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산업’ 패션이 환경을 주목한 이유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6 10:00
  • 호수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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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국내 패션시장 변화의 ‘원년’
한국의 ‘파타고니아’는 나올 수 있을까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 2011년 11월 미국 유력지인 뉴욕타임스 지면에 이상한 광고가 등장했다. 1년 중 가장 큰 폭의 할인율이 적용되는 세일 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 때였다. 광고는 재킷 하나를 생산할 때 물 135리터가 필요하고, 제품의 운반 과정에서 완제품 무게의 24배에 해당하는 탄소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꼭 필요한 옷이 아니라면 사지 말라고도 조언했다. 모두가 물건을 팔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시기에 소비를 지양하자고 외치는 도발적인 광고는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광고를 내놓은 기업은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의 교복이라 불리는 플리스 조끼를 판매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다.

누군가는 고도의 상술이라고 비난했지만, 파타고니아는 오랫동안 환경에 관한 한 ‘진심’이었다. 페트병에서 폴리에스테르 원단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플리스 제품을 만들었고, 모든 면 제품은 유기농 목화로 제작했다. 적자든 흑자든 상관없이 매출의 1%를 자연환경의 보존과 복구에 사용하는 ‘지구세’로 기부한다. 고객들이 의류 쓰레기를 늘리지 않도록 평생 수선을 책임지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새 제품보다 중고 제품을 구매하도록, 구글에서 파타고니아 제품을 검색하면 중고 제품이 먼저 등장하게끔 이베이와 협약했다.

2020년에도 파타고니아는 ‘덜 사고, 더 요구하세요(Buy Less, Demand More)’라는 캠페인을 내놨다. 새 옷을 만들면서 발생하는 탄소와 각종 폐기물 등을 줄이기 위해 ‘덜 사고’, 기업에 재활용 제품이나 유기농 원단을 활용할 것을 ‘요구하라’는 것이다. 파타고니아가 전 세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제 친환경을 넘어 필(必)환경이 기본이 된 시대라는 것. 기후변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욱 고조된 지금, 전 세계 패션시장이 ‘환경’이라는 이슈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패션산업, 석유산업에 버금가는 공해

자본주의는 ‘패스트 패션’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개척했다. 빠르게 변하는 유행은 더 많은 옷을 사게 했다. 최신 유행을 즉각적으로 반영한 디자인, 저렴한 가격, 빠른 상품 회전율을 내세운 패스트 패션은 자라, H&M 등 SPA(기획과 판매 전 과정을 제조회사가 맡는 의류 전문점) 브랜드를 통해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를 만족시키면서 급격하게 성장했다. ‘한 철 입고 버리는 옷’이라는 개념까지 만들어냈다. 문제는 옷들이 만들어지고 버려지기까지 환경을 파괴하는 사이클이 계속 굴러간다는 점이다. 패션산업의 생산, 판매, 구매, 관리,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은 석유산업에 버금가는 공해로 꼽힌다.

일단 옷이 만들어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물이 사용된다. 유엔유럽경제위원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산업용 물의 20%가 의류를 만드는 데 쓰인다. 목화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살충제는 전 세계 농약 사용량의 20%에 달한다. 그린피스는 청바지 한 벌을 생산할 때 물 7000리터가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32.5kg 배출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만드는 것도, 세탁도, 버리는 것도 문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2017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35%가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서 생산한 합성섬유 세탁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학섬유는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데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폐기된 옷이 썩거나 소각될 때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 메탄가스가 배출된다.

통계를 보자. 환경부의 환경통계포털에 따르면 2013년 138.8t이던 국내 하루 평균 의류 폐기물량은 2014년 213.9t까지 증가했다가 2015년 154.4t으로 줄어들었고, 2018년 다시 193.3t으로 늘어났다. 무려 75t가량의 의류 폐기량이 늘어난 2013~14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SPA 브랜드의 성장이 있었다. 2013년은 SPA 브랜드가 오픈마켓에 론칭되고, 해외 SPA 브랜드가 상륙하고, 백화점 SPA 전문관이 들어서는 등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한 SPA 브랜드들의 공격적인 확장이 있던 해다. 패스트 패션 시장이 커지면서 버려지는 옷도 늘어났다. 유행에 뒤처진 옷, ‘한 철 입는 옷’은 더 쉽게 쓰레기가 됐다.

