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코로나19 출구전략은 ‘녹색 회복’
  • 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28 08:00
  • 호수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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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위기·경제위기·기후위기 삼중고에 신음하는 EU, 역대 최대 예산 책정으로 기후변화 대응

전 세계가 초유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혼란을 겪었던 2020년에도 기후변화는 가속도를 냈다. 유럽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의 락다운(봉쇄)으로 화석연료 소비가 7%나 감소했지만 전 지구의 연평균 기온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1월9일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는 2020년이 2016년과 함께 역대 가장 더운 해라는 분석을 발표했다. 2016년 기온 증가를 유발했던 엘니뇨 현상을 고려하면 사실상 지난해가 사상 최고의 기온인 셈이다. 

특히 북극과 북시베리아 지역은 지난해 평균 3~6도 높은 온도 상승 현상을 보이면서 심각한 산불과 영구동토층의 융해를 초래했다. 이는 각각 엄청난 규모의 이산화탄소 및 메탄의 북극 대기권 방출을 의미한다. 아울러 북극해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자 그간 어업과 사냥 등으로 생업을 이어오던 그린란드 및 러시아 원주민들의 생존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환경 파괴 정책에 항의하는 원주민 대표들을 체포하거나 기소로 대응하면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유럽에서도 극단적인 기후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스 등 남부유럽은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으로 고충을 겪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는 4년 전에 217년 만의 최악의 가뭄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6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었다. 스페인은 1월 수도 마드리드가 영하 10.9도를 기록하며 1904년 이후 최대 폭설을 경험했다.

폭설이 내린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콜론 광장에서 1월9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스키를 타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 앞을 지나가고 있다.ⓒ연합뉴스
폭설이 내린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콜론 광장에서 1월9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스키를 타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 앞을 지나가고 있다.ⓒ연합뉴스

탄소 감축 목표도 55%로 상향 조정키로

유럽은 코로나19로 인한 의료위기·경제위기·기후위기라는 삼중고를 겪게 되자 위기 극복의 열쇠를 ‘녹색 회복(Green Recovery)’으로 판단하고 있다. 기후 중립, 지속 가능한 경제와 공정한 전환을 표방하며 당면한 위기들의 근본적인 해결은 그린딜을 중심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녹색 회복 정책은 지구온난화 완화에 필수적인 온실가스 감축 외에도 재생 에너지 확대 및 건물 난방 효율화 등의 사업을 통한 녹색 일자리 창출, 고용보장 및 직업재훈련을 통한 공정한 전환 등 다양한 사회적 불평등 해소 등을 우선순위로 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합의는 지난해 12월17일 통과한 유럽연합(EU)의 총 1조8000억 유로 예산에서 두드러진다. 올해부터 2027년까지 적용되는 이 EU 역대 최대 예산은 그린딜을 중심축으로 전체 예산의 30%를 기후변화 대응에 사용할 계획이며, 나머지 예산도 2050 탄소 중립 목표에 역행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두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가져온 총체적인 경제위기 극복을 목표로 한 ‘차세대 유럽연합(Next Generation EU)’ 긴급예산(7500억 유로)은 녹색 회복, 디지털화, 복원력을 더 강화한 유럽 재건의 방향으로 기획됐다. 팬데믹이 가져온 영향을 완화하고자 기획된 핵심 프로그램(RRF)에는 총 6725억 유로(89%)가 책정돼 회원국의 개혁과 투자계획을 위해 융자와 지원금 형식으로 지급될 예정이다. 유럽 정상들은 지난해 12월 브뤼셀에서 2030년까지 탄소 감축 목표를 기존 40%에서 55%로 상향 조정하는 데 합의했다. 유럽의회는 60% 목표를 추진 중이다.

독일은 지난해 6월 1300억 유로 규모의 코로나19 경제 회복 정책을 발표하는 가운데, 23%(300억 유로)를 기후변화 대응에 투입하면서 야심 찬 녹색 회복 정책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3월에 이은 추가 지원으로, 독일 정부는 경제 회복을 위해 필요한 재원을 최대한 투입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지원 대상에 포함된 업종과 기술은 재생 에너지 투자, 녹색수소 연구 및 개발,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지원, 철도 개선, 5G 데이터 네트워크 건설 및 양자컴퓨터 투자 등 크게 기후변화 대응과 미래기술 투자로 요약된다. 지난 2008년 경제위기 때와는 달리 일반 승용차는 지원에서 제외돼 자동차 업계의 반발을 부추겼지만,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래를 고려한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원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고 일축했다.

 

“팬데믹보다 기후위기 파급력 훨씬 더 심각”

이렇듯 유럽에서 팬데믹으로부터의 경제 회생이 ‘녹색 회복’ 성격을 띠게 된 배경에는 정치권의 의지 외에도 사회 각계각층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 지난해 4월9일 17개 EU 회원국 환경부 장관들은 성명서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이 경제 회복 전략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서 발표 이후 유럽의회는 4월14일 코로나19 이후의 녹색 회복을 위한 ‘녹색회복동맹’을 창설했다. 유럽의회 환경위원회 파스칼 캉팡 의장의 제안에 유럽 11개국 장관과 79명의 유럽의회 의원 외에도 기업 대표, 45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유럽노동조합연맹(ETUC), 시민사회단체와 싱크탱크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했다. 이 동맹은 “경제 회복은 일자리 보장 및 창출과 아울러 경제위기에 영향을 받은 모든 기업, 지역, 분야에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영국에서도 57개 자선단체의 연합체인 ‘기후연합(Climate Coalition)’이 녹색 회복을 외쳤다. 이들은 영국 정부의 모든 기업 코로나 지원 패키지에 엄격한 탄소 배출 감축을 조건부로 하고, 장기적인 녹색 일자리 창출을 요구했다. 또한 코로나19와 기후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개발도상국의 채무를 변제해줄 것도 요구했다. 지난해 6월 영국 총리를 향한 이 공개 서한에는 옥스팜, 세계자연보호기금(WWF), 여성기구(Women’s Institute) 등이 참여했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는 올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를 앞두고 있다.

독일 뮌헨공대 환경 및 기후정책학과 미란다 슈로이어스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지구온난화의 악영향으로 기존 바이러스의 급증과 새로운 전염병의 잦은 출현을 경고해 왔다”며 기후변화와 전염병 증가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또한 “팬데믹은 세계경제에 엄청난 파괴력을 증명했는데, 기후위기의 파급력은 훨씬 더 심각하다”며 “현재도 홍수·허리케인·가뭄의 경제적 폐해는 엄청나지만 앞으로 더 악화될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인류와 다수 생물종의 생존조차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대부분의 유럽인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고 녹색 회복 정책을 지지한다”며 다만 “당면한 문제는 재정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해 실질적인 탄소 중립을 이뤄내느냐다. 생물 다양성도 심각한 문제이므로 대규모의 숲 조성 같은 탄소 상쇄 사업도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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