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겸비한 얼짱 스타들로 배구코트가 달아오른다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14 16:00
  • 호수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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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스타’ 김연경 외에도 이재영·이다영 자매, 강소휘·고예림 등 스타플레이어 넘쳐나

‘예매 광클(마우스를 매우 빠르게 클릭한다는 뜻) 전쟁’이 벌어진다. 한창 진행 중인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얘기냐고? 아니다. V리그 여자배구 예매 풍경이다.

11월11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GS칼텍스와 흥국생명의 경기는 예매 10분 만에 표가 동이 났다. 이날부터 관중 입장이 경기장 수용 규모의 최대 50%(총 1692장)까지 확대됐는데도 여전히 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티켓 구하기가 힘들어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가격이 일반석의 5~10배에 달하는 암표가 등장하기도 한다. 프로야구 일부 인기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을 때 벌어지는 일이 여자배구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왜 여자배구일까.

김연경(흥국생명)

2012년 올림픽의 눈부신 투혼이 강렬하게 각인돼

단순히 ‘식빵 언니’ 김연경(흥국생명)의 국내 리그 복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사실 여자배구 인기의 싹은 8년 전부터 움텄기 때문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이 그 무대였다. 당시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여자배구는 스포츠팬들의 시야 밖에 있었다. 한국의 세계랭킹은 15위. 메달 획득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배구협회 지원도 열악했다. 게다가 하필 본선에서 미국(1위)·브라질(2위)·중국(3위)·세르비아(6위) 등 세계 강호들과 한 조로 묶였다. 광속 탈락은 예정된 수순으로 보였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김연경의 호쾌한 공격과 선수들의 이를 악문 수비로 한국은 브라질·세르비아를 꺾고 중국과도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똘똘 뭉친 선수들의 고군분투는 국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장신 선수들의 가로막기를 뚫고 강하게 상대 코트에 내리꽂히는 김연경의 스파이크에 감탄했고 어려운 각도의 공도 몸을 내던져 척척 받아내는 선수들의 몸짓에 탄복했다. ‘깜짝’ 조 3위로 8강에 진출한 여자배구 대표팀은 세계 4위 이탈리아마저 꺾고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가히 꼴찌들의 반란이었다.

비록 준결승전에서 세계 최강 미국에 패하고,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3·4위전에서 일본을 만나 분루를 삼키며 36년 만의 올림픽 메달 꿈은 물거품이 됐지만, 그 여운은 꽤 길었다. 팬들이 남자배구와는 다른 여자배구만의 매력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서서히 팬 몰이가 시작됐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로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2016년 리우올림픽(8강)에서도 여자배구는 선전을 이어갔다.

국제대회 호성적이 국내 리그 인기로 이어진 사례는 앞서 프로야구에도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성공으로 인한 축구 붐과 박찬호·김병현 등의 활약에 따른 메이저리그(MLB) 인기로 인해 국내 프로야구는 한때 심각한 위기를 맞은 바 있다. 하지만 2006년 세계야구클래식(WBC) 4강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미국·일본과 견줘도 절대 뒤지지 않는 ‘실력 있는 리그’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야구장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프로야구는 2008년 500만 이상 관중을 돌파했고 2011년 600만, 2015년 700만, 2016년 800만 관중을 넘어섰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스타플레이어들의 쇼케이스가 된 국제대회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 성적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들어 프로야구 인기가 다시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배구나 남자농구가 예년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데도 국제대회 성적 부진이 한몫한다. 남자배구와 남자농구는 지난 20년 동안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남자농구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중국을 극적으로 제압하고 금메달을 따내면서 인기가 ‘반짝’ 올랐으나 그때뿐이었다. 남자농구의 경우 현재 전력 평준화를 위해 외국인 선수 2명 외에도 아시안 선수 쿼터 1명을 더 쓰고 있는데, 이는 국내 선수들의 설 자리를 더욱 좁히고 있다. 눈길을 줄 만한 국내 선수가 없으면 그만큼 팬들도 멀어진다.

올림픽 등 국제대회 성적이 중요한 이유는 해당 무대 자체가 스타 탄생의 산실이 되기 때문이다. TV 실시간 중계로 비(非)스포츠팬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으면 리그 흥행의 강력한 추진력이 된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단숨에 영웅으로 등극한 여자컬링 대표팀이 단적인 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의 눈부신 성적에도 K리그 흥행이 지속되지 못한 이유는 대표팀 선수 대다수가 곧바로 해외리그로 이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자배구 대표팀은 선수 대다수가 국내 리그에서 뛴다.

왼쪽부터 이재영·이다영(이상 흥국생명), 강소휘(GS칼텍스), 고예림(현대건설) 선수 ⓒ연합뉴스

스타플레이어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긍정적 효과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이재영·이다영(이상 흥국생명) 쌍둥이 자매를 비롯해 이소영·강소휘(이상 GS칼텍스), 양효진(현대건설), 박정아(도로공사), 김희진(IBK기업은행) 등 팀마다 확실한 스타플레이어가 있다. 여기에 국가대표 터줏대감이던 한송이(인삼공사)가 센터로 포지션을 변경한 뒤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현대건설 고예림의 경우 ‘얼짱’ 배구선수로 소문나 경기가 끝날 때마다 팬들의 직캠 영상이 올라온다. 여자배구도 외국인 공격수를 한 명씩 보유 중이지만 국내 선수들 실력이 이들 못지않게 상향 평준화돼 있어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관중 흥행과 맞물려 2019~20시즌 V리그 여자배구는 사상 처음으로 남자배구 시청률을 앞지르기도 했다. 여자배구 평균 시청률이 1.05%였고, 남자배구는 0.83%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자배구가 직전 시즌보다 시청률이 0.15% 상승한 반면 남자배구는 0.24% 하락했다는 점이다. 여자배구와 남자배구의 지위가 역전된 셈이다. 여름에 치러진 코보컵 여자배구 최고 시청률은 2.05%였다. 지난 10일 끝난 V리그 1라운드 시청률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으나 배구연맹(KOVO) 관계자는 “관중 수, 시청률 등 수치적으로나 팬들의 반응 등 체감적으로나 여자배구 인기가 예전보다 많이 올라간 게 느껴진다”고 했다.

김연경이라는 슈퍼스타의 존재도 물론 간과할 수는 없다. 코로나19 때문에 해외리그 상황이 여의치 않은 점도 있었지만, 도쿄올림픽 메달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위해 그는 연봉이 대폭 삭감되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국내로 돌아왔다. 김연경은 《나 혼자 산다》(MBC), 《언니들의 슬램덩크》(KBS)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호감 이미지를 구축했고 여자배구 인지도도 덩달아 끌어올렸다. 김연경·이재영·이다영이 속한 흥국생명은 현재 ‘흥벤져스’로 불리면서 여자배구 흥행몰이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여자배구 흥행 요인은 명료하다.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성적을 내면서 사람들에게 여자배구만의 재미를 각인시킨 것. 그리고 국내 선수들이 외국인 선수와 대등한 기량으로 맞서며 코트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자배구는 ‘집관’보다 ‘직관’이 더 짜릿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우선 ‘광클릭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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