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억 탈루했는데 집행유예?…조세포탈범들 실태 분석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5 14:00
  • 호수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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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조세포탈범 54명 중 40명이 집행유예로 풀려나

조세포탈은 부정한 방법으로 세금을 내지 않거나, 환급·공제를 받은 행위다. 국가의 조세과징권과 조세수입 등을 침해하는 범죄다. 국세청은 조세범처벌법으로 유죄판결이 확정된 피의자 중 포탈세액이 일정 금액 이상일 경우 인적사항, 포탈세액, 판결요지, 형량 등을 공개한다.

시사저널이 ‘2019년 조세포탈범 명단’을 분석한 결과, 54명 중 40명이 집행유예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조세포탈범의 실형 비율은 단 26%로 14명에 그쳤다. 명단이 공개된 조세포탈범들은 수십억 또는 100억원 이상의 조세포탈을 했기 때문에 특가법 적용도 받았다. 하지만 실형을 치른 사람은 절반이 채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부천시의 이아무개씨는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며 36개 계좌로 도박대금을 입금받고 신고·납부하지 않는 방법으로 총 129억3600만원을 탈루했다. 하지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벌금 65억원에 그쳤다. 이씨의 포탈세액은 지난해 조세포탈범 중 가장 큰 규모다.

2019년 조세포탈범 명단에는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인 알테크노메탈·동서기공 오너 일가가 등장한다. 알테크노메탈은 알루미늄 합금을 생산하는 업체다. 국세청에 따르면 강만희 알테크노메탈 대표와 강동우 알테크노메탈·동서기공 회장이 직원 등을 통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토대로 매출원가를 과다계상하고, 부산물 거래에 대한 매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는 수법으로 법인세 45억7700만원을 탈루했다.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다. 법원은 강 대표에게 징역 2년에 벌금 46억원을 선고했으며, 강 회장에겐 징역 2년6월(집행유예 3년)에 벌금 46억원 등을 부과했다.

정철우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이 10월5일 정부청사에서 고의적으로 재산을 숨긴 고액체납자 812명에 대한 추적조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철우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이 10월5일 정부청사에서 고의적으로 재산을 숨긴 고액체납자 812명에 대한 추적조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위 세금계산서·조세피난처 등 수법 다양

윤아무개 알테크노메탈 재무이사는 기말재고액을 축소 조정해 매출원가를 과다계상하는 방법으로 26억3500만원을 포탈했다. 임아무개 동서기공 전무는 허위 세금계산서를 토대로 매출원가를 과다계상해 12억6600만원을 탈루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사람 모두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알테크노메탈의 지난해 매출은 1932억원이며, 강 회장이 지분 98%를 소유하고 있다. 동서기공의 지난해 매출은 2884억원이며 최대주주는 알테크노메탈(50.92%), 강 회장(36.29%), 강 대표(12.80%) 등이다.  

조세피난처를 통해 법인세를 탈루한 사례도 있다. 해상화물 운송업을 하는 세인해운은 조세피난처에 SPC(특수목적법인)를 설립한 후 여러 개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허위과다 비용을 계상했다. 그렇게 14억8600만원의 법인세를 포탈했다. 법원은 최아무개 세인해운 대표이사와 직원 이아무개씨에게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최 대표에게는 벌금 21억원을 부과했다. 세인해운은 해외 선박들의 용선을 통해 화물을 운송하는 해운회사다. 싱가포르와 파나마 등에 지사를 운영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재무제표에 따르면 세인해운은 지난해 매출 866억원이며, 당기순이익은 22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세포탈범 명단에는 세무사들의 이름도 올랐다. 인천에서 세무회계사무소를 운영 중인 신아무개씨는 중고자동차 업체가 매입금액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부가가치세 매입세액을 과다 공제받게 조력했다. 총 25억원의 세금을 탈루했지만, 그 역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벌금 6억6000만원에 그쳤다. 경기도 하남에서 세무회계컨설팅을 하는 한아무개씨도 동일한 방법으로 7억4800만원의 세금을 탈루해 집행유예를 받았다. 이 외에 노아무개씨와 지아무개씨는 ‘세무 브로커’ 등을 통해 허위 매입자료를 신고해 조세를 포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자동차 수출업계에서 탈세가 횡행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9년 조세포탈범 54명 중 8명이 중고자동차 수출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무역회사를 차려 중고자동차 매입금액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부가가치세 매입세액을 과다 공제받아 조세를 포탈했다. 중고자동차 업자들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실형 비율이 높았다. 중고자동차 업자 8명 중 4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천안에서 중고자동차 사업을 하는 홍아무개씨의 경우, 자동차 매매계약서상 매입대금과 수출신고 필증 수출금액 등을 부풀렸다. 부가가치세 신고서에는 실제보다 높은 매입대금을 써넣어 부가가치세를 부정 환급받았다. 이런 수법으로 2013년부터 홍씨는 4년간 28억원의 조세를 포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씨는 징역 3년에 벌금 28억원을 선고받았다. 

 

중고차 수출업·도박사이트 탈세 사각지대

중고자동차 수출업체들 사이에서 탈세가 만연한 건 ‘중고자동차 수출업종’이 각종 세제 해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무 전문가에 따르면, 수출업체로 분류되면 부가가치세의 세율이 ‘제로’가 된다. 중고자동차는 재활용폐자원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매입세액 공제율이 다른 업종보다 높다. 중고자동차 수출업체들은 이를 이용해 수출신고 필증을 허위로 작성하거나 매입세액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과다 공제를 받아 조세포탈을 일삼는 것으로 전해진다.    

불법 도박사이트도 탈세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조세포탈범 54명 중 10명이 불법 도박사이트를 개설해 수십억원을 탈세했다. 업종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차명계좌로 도박대금을 입금받고, 매출액을 신고 누락했다. 그런데도 단 2명이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8명이 집행유예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조세포탈범 54명 중 7명은 고액상습체납자로 확인됐다. 이 중 4명이 집행유예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에 따르면 전산장비 판매업을 하는 한아무개씨는 11억2500만원의 부가가치세를 포탈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4년부터 법인세 등 7건으로 58억400만원을 체납했다.

수십억원을 탈세한 조세포탈범들이 대부분 집행유예에 그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법조계와 조세 전문가들은 조세범죄에 각종 감경요소가 크게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감경요소에는 동종범죄 ‘전력’과 ‘반성’ 그리고 세금 납부 등이 고려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감경요소가 적용되면 형량이 대폭 줄어든다. 법원은 대다수 조세포탈범 피의자에게 감경요소를 적용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조세범칙전문 변호사는 “탈세 규모가 10억원 이상이면 명백한 특가법 적용 대상이다. 하지만 여러 감경요소 등을 종합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며 “조세범 혹은 재산범에 대해 관대한 법원 문화가 있어, 처벌이 약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기소율도 낮은 조세포탈범

검찰의 조세포탈범 기소율이 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 또한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에 따르면, 2018~19년 조세포탈 사건 542건 가운데 기소된 사건은 340건이다. 55건은 불기소 처리됐고, 122건은 기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검찰이 불기소로 처리한 55건의 조세포탈 액수는 1738억원에 달했다.

국세청은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55건 가운데 18건에 대해서만 항고했고, 기소로 전환된 사건은 1건에 그쳤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분석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전체 조세범죄 사건의 검찰 기소율은 23.3%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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