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중국의 ‘언론 전쟁’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5 11:30
  • 호수 163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BBC ‘위구르족 인권 탄압 실태’ 보도에 중국 격앙
자국 내 BBC 월드뉴스 방영 전면 금지

춘제(春節)는 중국 최대 명절이다. 올해는 2월11일부터 17일까지 연휴였다. 춘제를 전후해 중국은 영국과 조용하면서도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이는 지난 2월3일 영국의 공세로 시작됐다. 영국 상원은 정부로 하여금 ‘제노사이드’를 저질렀다고 판명되는 나라와의 무역합의를 재검토하도록 강제하는 무역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제노사이드는 ‘집단학살’ ‘대량학살’로 번역되는 반인류 범죄다. 2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 나치정권이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였던 사건에서 비롯됐다.

종전 이후 1948년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을 위한 국제협약을 제정했다. 또한 제노사이드를 ‘국민·인종·민족·종교집단을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파괴할 의도를 가지고 실행된 행위’라고 정의했다. 영국 상원은 중국을 겨냥해 이런 내용의 무역법 개정안을 359표 대 188표라는 압도적인 표 차로 통과시켰다. 중국이 반인류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정한 셈이다. 이튿날인 4일에는 영국 정부도 나섰다. 방송·통신 규제기관인 오프콤이 런던에 개소됐던 중국국제텔레비전(CGTN) 유럽본부의 방송면허를 취소했다. 오프콤은 “CGTN은 독자적인 편집권 없이 중국공산당의 지휘에 따라 방송을 내보내 국내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왼쪽)신장에서 벌어지는 강제노동 실상을 폭로한 보고서. 미국의 아드리안 젠즈 박사가 작성했다(미국 글로벌정책센터 보고서 발췌), 신장위구르자치구 카슈가르시에서 철거된 전통가옥. 중국은 위구르족 공동체를 해체시키기 위해 2005년부터 전통가옥을 철거해 왔다.ⓒ모종혁 제공·미국 글로벌정책센터
(왼쪽)신장에서 벌어지는 강제노동 실상을 폭로한 보고서. 미국의 아드리안 젠즈 박사가 작성했다(미국 글로벌정책센터 보고서 발췌), 신장위구르자치구 카슈가르시에서 철거된 전통가옥. 중국은 위구르족 공동체를 해체시키기 위해 2005년부터 전통가옥을 철거해 왔다.ⓒ모종혁 제공·미국 글로벌정책센터

영국, 중국 CGTN 유럽본부 방송면허 취소

영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오프콤은 2014년부터 CGTN을 조사해 왔다. 그 이유는 중국에 거주했던 자국민 피터 험프리가 CGTN을 고발했기 때문이다. 험프리는 상하이에서 컨설팅회사를 운영했다. 그런데 개인정보를 불법 수집했다는 명목으로 갑자기 중국 당국에 잡혀 징역형을 살았다. 출소 후 영국으로 돌아온 뒤 험프리는 “중국 당국이 자백을 받아내려고 약물을 투입했고, 아주 작은 방에 가두는 등 지속적으로 괴롭혔다”고 폭로했다. 또한 “수감 중에 CGTN 취재진으로부터 범죄를 자백하도록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2월5일에도 영국의 공세는 계속 이어졌다. ‘텔레그래프’는 “지난해 국내정보국(MI5)이 언론인으로 신분을 위장해 스파이 활동을 하던 중국 정보요원 3명을 적발해 추방했다”고 특종 보도했다. ‘텔레그래프’는 “그들은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이라며 “언론 비자를 받은 뒤 각기 다른 중국 언론사에서 일하는 것처럼 위장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영국이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서자, 중국도 대대적인 반격을 예고했다. 지난 5일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은 “CGTN은 영국에서 자리 잡은 지 18년이 넘었다”면서 “줄곧 중국과 영국 국민의 소통과 이해를 위해 노력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영국은 즉각 정치적인 농락을 멈추고 잘못을 바로잡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또한 중국 외교부 책임자는 영국 공영방송 BBC의 베이징지국장을 불러 엄중 교섭을 진행했다. 책임자는 BBC의 보도 2건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중국이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인권을 유린하는 재교육수용소를 운영하고, 코로나19의 대응에 대해 은폐한 사실을 BBC가 보도한 걸 문제 삼은 것이다. 이처럼 외교부가 외국 언론사 기자를 직접 불러 항의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춘제를 맞아서는 본격적인 보복에도 나섰다. 지난 12일 0시를 기해 BBC 월드뉴스의 자국 내 방영을 전면 금지시켰다.

