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리더십 상실’에 법무부도 휘청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4 10:00
  • 호수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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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 결재라인 무시 등 내부 시스템 붕괴 조짐도
남은 측근들은 직권남용 혐의 조사받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추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직무배제를 강행하자 검찰은 물론 법무부의 측근들마저 등을 돌렸다. 아직까지 추 장관의 옆을 지키고 있는 측근들은 직권남용 혐의로 감찰 조사와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추 장관이 이미 리더십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로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상징과도 같았던 검찰 개혁이 ‘윤석열 찍어내기’로 변질되면서 대의명분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은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추 장관은 취임 후 두 차례의 검찰 인사를 통해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쳐내고 자신의 사람들을 주요 보직에 전진 배치했다. 이를 놓고 검찰 내부가 추미애 라인-윤석열 라인으로 쪼개졌다는 평가가 나왔다.(8월10일자 “검찰, ‘개혁’은 사라지고 ‘정치’가 왔다” 기사 참조)

ⓒ시사저널 박은숙

“검찰 내 신망 잃으면 검찰총장 맡기 어려워”

특히 지난 8월 인사를 통해 윤 총장을 직접 보좌하는 대검 간부들까지 추 장관의 사람들로 채워졌다.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낸 조남관 대검 차장이 대표적이다. 조 차장은 노무현 정부 마지막 청와대 특별감찰반장을 지냈으며,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검찰 내부통신망에 추도글을 올리기도 했다. 조 차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정원 감찰실장-대검 과학수사부장-서울동부지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 차장의 대검 입성을 두고 윤 총장을 견제하기 위한 추 장관의 노림수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런 조 차장마저 11월30일 검찰 내부통신망을 통해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검사들은 총장님께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쫓겨날 만큼 중대한 비위나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다”면서 “장관님의 이번 처분을 철회하는 결단을 내려주실 것을 간곡히 앙망한다”고 밝혔다. 조 차장은 12월1일 법원으로부터 직무배제 정지 판단을 받고 7일 만에 다시 출근한 윤 총장을 대검 정문에서 직접 맞이했다. 또한 윤 총장에 대한 감찰을 위법하게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대검 감찰부를 조사하라고 대검 인권정책관실에 지시하기도 했다.

조 차장의 행보는 윤 총장 징계와 관련해 검찰 내부에서 추 장관에 대항하는 단일 대오가 형성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전국 59개 지검(18곳)과 지청(41곳) 모든 곳에서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평검사들의 성명이 발표됐다. 이뿐만이 아니라 고검장 전원(사퇴한 고기영 법무차관을 제외한 8명)과 전국 18개 지검 중 15곳의 지검장(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김관정 서울동부지검장, 이정수 서울남부지검장 제외)도 성명에 동참했다. 윤 총장 장모의 불법 요양병원 설립 및 부당 급여 수령 사건과 채널A-한동훈 검사장의 검언 유착 의혹 사건 등을 지휘하며 이성윤 지검장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김욱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존재 가치를 위협하는 조치들을 즉각 중단해 주시기 바란다”며 사표를 던지기까지 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그동안 쌓이고 쌓인 것이 윤 총장 징계 건으로 결국 터진 것”이라면서 “조 차장은 윤 총장 직무정지 후 잠시나마 총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평검사에서 고검장까지 단일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조 차장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조 차장은 가장 강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 중 한 명이다. 검찰 내부의 신망을 잃고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여당은 조 차장을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 차장의 성명을 3번 읽고 들었던 생각은 검찰의 속마음을 들켰다는 것”이라면서 “검사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하는데,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말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추 장관에게 더 아픈 부분은 조 차장보다 법무부 내부에서 일어난 반발이다. 고기영 전 차관의 사퇴는 추 장관에게 치명상을 입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 전 차관은 징계위원회에서 징계 청구권자인 추 장관을 대신해 위원장을 맡게 돼 있었다. 그러나 고 전 차관이 윤 총장 징계에 반대하며 사퇴라는 초강수로 맞서면서, 추 장관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징계위에서마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연합뉴스·뉴스뱅크이미지

직권남용으로 법적 책임질 수도

고 전 차관의 사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법무부 내부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조짐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12월1일 열린 감찰위원회를 통해 윤 총장에 대한 감찰·징계 과정이 정상적인 결재라인을 무시한 채 진행된 사실이 밝혀졌다. 박은정 감찰담당관이 직속 상관인 류혁 감찰관을 패싱한 채 추 장관에게 직접 보고해 왔다는 것이다. 박 담당관은 “‘보안상 감찰관에게 보고하지 말라’는 추미애 장관 지시를 따른 것”이라면서 오히려 이를 지적한 류 감찰관에게 “왜 나를 망신 주느냐, 사과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윤 총장 감찰 업무를 맡은 이정화 검사가 징계위에서 “판사 사찰’ 의혹에 대해 ‘죄가 안 된다’는 보고서 내용이 삭제됐는데, 박 담당관이 삭제 지시를 했다”고 밝히면서 박 담당관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법무장관-차관 다음 서열인 심우정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역시 윤 총장 직무정지 결재라인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윤 총장에 대한 감찰-징계는 박은정 감찰담당관, 심재철 검찰국장, 추 장관 정도만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류혁 감찰관은 감찰위가 열린 다음 날 반차를 냈다. 내부에서도 수습이 안 되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를 보여주듯, 법무부 검찰국 소속 검사들은 심재철 검찰국장을 찾아가 총장 직무배제를 재고해 달라며 항의했고, 법무부 소속 과장 등 10여 명도 추 장관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법무부 내부에서도 반발 기류가 확산된 것은 감찰·징계 과정에 심각한 하자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법무부가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보호 강화를 위해 만든 전국 검찰청 인권감독관들은 지난 11월26일 항의 성명을 냈다. 이어 대검은 12월2일 “수사 절차에 관한 이의 및 인권침해 주장을 담은 진정서가 제출돼 규정 및 절차에 따라 대검 인권정책관실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대검 인권정책관실이 대검 감찰부(부장 한동수 검사장)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만약 조사 과정에서 위법 혐의가 발견되면 일선 검찰청에 수사 의뢰를 할 수 있다. 또한 시민단체가 11월30일 추 장관과 심재철 검찰국장, 박은정 감찰담당관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건은 서울서부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박현철)에 배당된 상태다.

 이와는 별개로 국민의힘 등 야당은 추 장관과 윤 총장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한 상태다. 리얼미터-YTN이 11월30일 전국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정조사 찬성 59.3%, 반대 33.4%로 나타났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윤 총장의 징계 결과와는 별도로 감찰·징계 과정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이정화 검사의 증언으로 박은정 담당관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추 장관도 마찬가지”라면서 “최근 법원이 직권남용을 보수적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유죄 판결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추 장관은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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