딩풍(Building wind)이 급속한 화재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소방청은 “건물 외벽의 알루미늄 복합패널 안에 들어 있던 가연성 접착제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2017년 6월 영국 런던 서부 켄싱턴의 24층 그렌펠타워 화재(70여 명 사망)와 2017년 8월 두바이의 63층짜리 럭셔리 호텔 화재 때도 알루미늄 복합패널이 불쏘시개였다. 

알루미늄 복합패널은 0.5mm 정도의 얇은 알루미늄 코일(coil) 두 장 사이에 3mm 정도의 심재(합성수지)를 넣고 접착제로 붙인 다음 불소수지도료로 코팅 마감 처리한 알루미늄 샌드위치 구조다. 심재를 폴리에틸렌이나 PVC 등으로 채운 다음 진공 처리했다. 이는 뛰어난 단열성과 흡음성, 방음성에 무게까지 가벼워 고층 건물에 많이 사용된다. 한삼건 울산대학교 명예교수는 “이번 사례처럼 바람이 불 때 화재가 발생하면 불길이 패널을 따라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소방 전문가들은 알루미늄 복합패널을 위험한 건축자재로 보고 있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전 소방준감)은 “알루미늄이 녹는 온도는 660도다. 화재  때 패널 외부의 알루미늄을 용융시켜 내부에 있는 인화성이 강한 폴리에틸렌(PE)수지와 가연성이 높은 접착제에 쉽게 착화돼 빠르게 상부로 연소가 확대된다”며 “이번 울산 화재는 알루미늄 복합패널 내부 단열재가 연소하면서 공간이 형성되고 이 공간이 굴뚝효과(Chimney effect)를 유발하면서 불길이 급속히 위로 확산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불은 꺼질 듯하다가도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건물 외벽 안에 있는 가연성 내장재가 땔감 같은 역할을 하면서 불씨가 되살아나는 반복현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최현호 한국화재감식학회 기술위원장은 “알루미늄 보드 뒤에서 PE(폴리에틸렌) 보드가 받쳐주고 있다. 이 PE 보드가 가연성이다. 그래서 이 PE 보드가 연소 확대를 일으켜 불길은 커졌다”고 지적했다.

소방본부는 불을 끄기 위해 집중적으로 물을 뿌렸지만, 알루미늄 패널에 가로막혀 패널 안에서 타고 있던 가연성 접착제와 스티로폼에는 물이 잘 닿지 않았다.  당시 울산에는 14호 태풍 ‘찬홈’까지 상륙했다. 강풍주의보가 발효된 상태에서 불길은 아파트 외벽을 타고 빠르게 번졌고, 초속 30m 안팎의 바람은 불씨를 곳곳으로 날려 보냈다. 박 이사장은 “건물 내외부 온도 차이로 밀도 차가 생기고 건물 높이에 따라 각 층의 압력차가 심하게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협곡에서 바람이 불 때 나타나는 지형효과인 벤추리 효과(Venturi effect)처럼 빌딩풍도 화재의 확산을 키웠다. 빌딩풍은 고층빌딩 상공에서는 바람이 일정 방향으로 불지만 아래쪽에서는 바람이 빌딩 주위를 소용돌이치거나 급강하하는 등 풍속이 2배 이상 빨라지는 것을 말한다.  

화재 진압이 늦어진 데는 또 다른 요인이 있었다. 스프링클러는 섭씨 72도 이상 올라가면 터진다. 3층에서 시작된 불이 12층에서 불덩이로 커지면서 온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당시 12층 스프링클러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옥상 물탱크 물을 다 써버렸다. 이때 13층부터 33층까지 스프링클러가 돌아갔지만 물은 나오지 않았다. 임주택 울산소방본부 생활안전계장은 “스프링클러 헤드가 한꺼번에 터져 옥상 수조의 물이 고갈됐다. 그리고 강한 열기로 인해 화재 진압대원과 구조대원이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말했다. 

10월11일 울산시 삼환아르누보 주상복합아파트 3층 테라스에서 합동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11일 울산시 삼환아르누보 주상복합아파트 3층 테라스에서 합동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소방법 사각지대…개정법령 소급은 ‘요원’

현행법은 스프링클러 30개가 동시에 작동했을 때 40분간 사용할 수 있는 물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개정 전 법을 적용받은 이 아파트의 수조 용량은 30개 기준 20분밖에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물은 순식간에 바닥났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사고 때마다 관련법이 강화되고 있지만, 이미 지어진 건축물은 피해 간다. 소급 적용돼야 법의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화재가 난 33층 아파트 높이는 113m, 반면에 울산에 있는 고가사다리차는 고작 53m짜리가 전부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대 23층까지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70m 고가사다리차는 전국에 10대뿐이다. 서울·경기·인천에 각각 2대, 부산·대전·세종·제주에 1대씩 있다. 부산에 있는 고가사다리차가 울산에 오는 데 6시간이 걸렸다. 박 의원은 “울산소방본부에 고가사다리차가 있었다면 빠른 대응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고층건축물의 화재 대응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오르는 아파트 값과 함께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고층아파트가 경쟁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현재 전국의 30층 이상 고층건물 4692개 가운데 3885개가 아파트다. 나머지 690개는 복합건축물, 90개는 업무시설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알루미늄 복합패널로 시공됐지만, 정확한 통계는 잡히지 않고 있다.

이번 울산 화재를 통해 가연성 외장재의 위험성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앞서 2017년 12월 일어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 화재(사망 29명, 부상 29명)와 2015년 1월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망 4명, 부상 126명)에서도 가연성 마감재가 화근이었다. 특히 2010년 10월 발생한 부산 해운대구 우신골든스위트 화재는 알루미늄 복합패널로 덮인 외벽을 타고 38층 꼭대기까지 불길이 올라간 이번 울산 화재의 예고편이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화재가 발생한 울산 주상복합아파트는 2009년 준공돼 불연 외장재 의무 사용 대상이 아니다. 이런 고층아파트가 전국에는 수도 없이 많다. 강화된 규정을 소급 적용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불연성 소재로 외벽을 리모델링하면 정부가 혜택을 주는 방식 등의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야, 한목소리로 “고층아파트 화재 대책 마련” 촉구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울산 주상복합아파트 화재가 뜨거운 감자였다. 소방관 출신인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화재 확대의 근본 원인인 가연성 외부마감재에 대한 실질적 대책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며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해 건축자재 성능 기준을 강화하도록 더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주문했다. 여야 의원들은 소방장비 확충과 인력 보강, 소방특별조사 강화를 주문했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소방특별조사는 형식적이다. 지적사항도 ‘노후 소화기 교체 지시’ ‘화분 이동 조치’ 등에 그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이번 울산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직전 실시한 소방안전점검에서 연기 유입을 막아주는 제연설비와 방화문, 화재감지기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화재가 나면 아파트 방제실에 설치돼 있는 자동화재속보기가 이를 감지하면서 최초 발화지점이 입력된다. 그런데 소방 당국은 이번 울산 화재의 발화지점을 당초 12층에서 3층으로 번복했다. 이런 혼란 속에 화재 원인도 오리무중이다. 한 소방업체 관계자는 “감지기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번복 소동이 벌어질 수 없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울산 주상복합아파트 화재는 신속한 대응 덕에 아슬아슬하게 대형 참사는 면했다. 하지만 수많은 문제점과 교훈을 남겼다. 울산 사례가 보여주듯 전국의 모든 고층아파트도 대형 화재의 역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해법을 찾지 않으면 공포의 시간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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