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부영그룹 폐기물 해외 밀반출 의혹, 필리핀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11.12 10:00
  • 호수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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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폐기물 관리법 위반 혐의 피소…국제 분쟁 비화 조짐도

43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형이 확정돼 구속 수감 중인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추가로 피소됐다. 폐기물관리법 위반 등 혐의와 관련해서다. 고발인은 덴마크 국제무역운송 선박회사인 ‘인테그리티벌크(Integrity Bulk)’. 화물의 내용물이 국제법상 국가 간 이동이 금지된 대량의 유독성 폐기물이라는 사실을 부영이 숨기고 필리핀으로 운송하도록 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대외 신인도가 실추되고 거액의 금전 손실이 발생했다는 게 소송을 제기한 배경이다.

이번 일은 국제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필리핀 현지 주민들의 건강과 자연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재무부는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처리에 관한 바젤 협약’에 따라 부영의 화물을 한국으로 반송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뿐만 아니라 사안을 중대하게 여긴 필리핀 재무부는 관련 내용을 필리핀 대통령 비서실에도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소송이 단순히 기업 간 분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왼쪽)과 서울 중구 부영그룹 사옥 ⓒ시사저널 박정훈·연합뉴스

필리핀으로 폐기물 수출 결정한 배경은?

부영그룹은 그동안 오염된 토지를 저가에 매입해 대규모 주택단지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고수익을 올려왔다(상자기사 참조). 문제의 폐기물이 나온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진해화학 부지(51만4717㎡)도 그런 경우다. 부영주택은 2003년 경매를 통해 이 부지를 매입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립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부지는 니켈과 카드뮴 등 중금속에 오염됐고, 73만6000㎥ 이상의 폐석고가 방치돼 있었다. 진해화학이 비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었다. 행정 당국은 2007년부터 지속적으로 부영에 토양 정화조치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부영은 수차례 고발당해 벌금형에 처해지는 가운데서도 정화작업을 하지 않았다.

물론 부영이 마냥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다. 부영은 당초 직접 폐석고를 처리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2011년 폐기물 처리업체인 부영환경산업도 설립했다. 부영환경산업은 지역 폐기물 처리업체 A사에 폐석고 처리 업무를 위탁하기로 했다. 갓 설립된 부영환경산업은 직접 폐석고를 처리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A사와 2012년 7월 ‘폐석고 정제처리를 위한 공동투자협약(MOU)’도 체결했다. 부영환경산업과 A사가 공동으로 투자해 정제설비를 설치하고, 운영은 A사가 전담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협약에 따라 A사는 2013년 3월 정제설비 제작과 설치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후 부영은 돌연 얼굴을 바꿨다. 정제설비 운영 위탁계약 체결을 거부한 것이다. 이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 A사는 부영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부영은 A사의 정제처리 및 반출 능력을 위탁계약 체결 거부 이유로 들었다. 반면 A사는 부영이 정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을 사업에서 배제했다고 주장했다. 창원 지역 어민생계대책위원장이던 김아무개씨로부터 진해화학 부지 인근 진해오션리조트 공사현장에 폐석고를 매립하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자신을 ‘팽’했다는 것이다.

필리핀 재무부 장관이 필리핀 관세청장에게 보낸 행정명령서. 부영이 수출한 폐석고를 한국으로 반송하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부영 “폐석고 수출, 정상 절차 통해 진행”

김씨의 동업자인 박아무개씨가 재판부에 제출한 사실확인서에 따르면, 김씨는 이 회장을 직접 만나 이런 제안을 하며 자신을 부영환경산업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업체에 운반사업권 일체를 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박씨는 또 사실확인서를 통해 이 회장이 김씨의 제안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환경이나 폐기물 관련 전문가가 아니던 김씨는 2014년 3월 부영환경산업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부영이 A사에 공동투자약정 해지를 통보한 것도 바로 이 직후다.

진해오션리조트 폐석고 매립은 부영에 달콤한 제안이다. 막대한 폐석고 정제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영환경산업과 A사 간 공동업무추진제안서에는 폐석고 1㎥당 정제 처리 단가가 1만9500원으로 명시돼 있다. 진해화학 부지의 총 정제 물량이 54만1000㎥라는 점을 감안하면 105억원 이상의 정제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그러나 진해오션리조트 매립이 성사되면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관련 법에 따르면 폐석고는 양토(壤土)와 일정 비율로 혼합해 공유수면매립지나 일반 건설현장에 매립할 수 있도록 돼 있어서다.

그러나 진해오션리조트에 폐석고를 매립하려던 계획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덩달아 김씨도 2017년말 부영환경산업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됐다. 부영이 이번 소송의 단초가 된 폐석고 필리핀 수출 결정을 내린 것도 바로 이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부영그룹 측은 폐석고가 정상적으로 정제돼 필리핀에 수출됐다고 강변하고 있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진해화학 부지 폐석고 처리업무 하청을 맡은 업체가 유독성 폐기물을 중화석고로 정제해 국내와 필리핀 관련 기관으로부터 승인을 받고 정상적으로 필리핀에 하역까지 완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입수한 필리핀 정부 문건을 보면 부영의 주장은 사실과 차이가 있다. 부영의 주장대로 당초 필리핀 당국은 부영이 제출한 서류에 입각해 화물을 하역하도록 한 것이 맞다. 그러나 이후 필리핀 재무부의 확인 결과 부영의 화물은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된 폐기물로 드러났다.

이에 카를로스 G 도밍게즈 재무부 장관은 지난해 8월 레이 레너드 B 게레로 관세청장에게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바젤 협약에 대한 필리핀의 의무를 준수해 (부영의 폐석고를) 간척 및 토지 개선 사업을 위한 매립재로 수입할 수 없다’며 문제의 화물을 한국으로 반송하도록 했다. 특히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해 필리핀 재무부는 필리핀 대통령실에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필리핀에 보낸 폐석고가 정화한 중화석고라는 부영 측 주장도 사실과 달랐다. 홍콩과 싱가포르 해양엔지니어링 전문업체와 연구소(Andrew Moore & Associates)가 작성한 성분 분석 검사 결과지를 보면, 부영의 화물은 상업적 가치가 거의 없는 산성 폐기물로 나타났다. 또 다른 피해 선박사가 분석기관(SGS Korea)에 의뢰해 시행한 시험 결과에도 부영이 필리핀에 보낸 폐석고가 산도 6.4의 산성으로 나타나 제대로 중화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소송과 관련해 부영은 법적인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운송 선박회사인 인테그리티벌크는 하청업체로부터 운송을 의뢰받은 업체로 부영과는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저의를 의심하고 있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인테그리티벌크가 더 많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고 언론플레이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직접 계약 관계가 없는 부영을 압박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밝혔다.

 

벌크사 “부영, 다른 피해 업체에 합의금 지급”

이와 관련해 인테그리티벌크 측은 “이런 중요한 결정을 오너의 재가 없이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이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다른 선박사도 우리와 똑같은 피해를 당했고 부영으로부터 이미 합의금을 받아갔다”며 “문제가 없다면 합의에 응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신속한 손해배상과 재발 방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관련 내용을 세계 각국 주요 항만 당국과 규제기관, 국제해사기구 등에 통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부영그룹 관계자는 “인테그리티벌크가 언급한 선박사 역시 직접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어서 법적인 책임은 전무하지만 도의적인 차원에서 합의에 응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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