패스트 패션 하향세…소비자 인식 변해 

다행히 이제 소비자들도 구매 요소로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는 시대가 됐다. 2020년 미국의 ‘맥킨지 뉴 에이지 컨슈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66%가 제품 구매 시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75%는 밀레니얼 세대로 나타나 젊은 층일수록 지속 가능성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도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커니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환경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됐다는 응답자가 48%였다. 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장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으로 소비가 결정되는 시대는 끝났다”며 “대안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신념·명분 소비 트렌드가 뿌리내리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패스트 패션은 하향세다. 대표적인 SPA 브랜드로 자라, H&M과 함께 시장을 주도했던 포에버21은 2019년 파산보호 신청을 하고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뉴욕타임스는 ‘패스트 패션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라고 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패스트 패션이 티핑 포인트(극적으로 돌변하는 시점)에 달했다’고 평가하며 업계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H&M도 지난 2018년까지 3년 연속 이익이 감소했다.

패스트 패션이 패션업계를 주도하면서 발생한 환경적인 문제들은, 패션업계 전체가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화두를 던져줬다.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패션은 다양한 형태를 띤다. 재활용된 플라스틱이나 자투리 옷감 등으로 원단을 만드는 리사이클 패션, 동물성 소재를 배제하고 유기농 재료들을 사용하는 비건 패션, 천연 재료로 염색을 하거나 물 사용을 줄이는 등 옷을 만드는 공정이 친환경적인 윤리적 패션, 입었던 옷 혹은 팔지 못한 옷 등을 다시 한번 판매하는 리세일 패션 등이다. 삼성패션연구소가 2020년을 되돌아보며 발표한 ‘2020 패션산업 10대 이슈’에 따르면 자원의 재활용을 비롯한 지속 가능성의 고려는 더욱 강조되는 분위기다.

2011년 11월25일 파타고니아가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광고. 파타고니아는 “이 광고는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방안을 실행한다는 우리의 사명을 실천하는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파타고니아
2011년 11월25일 파타고니아가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광고. 파타고니아는 “이 광고는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방안을 실행한다는 우리의 사명을 실천하는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파타고니아

국내 기업들도 친환경 제품 출시 나서

트럭 방수포 등을 재활용해 가방을 만든 스위스 브랜드 프라이탁 등 재생 소재 제품을 일찌감치 제작하면서 지속 가능성을 검증받은 글로벌 패션업체들과 달리, 그동안 국내 패션업체들은 업사이클링이나 친환경 소재를 이용한 제품 제작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환경 이슈가 부각되고 소비자들의 인식이 변하면서 국내 패션기업들도 지속 가능한 패션을 기업의 주요한 화두로 잡고 친환경 제품 출시에 나섰다. 2020년을 친환경 행보를 펼치는 원년으로 삼고, 한국의 ‘파타고니아’가 되기 위한 경쟁에 발을 들인 셈이다.

먼저 ‘소재’다. 삼성물산의 빈폴은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라인을 출시했고, 버려진 페트병을 재생한 충전재를 개발해 일부 제품부터 적용하기 시작했다. 블랙야크는 서울 강북구 등과 친환경 제품 생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강북구에서 수거된 투명 페트병을 재활용한 재생 섬유로 의류와 아웃도어 용품을 생산하기로 했다. 중견 패션기업 형지엘리트는 오는 3월 출시를 목표로 폐페트병 원사를 활용한 친환경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생산 공정에서 친환경을 중시하는 기업도 있다. LF는 데님 공정에서 물과 천연가스를 절약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코오롱 FnC는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브랜드를 소개하는 ‘위두’ 카테고리를 신설했고, 노스페이스는 공정과 포장에도 친환경 기술을 적용해 포장 비닐이나 박스 대신 천 소재 백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한국유통학회 명예회장인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짧은 주기로 대량 생산·유통되는 의류들은 제조와 폐기, 소각까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뿐 아니라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환경 친화적인 소재를 선택하고, 소재와 자원을 절약하는 방향으로 기업의 전략 수정이 필요한 시대”라며 “정부도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 등을 주고, 친환경 제품 인증 마크 등을 만들어 ‘착한 소비자’의 선택을 유발할 수 있도록 정책적 리딩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환경부와 국내 기업들의 협업을 통해 수거된 페트병으로 생산한 재활용 의류 제품들 ⓒ연합뉴스

파괴의 주범으로 지적됐던 패스트 패션 업계도 빠르게 발을 맞추고 있는 모양새다. H&M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재활용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의류를 공개하고, 2030년까지 100% 재생·지속 가능한 패브릭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자라와 H&M을 소유하고 있는 인디텍스 등 업계와 운동단체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3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기후행동을 위한 패션산업 헌장’을 만들었다. 원료의 전환, 재사용·재활용 시스템에 대한 투자와 함께 ‘일회용 패스트 패션 문화’를 단절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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