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신용자 ‘영끌’ 돕고 저신용자 대출 조인 4대 금융지주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20 14:00
  • 호수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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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대출 현황 살펴보니…코로나 장대비에 ‘서민 우산’ 먼저 뺏었다

은행이란 무엇일까. 우선 금융‘회사’로서 이익을 좇는 영리기업이다. 나라 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타이밍에 맞춰 적재적소에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은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융산업의 핵심 축인 은행이 수익을 올리는 것은 나라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은행에는 사회적 책무도 요구된다. 은행은 경제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공적 기능을 한다는 의미에서 ‘인체의 피’에 비유된다. 정부는 IMF 외환위기 등 은행들이 큰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왔다. 은행이 무너지면 금융 시스템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부가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부실 금융회사에 투입한 공적자금만 모두 165조원이다. 

그렇다면 국민이 은행에 대해 갖는 인식은 과연 어디에 가까울까. ‘예금금리를 올릴 때는 찔끔 천천히 올리고, 대출금리는 그 반대’라는 게 은행 고객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리고 실제 이런 전략으로 지금 같은 불경기에도 은행들은 분기마다 엄청난 이익을 올린다. 예금과 대출금리의 차이인 예대마진이 은행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은 60% 안팎인 반면 우리는 90% 수준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비 올 때 우산 뺏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오랫동안 은행들이 중소기업과 서민들이 어려워질 기미를 보이면 가장 먼저 달려들어 대출을 회수하거나 담보자산을 처분해 왔기 때문이다. 비가 세차게 내릴 때 오히려 우산을 걷어가는 격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은행들이 기업과 가계의 신용을 평가하고 발굴하는 노력과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코로나 쇼크가 본격화되던 지난해 3월 정부와 금융권은 미증유의 위기를 맞은 경제를 살리겠다며 ‘금융 지원 협약’을 맺었다. 당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은행의 코로나19 관련 여신 취급 사안을 향후 검사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부실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최대한 빌려주라는 뜻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그간 금융에 대해 ‘햇볕 날 때 우산을 빌려주고 비 올 때 우산을 걷어간다’는 뼈아픈 비판이 있었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는 당부를 했다. 과연 현실은 어땠을까. 

중·저신용자들이 몰려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위기에 제1금융권 대출에 애를 먹었다. ⓒ연합뉴스

신한·KB·하나·우리銀, 저신용자 대출 줄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4대 금융지주 산하 신한·KB·하나·우리은행은 코로나 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고신용자들의 대출 비중은 늘리고 중·저신용자들의 대출은 줄인 것으로 확인됐다. ‘황금어장’이라 불리는 1~3등급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 대출’은 적극 돕고, 정작 가장 도움이 필요한 4등급 이하 중·저신용자들의 대출은 회피한 것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은행 입장에선 위험을 피하기 위한 당연한 의사 결정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은행은 공적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는 관점에선 은행들의 이런 모습은 야속하고 아쉽다. 

특히 시사저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4등급 이하 중·저신용자들의 대출 연체율은 코로나 위기 한복판에서도 1~3등급 고신용자들과 비교해 큰 문제가 없었다. 원리금 상환 유예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상당수 은행에서 중·저신용자들의 연체율이 개선되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이들의 대출을 줄였다.

지난해 6월말과 9월말 사이 고신용자들의 대출을 가장 많이 늘리고, 중·저신용자들의 대출을 가장 많이 줄인 은행은 하나은행이었다. 시사저널이 국회 정무위원회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가계자금 대출의 경우 1~3등급의 대출 비중은 81.2%에서 82.7%로 1.5%포인트 늘렸다. 반면 5등급 이하의 가계자금 대출 비중은 9.4%에서 8.6%로 0.8%포인트 줄였다. 

하나은행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에서도 다른 은행들보다 훨씬 도드라진 모습을 보였다. 같은 기간 1~3등급의 주택담보대출 비중을 1.6%포인트 높이고 5등급 이하의 대출 비중을 0.8%포인트 낮췄다. 신용대출 역시 1~3등급 비중을 1.2% 늘리고 5등급 이하 비중을 1.0% 낮췄다.  

이런 흐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머지 세 은행도 유사했다. 1~3등급 가계자금 대출의 경우 우리은행은 비중을 0.9%포인트 늘렸지만 5등급 이하 대출은 0.4%포인트 줄였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1~3등급 대출은 각각 0.7%포인트, 0.6%포인트 증가한 반면 5등급 이하 대출은 0.3%포인트, 0.2%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KB·하나·우리은행은 가계자금 대출의 경우 1~3등급의 대출금리는 2%대인 반면, 그 외 등급에서는 3~4%대 금리를 요구했다. 최하 등급의 경우엔 5~6%대 금리를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중·저신용자 연체율은 오히려 개선돼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위험 회피에 나선 것인데, 정작 이 기간에 중·저신용자들의 대출 연체율은 오히려 줄거나 고신용자와 비교해 큰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 

하나은행의 경우 작년 6월말과 9월말의 5등급과 6등급 연체율은 각각 0.43%에서 0.41%로, 0.99%에서 0.82%로 줄어들었다. 이는 코로나 위기가 있기 전인 2019년 말 기준의 연체율인 0.47%와 0.91%와 비교해도 양호한 수준이다. 1~3등급의 연체율이 0.1% 미만이라 워낙 양호한 수준이지만 개선 폭은 중·저신용자들도 못지않았다. 7등급과 8등급의 경우 연체율이 0.84%에서 0.93%로, 1.09%에서 1.25%로 높아지긴 했다. 하지만 9등급과 10등급의 연체율은 2.46%에서 2.06%로, 9.91%에서 8.60%로 오히려 개선되는 모습이었다. 

이 역시 관점에 따라 두 가지의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은행들이 선제적으로 중·저신용자들의 대출금을 줄여 연체 위험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분석이 있을 수 있다. 원리금 상환 유예의 영향일 수도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중·저신용자들이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대출금을 성실히 갚아나가고 있는데 은행이 지레 겁을 먹고 이들의 우산을 걷어가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 기간에 중·저신용자들의 연체율은 다른 은행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한은행의 경우 5~6등급의 연체율은 1.15%에서 0.98%로, 2.18에서 1.84%로 개선됐다. 7~8등급도 2.70%에서 2.39%로, 1.69%에서 1.53%으로 줄어드는 모습이었다. 우리·KB국민은행에서도 비슷한 흐름은 포착됐다. 

은행들의 이런 모습에 대해 홍 의원은 “은행이 위험 관리를 명목으로 중·저신용자 대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지만,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실물경제가 어려워지면 결국 금융권도 불황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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