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왕국’ 디즈니, 한국 OTT 시장 흔들까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2.04 08:00
  • 호수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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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스타워즈·픽사·내셔널지오그래픽으로 무장…넷플릭스와 다른 경쟁력 주목

디즈니가 온다. 디즈니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디즈니플러스가 올해 한국 출시를 확정했다. 디즈니가 그저 미키마우스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 회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마블과 스타워즈, 픽사는 물론 내셔널지오그래픽으로 무장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는 2019년 북미 지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후 1년 만에 전 세계 구독자 1억 명을 모았다. OTT의 절대강자 넷플릭스를 가장 위협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디즈니플러스다. 여기에 더해 애플TV플러스, HBO맥스 채널 등 다른 글로벌 OTT들도 최근 한국 상륙을 예고했다. 왜 글로벌 OTT들은 한국 침공에 나서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시장은 특히 디즈니플러스를 주목하고 있는 걸까.

디즈니의 OTT 디즈니플러스가 올해 한국에 진출한다.ⓒAP 연합

글로벌 OTT 유혹하는 K콘텐츠의 힘

많고 많은 해외시장 중 글로벌 OTT들이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넷플릭스의 성공에 담겨 있다.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OTT라는 시장을 새롭게 개척해 냈다. 사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2016년만 해도 한국에서 구독경제라는 개념은 매우 낯설었다. 넷플릭스가 자체 보유한 콘텐츠의 양도 충분치 않았고, 우리의 눈에는 익숙하지 않은 장르의 콘텐츠가 많았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한류의 세계적 확장성에 주목했고, 바로 여기서 새로운 시장을 열어젖혔다. 넷플릭스가 거대 자본을 기반으로 《옥자》 《킹덤》 등 고퀄리티의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나서자 대중의 관심은 폭발했다. 구독자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한국인의 넷플릭스 결제금액이 5000억원을 넘었다는 분석(와이즈앱·만 20세 이상 카드 결제 표본조사)도 있다.

넷플릭스가 기획하고 국내 제작사들이 만든 K콘텐츠는 세계에서도 먹혔다. 넷플릭스의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들은 베트남·필리핀·대만·태국 등 아시아 8개국을 휩쓸며 넷플릭스에 새로운 성공방정식을 선사했다. 바로 ‘한국에서 만들어 대박을 치면 아시아에서도 흥행한다’는 법칙이다. 넷플릭스에 아시아 시장은 매우 매력적이다. 문화가 비슷한 북미와 유럽 시장은 시장의 파이가 이미 한계치에 달했다. 하지만 인구가 많은 아시아는 아직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실제 지난해 3분기 넷플릭스 신규 유료 가입자 중 46%는 아시아에서 발생했다. 아시아 지역이 넷플릭스 성장의 핵심 지역으로 떠오른 것에 대해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 투자 확대를 성공 배경으로 꼽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2015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 콘텐츠에 약 7700억원을 투자했다. 넷플릭스의 이 성공방정식이 글로벌 OTT를 자극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OTT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OTT 시장 규모는 2014년 1926억원에서 2020년 7801억원으로 커졌다. 글로벌 OTT로서는 한국이 ‘탐나는 시장’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시장을 넷플릭스가 이끌고 있다. 닐슨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1월 기준 월평균 이용자 수는 넷플릭스(637만 명)가 웨이브(344만 명)와 티빙(241만 명) 등 토종 OTT를 압도하고 있다.

압도적인 콘텐츠로 무장한 디즈니

디즈니는 넷플릭스와 같고도 다르다. 콘텐츠를 기반으로 영역을 확대한다는 메커니즘은 같다. 하지만 그 양과 질의 차원이 다르다. 역사가 쌓은 압도적인 콘텐츠가 있다. 전 연령대를 공략할 수 있다. 세계적 팬덤을 보유한 마블과 스타워즈가 있다. 겨울왕국과 토이스토리, 심슨 가족이 어린이들에게 가진 영향력은 상상초월이다. 중장년층이 애정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도 갖고 있다.

디즈니의 강점을 잘 보여주는 조사가 있다. 미국에서 2019년 5월 넷플릭스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마블 영화가 없어지거나 디즈니 콘텐츠가 없어지면 각각 22%와 20%의 이용자가 구독을 취소하겠다고 답변했다. 특히 OTT의 핵심 구독자인 18~29세 연령에서 디즈니 콘텐츠에 대한 애정이 더 컸다. 마블 영화가 빠지면 35%의 이용자가, 디즈니 영화가 사라지면 26%가 넷플릭스 구독을 해지하겠다고 응답했다.

《OTT 플랫폼 대전쟁》의 저자 고명석 교수(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객원교수 역임)는 “디즈니가 보유하고 있는 전 연령대 대상 자체 콘텐츠의 양과 질은 다른 OTT 플랫폼이 볼 때 ‘넘사벽’이다. 무엇보다 팬들의 높은 충성도가 장점이다. 세계 모든 어린이는 디즈니와 함께 어른으로 성장했다”며 디즈니 콘텐츠의 팬덤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5년은 적자를 감수할 각오를 했다고 디즈니가 공언할 만큼 대규모 투자로 만들어지는 OTT 플랫폼이다. 최소 몇 년간은 마르지 않는 자금줄을 바탕으로 한 가성비 높은 서비스 제공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세계가 사랑하는 디즈니의 콘텐츠들이 디즈니의 자체 OTT만으로 공개될 경우 글로벌 OTT 시장에 지각변동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양한 연령대 공략하지만…약점은?

콘텐츠 공룡 디즈니에도 약점은 있다. 성인들을 위한 콘텐츠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고 교수는 “디즈니는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달리 자사 콘텐츠만 서비스한다. 그래서 성인들을 위한 콘텐츠는 다양하지 않다. 타사 OTT처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한곳에) 집중되지 않는다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디즈니가 꺼내든 카드는 바로 디즈니의 새로운 스트리밍 브랜드인 ‘스타(Star)’다. 스타는 21세기폭스의 영화와 FX채널 시리즈를 제공한다. 디즈니가 2019년 80조원에 인수한 21세기폭스는 《엑스맨》 《보헤미안 랩소디》 《에일리언》 《아바타》 등 성인 대상 콘텐츠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디즈니플러스의 시청 연령대를 크게 넓혀줄 수 있다.

디즈니가 초반에 한국에서 폭발력을 보이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구독경제 전문가인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은 “우리나라 OTT 구독 시장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파격적인 구독료 등 다른 메리트가 없다면 애니메이션을 선호하는 어린이층 또는 디즈니·마블 등의 팬덤층을 제외하고는 추가적인 구독료를 지불한다거나 기존 OTT 구독을 해지하면서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하려는 이용자들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체 콘텐츠가 풍부하고, 디즈니도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갈 것이기에, 5년 이상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결국 OTT 시장은 디즈니와 넷플릭스가 양분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강준석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디즈니플러스 론칭 전, 보고서를 통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했다. 디즈니가 가입자 기반을 확보하는 데 실패할 경우에는 독점 콘텐츠 제공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콘텐츠 경쟁력을 활용해 성공하는 경우에는 기존 OTT들을 추월할 수도 있다고 봤다. 아울러 성장하는 OTT 시장에서 다수의 상위 사업자가 돼 시장을 나눠 가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시나리오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직 모른다. 글로벌 콘텐츠 공룡 디즈니의 한국 침공은 성공할 수 있을까. 작지만 강한 한국의 OTT 시장에서 디즈니가 어떤 스토리를 그려낼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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