사실 BBC 뉴스는 중국 내에서 과거부터 일반인들은 시청하기 어려웠다. 다만 외국인이 몰려 있는 건물과 아파트, 외국인 투숙객이 많은 일부 4성급 이상 호텔에서는 시청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마저 모두 틀어막아버린 것이다. 놀랍게도 홍콩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 2월12일 홍콩 공영방송인 RTHK는 “BBC 뉴스의 방송 중계를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RTHK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BBC 뉴스를 밤 11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방송해 왔다. 이는 홍콩이 중국과 달리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유지한다는 상징적인 조치였다.

그러나 RTHK는 “국가광파전시총국(광전총국)이 하달한 지침에 따른 결정”이라며 BBC 뉴스의 중계 중단 이유를 밝혔다. 중국 방송 규제기관인 광전총국의 결정이 홍콩 TV에 영향을 미친 최초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중국과 영국 간의 ‘언론 전쟁’은 BBC가 신장 문제에 관해 탐사보도를 하면서 촉발됐다. BBC는 회사 차원에서 전담팀을 꾸려, 2018년부터 중국 당국이 위구르족에게 가하는 각종 인권탄압 상황을 대대적으로 보도해 오고 있다. 특히 재교육수용소의 실상과 수용자들에게 자행되는 행위를 밝히기 위해 전 세계의 취재망을 총동원해 왔다.

2월2일에는 재교육수용소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겪는 강제 수술과 투약, 조직적 강간 실태를 집중 보도했다. BBC는 위구르족 여성의 증언을 통해 “여성 수용자들은 강제로 자궁 내 피임장치를 하고 불임수술을 받는다”고 폭로했다. 수술을 받는 대상은 20세밖에 안 된 어린 여성부터 40대 여성까지 다양했다. 수용소 측은 여성 수용자들에게 강제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백신’도 투약했다. 백신을 맞은 위구르족 여성은 “구역질이 났고 몸이 무감각해졌다”고 밝혔다.

한 카자흐족 여성은 한족 남성들이 위구르족 수용자를 강간하도록 도왔던 일을 증언했다. 그는 “내가 여성의 상의를 벗기고 손을 결박한 뒤 옆방으로 가면, 경찰관이나 외부인이 들어왔다”면서 “남성이 떠나면 방을 청소하고 여성을 데려가 씻겼다”고 고백했다. 또한 “가장 어리고 예쁜 수용자를 데려오면 돈을 주겠다는 남성도 있었다”고 밝혔다. 수용자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쳤던 한 위구르족 여성은 한족 여성 경찰관과의 대화 내용을 폭로했다. 여성 경찰관이 “수용소에서 성폭행은 문화가 됐다. 수용자를 윤간할 뿐만 아니라 전기로 고문한다”고 밝힌 것이다.

 

영국, 美 바이든 정부와도 ‘대중 압박’ 공조

BBC는 지난해 12월 미국 글로벌정책센터가 발간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강제노동 실태를 보도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중국 소수민족 문제에 관한 세계적인 석학인 아드리안 젠즈 박사가 작성했다. 젠즈 박사는 “신장자치구에서 최대 50만 명에 이르는 위구르족을 위시한 소수민족이 면화를 수확하는 노동에 강제로 동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2019년 신장은 중국 면화 생산량의 85%, 세계 면화 생산량의 20%를 차지했다. 신장에서도 위구르족이 몰려 사는 중남부에서는 면화의 수확이 대부분 고된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기계화율이 40%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BBC의 보도에 대해 2월12일 중국 외교부는 “‘세기의 거짓말’을 만들어냈다”면서 “이는 보도 윤리를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이중잣대이자 이데올로기적 편견”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영국 하원은 조만간 무역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기세다. 무엇보다 영국의 행보는 미국과 공조를 맞춘다는 점에서 탄력을 받고 있다. 미국은 지난 1월13일 인권탄압을 이유로 신장에서 생산되는 면화와 토마토 가공품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새로 들어선 조 바이든 행정부도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탄압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영국의 매서운 대중 공세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