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앱, HR 플랫폼으로 몸집 키운다
  • 차여경 시사저널e. 기자 (chacha@sisajournal-e.com)
  • 승인 2020.10.17 11:00
  • 호수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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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커뮤니티·명함 관리 앱 넘어 채용정보·인재 매칭 돕는 HR 사업 진출 잇달아

채용 트렌드는 주기적으로 변화한다. 신문에서 온라인 사이트로 옮겨간 채용시장은 2010년대 후반 또 한 차례 변화를 시도했다. 구직자가 자신의 이력을 모바일 앱에 등록하며 능동적으로 기업을 찾게 된 것이다. 인적자원관리(HR) 플랫폼의 탄생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직장인 대상 비즈니스 앱들이 최근 새로운 사업전략으로 HR 플랫폼으로 변신을 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익명 커뮤니티나 명함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던 스타트업들은 경력 채용 매칭이나 채용정보 서비스로 잇달아 사업을 전환하고 있다. 직장인 앱들이 HR 플랫폼으로 진화 중인 셈이다.

채용 트렌드가 바뀌면서 HR 플랫폼으로 변신을 꾀하는 직장인 비즈니스 앱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비대면으로 진행된 채용박람회 ⓒ연합뉴스

기업·인재 데이터 전쟁…각양각색 HR 전략

일례로 글로벌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는 올해 본격적으로 HR 사업을 시작했다. 블라인드는 지난 5월 경력직 이직 플랫폼 ‘블라인드 하이어’를, 7월에는 기업 평판 서비스 ‘블라인드 허브’를 내놨다. 블라인드는 직장인들의 커뮤니티로서의 강점을 HR 서비스에 접목할 계획이다. 블라인드 관계자는 “블라인드 사용자들의 앱 체류시간과 콘텐츠 소비량은 곧 신규 플랫폼의 사업 기회로 연결된다. 블라인드 허브는 기업 페이지를 공개한 지 두 달 만에 재직자 리뷰 8만 건을 돌파했다”면서 “올해 말 핵심 기능이 추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함 관리 앱 리멤버는 지난해부터 ‘리멤버 커리어’를 통해 HR 시장에 진입했다. 리멤버 커리어는 기업 채용담당자나 헤드헌터가 인재에게 직접 스카우트 제안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다. 현재 등록된 인재는 70만 명, 기업 수는 1만 개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올해 리멤버는 기업용과 헤드헌터용 유료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유인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리멤버의 전략은 ‘명함’이다. 리멤버 관계자는 “국내 리멤버 사용자 수가 3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명함으로 대외활동을 많이 하는 영업·기획·금융 분야 고급 인재풀이 넓다”며 “명함 관리 앱이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아 채용 매칭 응답률도 높다”고 설명했다.

근로 데이터 기반 솔루션 제공 기업 뉴플로이도 수시채용 공고 알림 서비스 ‘알밤 커넥트’를 올해 출시하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 알밤 커넥트는 30대 주요 그룹사, 1000대 기업, 공기업, 외국계 기업 등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기업들의 수시채용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서비스다. 뉴플로이 관계자는 “기존 취업포털은 수많은 공고가 산재돼 있다. 우리는 구직자가 팔로우하고 관심을 갖는 기업의 채용공고만 알려줘 구직자의 시간과 구직 피로도를 낮추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 구직자들이 많이 찾던 기업평판·리뷰 조회 플랫폼 잡플래닛과 추천제 채용정보 플랫폼 원티드 등 기존 HR 스타트업들도 시장 점유율을 지키고 있다. 잡플래닛과 원티드는 차기 유니콘 기업(상장 전 기업 가치 1조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원티드의 경우 지인을 추천해 채용되면 구직자와 추천인 모두에게 리워드를 주는 채용 보상금 제도를 통해 호응을 얻고 있다. 이 밖에도 개발자나 디자이너 등 전문 직군들을 대상으로 한 HR 플랫폼도 생겨나고 있다. 프로그래머스는 대표적인 개발자 전문 채용 매칭 플랫폼이다.

국내 HR시장에 독주 기업이 없다는 점도 눈에 띈다. 현재 미국 기업 링크드인(LinkedIn) 등이 시장에 진출해 있긴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많이 사용하지 않는 상황이다. 강자가 없다 보니 기존 직장인 비즈니스 앱들이 HR 플랫폼으로 사업을 키우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크다. 올해 대기업 그룹사는 신입 공채를 수시채용과 비대면 채용으로 대체했다. 스타트업들도 신입보다는 전문성을 가진 경력자들을 물색하고 있다.

신입 공채가 소규모·비대면 채용으로 변화하다 보니, 밀레니얼 세대 인재를 찾기 위해 기업들이 먼저 HR 플랫폼을 찾는 시대가 도래했다. 황은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기획팀장은 “다수의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반면 검증된 인재를 데려오기는 힘들다. 직장인이 많이 사용하는 비즈니스 플랫폼들은 기업이나 구직자 데이터들이 많다. 스타트업들이 인재 수급을 위해 HR 플랫폼부터 먼저 살펴본다”면서 “기존 채용 사이트들은 기업정보가 중심이었지만 HR 플랫폼들은 구직자 데이터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고 설명했다.

한 대기업이 주최한 채용박람회에서 취업준비생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독점 기업 없는 HR시장, 스타트업엔 기회

전문가들은 직장인 비즈니스 앱들이 HR 사업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고 있다고 분석한다. 스타트업들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각자 쌓아놓은 기업·인재 데이터를 기반으로 HR 사업에 뛰어들고 있고, 더 많은 HR 플랫폼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는 “HR은 수요가 많고 유료화도 가능한 사업모델”이라며 “기업들은 비용을 써가면서 채용을 한다. 스타트업 HR 플랫폼은 헤드헌터를 고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구직자 데이터도 많다. HR 플랫폼 수요는 항상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비즈니스 앱을 운영하는 스타트업들이 HR시장에 진출하고, 유료화 서비스를 출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 HR 플랫폼 시장을 독점한 공급자는 없다. 비즈니스 앱을 운영하는 스타트업들은 한 가지 수요층을 공략하면서 HR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각자 전략 역시 다르다. 블라인드의 경우 재직자의 내부 사정일 것이고, 리멤버는 명함 정보, 원티드는 채용 보상금을 내세우고 있다. 채용에 대한 (기업과 구직자들의) 갈증이 해결되지 않는 한 HR 플랫폼은 늘어날 것으로 이 이사는 전망했다. 그는 “앞으로도 HR시장은 독주체제를 형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구인·구직은 채용 정보를 잘 제공한다고 해서 이뤄지지 않는다. 대기업조차도 여러 채널을 통해 인재풀을 들여다본다”면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HR 플랫폼과 특정 직군을 공략하는 시장은 다르다. 개발자나 마케터 등 특정 직업 대상 HR 플랫폼들은 어떤 사후관리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1위 사업자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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