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문화계 결산] 2020 드라마 키워드는 《부부의 세계》와 이것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7 14:00
  • 호수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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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클라쓰》 《청춘기록》 등 새로운 청춘극 ‘화제’
웹툰 원작 드라마 전성시대 계속될지 주목

주요 방송사의 클립 VOD(주문형비디오)를 네이버와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 유통하는 스마트미디어렙(SMR)의 조회 수 분석 결과 JTBC 《부부의 세계》가 올해 드라마 1위를 차지했다. 2위 KBS 《한 번 다녀왔습니다》, 3위 tvN 《사랑의 불시착》, 4위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5위 JTBC 《이태원 클라쓰》, 6위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7위 SBS 《펜트하우스》, 8위 tvN 《하이바이 마마!》, 9위 SBS 《낭만닥터 김사부2》, 10위 tvN 《구미호뎐》 등의 순서였다.

최근 한 매체가 드라마 업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순위에서도 올해의 드라마 1위로 《부부의 세계》가 선정됐다. 그 아래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SBS 《스토브리그》,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JTBC 《이태원 클라쓰》, tvN 《악의 꽃》, OCN 《경이로운 소문》 등이 꼽혔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올해의 탤런트 부문에서는 《부부의 세계》의 김희애가 1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보면 올해 《부부의 세계》가 가히 신드롬적 인기를 얻었고, 그 중심에 김희애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영국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리메이크했는데, 한국 정서에 맞게 각색해 원작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간의 욕망, 부부간 애증의 심리를 깊게 묘사해 자극적 불륜극이지만 막장이 아닌 웰메이드 반열에 오른 작품이 됐다.

JTBC 《부부의 세계》 ⓒJTBC 제공 

김희애가 보여준 압도적 존재감 

영국의 원작 프로듀서가 찬사를 보냈을 만큼 김희애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이미 《아내의 자격》 《밀회》 등 불륜 히트작들을 보유한 김희애는 《부부의 세계》의 성공을 통해 치정 멜로 퀸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이 드라마는 안방극장에 19금 드라마의 성공 가능성을 각인시킨 기념비적 작품이 되기도 했다.

《이태원 클라쓰》도 올해 의미 있는 성공을 거뒀다. 2019년 시작해 올해까지 방영이 이어진 《사랑의 불시착》과 더불어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을 이끌었다. 아버지를 앗아간 원수에 대한 복수극이었지만 청춘 드라마처럼 제작됐다. 청년들의 ‘꿈과 일, 사랑’을 그린 것인데 과거 청년물처럼 막연히 밝기만 한 파스텔톤 명랑 드라마는 아니었다. 자본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현실을 그리면서 그 속에서 순수한 열정과 우정으로 성공을 일궈가는 성공 판타지를 담았다. 신자유주의 양극화와 불황에 내몰린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이 이 현실성에 공감하고 판타지에 열광했다. 박서준은 청춘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떠올랐다.

tvN 《청춘기록》도 청춘물이지만 20대의 현실적 박탈감을 리얼하게 묘사하면서 성공 판타지를 접목시켰다. ‘아프지만 청춘’이 아니라 ‘청춘이라서 아픈’ 그런 시대. 가진 것 없는 사람은 아플 수밖에 없는 양극화 구조에서 청춘은 당연히 없는 쪽이다. 올해 청춘물은 그런 현실을 반영하면서 성공이라는 대리만족까지 안겨줬다. 《청춘기록》에서 청춘의 표상을 연기한 박보검은 한국갤럽 올해의 탤런트 조사에서 김희애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남성 배우 중 1위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티빙(TVING)에서 올 한 해 가장 사랑받은 드라마 1위에 꼽혔다. tvN 《응답하라》 시리즈를 히트시킨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가 4년여 만에 함께 선보이는 신작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는데 이들은 결국 ‘왕관의 무게’를 이겨냈다.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킨 것이다. 특별한 자극적 설정 없이 일상을 따스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리는 《응답하라》 팀의 능력이 다시금 시청자들을 젖어들게 했다.

