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곳곳서 쏟아지는 ‘대형 선사 수수료 갑질’ 하소연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02.10 14:00
  • 호수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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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해운중개업체 JK쉬핑, “수수료 달라” 소송 제기
현대글로비스 “용선료 아닌 손배금에 수수료는 포함 안 돼”

#사례1: 해운중개업체 수수료는 통상 3개월 이내에 지급한다. 하지만 A선사는 자금 흐름이 안 좋다는 이유로 수년간 중개업체에 수수료를 주지 않고 있다.

#사례2: B선사는 화주가 체선료(계약된 기간 내에 화물을 선적하거나 하역하지 못해 발생한 비용)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운중개업체에 수수료를 주지 않았다.

#사례3: C선사 담당자는 해운중개업체에 “다음 항차 때 수수료를 주겠다”며 수수료 지급을 미뤄왔다. 그런 와중에 C선사의 담당자가 바뀌었다. 새로 온 담당자는 “내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수수료를 줄 수 없다”고 했다.

해운중개업(Ship Brokering)은 해운법상 화물운송·선박대여·매매 거래 등을중개하는 해운 전문 서비스업이다. 해운법상 보호받아야 할 해운업종 중 하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시저널이 만난 여러 명의 해운중개업체 대표는대형 선사의 ‘수수료 갑질’에 대해 토로했다. 대형 선사들이 수수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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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선적부두에서 현대글로비스 소속 선박이 차량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중개수수료 못 받는 해운중개업체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중개업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실명과 회사명 그리고 갑질한 선사를 밝히길 극도로 꺼렸다. 수년째 중개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 인사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 해운업계 구조상 중개업체들은 대형 선사와 많은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중개업체가 ‘대기업에 수수료를 떼였다’고 문제를 삼으면, 업계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실제로 이런 인식은중개업계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중개업체들이 선사에서 수수료를 받지 못하거나, 각종 부당한 일을 겪어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그런데 최근 한 중개업체가 대형 선사에 반기를 들며 소송을 제기해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JK쉬핑은 현대글로비스가 ‘중개수수료를 주지 않는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중개업체가 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지난해 말 조정법원은 현대글로비스가 JK쉬핑에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현대글로비스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중개업체와 대형 선사 간 본격적인 민사소송전이 시작됐다.

사건의 발단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글로비스(선주)는 한화케미칼의 자회사인 NHL개발(용선주)과 장기 용선계약(10년)을 맺었다. NHL개발이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선박을 임대한 것이다. 양사의 용선계약서에 따르면 NHL개발은 매달 현대글로비스에 용선료 4억7000만원(43만5000달러)을 지급했다. 10년간 계약 규모는 1712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용선계약을 JK쉬핑과 H사가 공동 중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글로비스는 이들 중개업체에각각 용선료의 0.625%를 수수료로 지급한다고 계약했다.

그런데 2017년, 이 장기 용선계약이 해지됐다. NHL개발이 갑자기 청산됐기 때문이다. 한화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한화케미칼은 일감 몰아주기와 승계 문제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대대적인 조사를 받고 있었다. 한화케미칼이 문제가 될 법한 계열사를 정리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현대글로비스는 NHL개발에 남은 계약 기간(8년)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2018년 중순경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영국 런던중재법원에서 진행됐다. 양사가 분쟁이 일어날 경우 ‘영국법’을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1년 뒤, 런던중재법원은 NHL개발에 현대글로비스에 손해배상금 23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해2월경, JK쉬핑은 현대글로비스가 NHL개발에서 손해배상금을 받았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후 손해배상금에 수수료가 책정됐는지 확인하기 위해현대글로비스 측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이에현대글로비스 법무팀은 “공개할 의무가 없고, 수수료를 줄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JK쉬핑이 두 차례에 걸쳐 내용증명을 보내자, 현대글로비스는 JK쉬핑과 관련된 모든 거래를 중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JK쉬핑은 현대글로비스에 ‘중개수수료를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양측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JK쉬핑은 “해지된 계약의 직접적인 중개인으로서 계약기간 동안 받아야 할 중개수수료에 대한 책정 기회 및 금액을 현대글로비스가 박탈했다”고 주장했다. 현대글로비스는 “계약해지에 따른 손해배상을 받은 것이지, 용선료를 받은 게 아니다. 수수료가 손해배상금에 책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은 JK쉬핑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12월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법원은 현대글로비스에 ‘JK쉬핑에 2억8750만원의 중개수수료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법원이 이 같은 결정을 한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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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글로비스와 JK쉬핑의 조정 결정문

‘수수료 끼워넣기’ 의혹도제기

먼저 현대글로비스가 NHL개발과 손해배상금을 책정하는 과정에서 JK쉬핑에 아무런 통보 없이 수수료를 제외한 게 문제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글로비스 측은 손해배상금에 JK쉬핑의 수수료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런던중재법원 판결문에는 ‘중개수수료(Commission)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나와 있다.

