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숨는 ‘샤이 文’, 목소리 높이는 ‘안티 文’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4 10:00
  • 호수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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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 지지율 첫 30%대 추락이 의미하는 정치적 셈법
“본격적 레임덕 말하긴 어렵지만, 위기의 신호탄은 분명”

원래 ‘절름발이 오리’라는 뜻의 레임덕(Lame Duck)은 주식투자에 실패해 가산을 탕진한 사람을 지칭하는 경제용어였다. 이 말이 정치권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미국 남북전쟁 무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개헌 이후 처음 꾸려진 노태우 정부 때부터 쓰였다는 게 정설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출범한 모든 정부가 예외 없이 겪어야 했다는 점에서 레임덕은 5년 대통령 단임제와 운명적 관계다.

ⓒ연합뉴스

통상 레임덕은 우리말로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으로 번역돼 사용된다. 그렇다면 ‘임기 말’의 정의는 무엇일까. 5년이라는 정권의 시간 중 언제부터를 임기 말로 정해야 할까.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출범한 역대 정부를 보면 임기 초반에는 높은 지지율을 보이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지지율이 떨어지는 ‘초고말저(初高末低)’ 현상을 보였을 뿐, 그 시기를 정확하게 정의하긴 힘들다. 다만 역대 어느 대통령도 임기가 끝나갈 무렵 지지율이 50%를 넘진 못했다. 몇 년 전부터 논의 중인 헌법 개정에서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으로 꼽히는 것은 5년 단임제가 가진 제왕적 권한과 레임덕의 폐해 때문이다.

레임덕과 지지율은 그런 면에서 상관관계가 크다. 역대 정부마다 지지율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속절없는 지지율 하락은 청와대의 국정 장악력 약화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대중·노무현·박근혜 정부를 출범시킨 과거 대선에서는 진보, 보수 간 표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이는 양측 모두 확실한 지지층이 있다는 방증이다.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리는 양측의 핵심 지지층을 정치권에선 대략 ‘지지율 40%’로 본다.

추-윤 갈등 피로감…지지율 꾸준히 하락세

12월 들어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아래로 떨어진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12월3일 리얼미터-TBS교통방송의 조사에선 지지율이 37.4%, 이튿날 한국갤럽 조사는 39%, 7일 리얼미터-YTN 조사는 37.4%로 내리 세 번 30%대를 기록했다. 세 조사의 공통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집계된 대통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최저치라는 점이다. 40%대 붕괴에 정치권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역대 정부의 경우 지지율의 변곡점이 대략 이 정도 시기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저서 《레임덕 현상의 이론과 실제》에서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 40%는 ‘양호한 상태’이며, 30%대면 ‘미흡함’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조사 결과도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됐다는 시그널로 볼 수 있을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아직은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구체적인 수치는 다르지만 문재인 정부 지지율의 변곡점은 지난해 8월 조국 사태와 올 7~8월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과 고위 공직자 다주택 논란, 그리고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이다.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응답률이다. 가장 지지율이 낮은 리얼미터-YTN 조사는 응답률이 4.6%였다. 반면 12월4일 한국갤럽 조사의 응답률은 15.1%였는데 이 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39%였다. 그리고 12월2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한국리서치 등 4개 기관의 합동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44%를 기록했는데, 이 조사의 응답률은 35.9%를 기록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문 대통령에 대한 적극적 비토층의 의견이 여론조사에 많이 반영되고 있으며, 반대로 지지층은 침묵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시간이 갈수록 ‘샤이 문재인’ ‘침묵의 민주당 지지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지층이 뒤로 숨는다는 이 현상 또한 지지 기반 약화의 전조 증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나마 여권에서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예의주시하는 것은 여권의 텃밭이라 불리는 호남과 3040세대·여성층에서 지지율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12월8일 문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한 데 대해 이례적으로 “심기일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지율은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 자체가 지지율 하락을 신경 쓰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맨 오른쪽)와 전혜숙 민주당 의원이 12월9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낙연·민주당 지지율 추락 “브레이크가 없다”

일반적으로 레임덕은 △대통령의 권위가 추락하거나 △정권 실세들의 반발 △친인척 비리 등이 터질 때 어김없이 나타났다. 이것이 국정 지지도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차기 대권주자들의 차별화로 이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정권 말 권력 약화 시 여권의 핵분열은 수도 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권력의 한 축인 여당의 움직임은 그런 면에서 정국 운영에서 중요하다. 대통령학 권위자인 폴 라이트는 △대선 득표율 △의회 내 여당 의석수 △국정 지지율을 대통령의 3대 국정운영 자원으로 꼽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만큼은 달랐다. 문 대통령의 집권 4년 차인 올해 1분기 지지율만 놓고 보면 역대 다른 대통령들보다 높았다.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거대 여당인 민주당의 존재감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그나마 민주당이 이만큼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문 대통령 지지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최근의 지지율 하락은 어떻게 봐야 할까. 대통령리더십을 연구하는 최진 소장은 “추미애 장관을 둘러싼 야권, 검찰과의 지루한 갈등이 누적되면서 최근 지지율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집값 폭등과 코로나19로 인한 서민경제 타격도 잠재적 불안요인이다.

 

코로나 방역 불만에 집값 폭등 더해져

다만 이러한 와중에도 여당이 견고한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여권 입장에서 보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분석이 많다. 문제는 이것이 차기 대선주자를 육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이낙연 대표의 리더십이 도마에 오른 모습이다.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의 줄임말)으로 불리며 강력한 당 장악력을 기대했던 이 대표는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지만 기대만큼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 관계자는 “애초부터 7개월짜리 당 대표라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여당 대표는 야당의 공세를 온몸으로 막아야 하지만 차기 주자는 새로운 어젠다(의제)를 내세우며 치고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표가 ‘감독’이라면 대선주자는 ‘선수’다. 그런데 이 대표는 지금 이도 저도 못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을 접수한 뒤 대선으로 직행한 ‘문 대통령식 대권 도전’을 계획했던 집권 프로세스에도 차질을 빚게 생겼다. 충청권 민주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내년 4월 재보선에서 당이 선전하면 그 공은 선거를 치르는 지도부인 비대위 몫이 되겠지만,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 모든 정치적 책임은 그 직전까지 지도부였던 이 대표가 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대표의 앞길에는 더 이상 꽃길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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