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자살 이뤄지는 ‘블루하우스’, 그보다 오싹한 현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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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탐사기획부 6개월 취재·고민 담은 신간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스위스에서 안락사 선택한 한국인 흔적 되밟으며 사실 너머 불편한 진실 꺼내놔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이 이뤄지는 건물, 일명 ‘블루하우스’ ⓒ 서울신문 유튜브 채널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이 이뤄지는 건물, 일명 ‘블루하우스’ ⓒ 서울신문 유튜브 채널

“파란색 2층 집 앞에 도착하는 순간 차에서 못 내릴 정도로 몸이 오싹했습니다.” 

친구의 조력자살 여정에 동행했던 이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앞서 그는 조력자살을 선택한 암 환자 친구와 함께 스위스 취리히까지 갔다. 조력자살은 의사에게서 치명적인 약이나 주사를 처방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로, 적극적인 안락사와 같은 범주에 있다. 취리히에 도착해 친구가 곧 삶을 마감할 장소인 파란색 2층집, 일명 ‘블루하우스’에 미리 가본 그는 차에서 내리지 못할 정도로 얼어붙었다. ‘오싹했다’ ‘기분이 묘했고, 안 좋았다’는 게 당시 감정에 관해 그가 설명할 수 있는 전부다. 

조력자살을 택한 한국인이 있었다 

신간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를 읽는 독자 상당수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이 책의 모태는 지난해 3월6일부터 3월13일까지 서울신문이 보도한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연재 기사다. 안락사는 사실 대부분 언론사나 기자가 피하고 싶어 하는 주제다. 너무나 논쟁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재 기사를 기획한 서울신문 탐사기획부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연재 기사를 마무리하고 다음 아이템 후보군을 들여다봤지만, 안락사는 선뜻 손대기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서울신문 탐사기획부는 그 힘든 길을 선택했다. 2018년 9월3일부터 9월12일까지 ‘간병살인’ 시리즈를 연재한 뒤 안락사 문제를 기사화해 달라는 독자들이 줄을 이었다. 일이 되려니 덜컥 대형 팩트도 손에 들어왔다. 스위스에 있는 외국인 조력자살 지원 단체인 디그니타스에 가입한 한국인 한 사람이라도 만나자는 생각으로 취재를 시작했는데, 한국인 2명이 이곳을 통해 안락사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곤 5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친구의 안락사 여정에 동행한 사람까지 어렵사리 만나 인터뷰하게 됐다. 

그와의 인터뷰는 ‘무모한’ 취재의 마중물이자 동력이었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기자 3명은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지난해 1월4일 스위스 취리히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여드레간 머물며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한국인의 흔적을 찾았다. 안락사가 시행되는 건물인 블루하우스부터 시신을 운반하는 사설 장례업체, 취리히주가 운영하는 공립 화장장까지 그들이 갔던 길을 따라 걸었다. 아울러 디그니타스와 검찰, 법학 교수, 법의학자, 의대 교수, 장례업체 대표, 조력자살 지원 단체 등과도 접촉하며 스위스에서 외국인 조력자살이 가능한 배경과 현지 사회상을 분석했다. 

스위스에서 찾은 흔적과 숙제 

책에 따르면, 스위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까지 법적으로 인정하는 몇 안 되는 국가다. 비단 말기 암이나 전신 마비의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최근에는 마음의 병을 앓아 삶의 욕구를 잃은 이들도 조력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있다. 스위스 연방통계청 데이터를 보면 2017년 기준 스위스에서 조력자살로 사망한 이는 1009명으로 전체 사망자(6만6971명)의 1.5% 수준이다. 스위스가 조력자살을 허용한 배경으로는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터치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외에 높은 자살률도 거론된다. 자살을 완벽히 막는 게 불가능하다면 비교적 인간답게 죽는 방법을 열어주자는 여론이 법과 제도를 바꿨다고 책은 전했다. 

스위스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2.5명(2016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13위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인구 10만 명당 26.9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한 한국에서도 국민 10명 중 8명이 안락사 허용을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신문과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이 2019년 리서치 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지난해 2월13~14일 유무선 혼용 자동응답시스템 통해 진행, 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는 ±3.1%포인트) 80.7%가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책은 “국민 80%가 안락사 허용을 찬성한다고 손을 든 건 그만큼 지금의 한국에선 존엄한 죽음을 맞기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한국이 죽음을 엄숙하고 존엄하게 맞을 여건을 갖춘 사회인가’라는 질문에 부정(67.0%)이 긍정(20.9%)보다 세 배 이상 많았다. ‘한국인의 죽음’ 하면 연상되는 단어를 골라 달라는 질문에선 고독(67.6%)과 유대(32.4%), 불안(63.4%)과 평안(36.6%), 종결(63.3%)과 연속(36.7%) 등 다양한 감정 속 부정적인 어휘 선택이 도드라졌다.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를 지낸 황규성 한국엠바밍 대표는 “고독이라는 단어를 많이 택한 건 현대 사회가 주는 단절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 북콤마
ⓒ 북콤마

한국인의 죽음, 더는 ‘사적’일 수 없다

‘초고령화’와 ‘핵가족화’라는 새로운 시대 환경 속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초고독화’로 달려가는 한국 사람들이다.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는 간병 가족들의 암울한 현실. 점점 더 증가하는 독거 가구. 서울신문 탐사기획부에 ‘안락사를 찬성하니 이 문제도 꼭 다뤄 달라’고 요청한 독자들. 고통스럽거나 외롭게 죽느니 ‘존엄하게’ 죽겠다는 사람들. 죽음 선택도 인간의 권리라는 2030세대(설문조사에서 20대 67.3%와 30대 60.2%에서 나타난 생각). 대체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까. 

6개월간 취재하며 어떤 시각으로 어떻게 보도할 것인지 토론하고, 한국과 스위스에서 2000명가량의 생각을 듣고, 삶과 죽음에 대해 자문해본 서울신문 탐사기획부도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조력자살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굳이 기사로 의미나 방법 등을 자세히 풀어낸 것이 옳았는가’ ‘취재자 의도와 상관없이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일각의 지적도 피할 순 없다. 

책은 “정답은 없다. 스위스처럼 안락사를 전면 허용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어떤 것이 존엄한 죽음인지 우리 사회가 성역 없이 고민하고 토론해 보면 좋겠다. 책은 그런 논쟁의 출발점이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다만 “‘왜 자신의 죽음을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의 뒤를 쫓았느냐’는 비난만큼은 동의할 수 없다. 조력자살을 선택한 이의 마지막에는 우리 사회의 고민이 담겨 있다”며 “‘존엄한 죽음은 무엇인가’라는 화두 앞에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죽음을 단순한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할 수 없다. 그의 죽음은 사적이었지만 공적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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