하지만 당시 계약 과정을 상세히 알고 있는 NHL개발 전 임원은 익명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런던중재법원에서 현대글로비스와 NHL개발이 JK쉬핑을 배제한 채 손해배상금에서 ‘수수료를 제외하자’고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JK쉬핑은 수수료를 받아야 할 당사자다. 중개업체를 배제한 채수수료를 주지 않기로 합의한 건 부당한 일이다.” 해운업계에서는 현대글로비스 손해배상금에는 마땅히 수수료도 포함돼야 합당하다고 지적했다. 런던중재법원 판결문에 ‘중개수수료’란 용어가 언급된 것 자체가 JK쉬핑에 지급할 돈이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서울중앙지법 조정법원은 손해배상금 중 ‘1.25%가 JK쉬핑의 수수료’라고 인정했다. 이는 JK쉬핑이 계약한 수수료(0.625%)보다 두 배 높은 수치다. 법원이 JK쉬핑의 수수료를1.25%라고 계산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목에서 현대글로비스의 ‘수수료 끼워넣기’ 의혹이제기된다.

중개업계에 따르면 통상 수수료는 1~1.5%다. 이 때문에 JK쉬핑도 최초에 계약을 추진했을 때 업계 관례대로 수수료 1.25%를 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계약 담당자였던 김아무개 현대글로비스 팀장이 다른 중개업체인 ‘H사’를 끼워넣으면서 수수료가 반 토막(0.625%)이 됐다고 한다. 실제로 용선계약서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가 JK쉬핑과 H사에 각각 0.625%의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명시돼 있다.김용국 JK쉬핑 대표는 “김 팀장이 계약 성사 막판에 H사를 데리고 와서 공동용선중개업체로 넣으라고 지시했다”며 “안 넣으면 중개 수수료를 우리 회사에 주지 않을 것이라고말했다.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런 전후 사정을 종합해 JK쉬핑의 수수료를 0.625%가 아닌 1.25%로 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JK쉬핑의 법률대리인인 정준모 법무법인 다빈치 변호사는 “애초 의뢰인은 계약한 수수료 0.625%만 요구했지만, 현대글로비스가 재판 과정에서 일관되게 줄 수 없다고 했다”며 “이 때문에 중개 수수료 계약 과정이 애초에 부당했다는 점을 강조했고, 법원도 현대글로비스가 H사를 끼워넣은 게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H사에 관련 취재를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한편 H사를 끼워넣었던 담당자는 업체에서 각종 향응 접대를 받은 사실이 감사팀에 적발돼 2016년 하반기 현대글로비스를 퇴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수수료 끼워넣기가 리베이트성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해운중개업체가 대형 선사와 거래할 때 수수료로 받은 돈의 일부를 뒷돈으로 되돌려주는 건 오래된 관행이라고 한다. 실제 과거 해운업체 임직원들이 해운중개업체에서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기소되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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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중개업계가 해운 불황과 선사의 수수료 갑질로 신음하고 있다. 2020년 11월13일 부산항에서 컨테이너선이 화물을 선적하고 있다.ⓒ연합뉴스

현대글로비스, 법원 결정에 이의 제기해 ‘소송’

이에 대해 현대글로비스는 “회사 측이 거래상 지휘를 남용해 불법을 저지른 일은 없다. 계약 과정에서 또 다른 중개업체를 끼워넣은 게 아니라, 우리 측 중개인을 내세운 것뿐”이라며 “이건 불법이 아니라 해운업계 특수성에 기인한 하나의 사업 모델”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팀장이 불미스럽게 퇴사한 건 맞지만, 이 일과는 무관하다. 자세한 내용은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한편 현대글로비스는 조정법원 결정이 ‘부당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향후 재판에서 현대글로비스의 손해배상금 중 일부를 JK쉬핑의 수수료로 인정할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또 현대글로비스가 내세운 H사가 정당한지도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중개업체 외면하고 해외 업체와 거래하는 대형 선사들

국내 해운중개업체들은 대체로 영세하다. 2019년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중개업체 수는 941개뿐이다. 이 중 매출이 발생하는 업체는 200개사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중개업체의 평균 직원 수는 1~2명밖에 안 된다고 한다.

장기간 해운 불황으로 중개업체들이 대형 선사와 거래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굳어졌다. 지난 몇 년 사이 한진해운을 비롯해 유수의 선사들이 망하거나 사라졌다. 해운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런 구조 속에서 중개업체들은 몇몇 대형 선사와 거래하며 연명하고 있다고 한다.

대형 선사들이 국내 중개업체를 배제한 채 해외 특정 중개업체들과 거래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업계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해운중개협회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자국 해운중개인을 배제하고, 해외 중개인만 사용하는 법이나 정책 방침은 존재하지도 않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국내 해운중개업의 역량과 고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정부가 추진하는 해운 재건과 해운 중심 국가 정책, 고용창출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9년 해운중개업협회는 이와 관련한 내용으로 해수부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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