한국 드라마의 근본적 문제로 지적됐던 것이 주 2회 방영 체제였다. 사전제작이 드문 우리 풍토에서 방영과 동시에 주 2회 분량을 만들어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말이 안 되는 일을 우리 드라마 업계가 지금까지 해 왔다. 바로 관련 인력의 생명력을 갈아 넣었기 때문에 지탱할 수 있었던 체제다. 이 문제점이 여러 번 지적돼도 방송사들은 주 1회 체제로 개편하길 주저했다. 연속극의 몰입도가 깨질 것을 우려해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았다. 주 1회 방영을 시도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이다. 시청률 14%를 돌파하며 시청자의 지지를 받았다. 현재 시즌제가 예고된 상태인데 새 시즌까지 성공하면 주 1회 방영 시즌제라는 새로운 구조로의 개편에 더 힘이 실릴 것이다.

SBS 《스토브리그》도 올해 의미 있는 성공을 거뒀다. 스포츠물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한국 드라마계의 불문율을 깬 것이다. 그래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지만 사실 스포츠를 정면으로 그린 건 아니었다. 야구팀을 배경으로 했는데 경기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비시즌 시기에 팀을 개편하는 구단 운영팀의 분투가 주 내용이어서 오피스물의 성격이 강했다. 주인공이 조직의 ‘적폐’를 하나하나 척결해 나갈 때 시청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만큼 현실의 조직문화에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는 이야기다. 소재가 생소한 야구팀 운영 이야기라는 점도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신선한 소재와 공감 가는 이야기만 있다면 지상파 드라마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겼다.

(시계방향) tvN 《사랑의 불시착》·tvN 《청춘기록》·JTBC 《이태원 클라쓰》 ⓒJTBC·tvN 제공 

왕관의 무게 이겨낸 《슬기로운 의사생활》

《슬기로운 의사생활》과는 달리 왕관의 무게가 버거워 보였던 작품도 있다. 김은숙 작가와 이민호의 SBS 《더 킹: 영원의 군주》는 엄청난 기대를 모았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tvN 《비밀의 숲 2》도 올해 최대 기대작 중 하나였는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1편의 신드롬에 비하면 약간 힘이 빠진 모양새다. 물론 1편이 워낙 엄청난 명작이었기 때문에 평가절하되는 것이지 일반적인 작품들에 견주면 성공작이라 할 만하다.

올 후반기에 SBS 《펜트하우스》는 자극성을 한껏 높인 막장 전략으로 시청률 가뭄을 돌파하는 지상파 방송사의 모습을 보여줬다. 어른들과 아이들의 끝 모를 악행이 교차 편집되며 시청자를 뒷목 잡게 했는데, 비난이 쏟아졌지만 결국 인기 드라마의 반열에 올랐다. 케이블 채널, 종편, 유튜브, OTT 환란 시대에 결국 지상파 방송사가 믿을 동아줄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인 걸까?

웹툰 원작 드라마가 보편화된 것도 올해의 특징이다. 웹툰 원작 전성기의 도래다. 올 초 방영된 《이태원 클라쓰》의 대박이 그 출발점이었다. 그 전까지 웹툰 원작의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이렇게 한류 대박작까지 배출해 내자 웹툰은 가장 확실한 원작 발굴처가 되었다. 지금도 OCN 《경이로운 소문》, tvN 《여신강림》 등 웹툰 원작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고 OTT 오리지널 드라마도 웹툰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찾는다.

시청률 가뭄이 심해질수록 웹툰을 찾을 수밖에 없다. 플랫폼 간의 경쟁이 심해지고 콘텐츠가 너무 많아져 시청률 올리기가 힘들어지는 것인데, 그럴수록 시장에서 이미 검증되고 팬층도 두터워 실패 확률이 낮은 이야기를 찾게 된다. 웹툰이 바로 그런 사례다. 그러므로 2021년엔 더 많은 웹툰 원작 드라마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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