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휩쓸린 기업들, R&D로 해법 찾는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4 11:00
  • 호수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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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대 기업의 2020년 경영 성적표…기업별·업종별·그룹별 양극화 커져

코로나19의 여파로 우리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기업들이 차례로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기업들은 전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IT·전기·전자 등 언택트와 밀접한 업종은 비교적 선방했지만, 자동차·철강·석유·화학업종 기업은 대체적으로 부진한 성적표를 손에 쥐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기업들은 연구·개발(R&D) 투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R&D를 통한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기 탈출의 해법으로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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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시사저널 박정훈

10대 기업 중 삼성전자 영업이익 비중 68.6%

지난해 매출 상위 10대 기업의 영업이익은 51조4075억원으로 전년(44조1757억원) 대비 16.37%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착시효과다. 매출 1위인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10대 기업 전체의 영업이익이 늘어난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가 발표한 지난해 잠정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36조2600억원과 35조9500억원이었다. 특히 영업이익의 경우는 2019년의 27조7685억원보다 무려 29.5%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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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삼성전자를 제외한 9개 기업의 영업이익 총합은 2019년 16조4072억원에서 지난해 16조4575억원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매출 상위 2~10위 기업 전체 영업이익이 삼성전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각 기업별로 보면 매출 순위 2위와 3위에는 현대차(총매출 104조1125억원, 영업이익 2조8635억원)와 LG전자(62조6458억원, 3조1918억원)가 각각 올랐다. 이어 기아자동차(59조4415억원, 1조7834억원)와 한국전력공사(58조4544억원, 3조7459억원)가 각각 4위와 5위에 랭크됐고, 포스코와 한화, 현대모비스, SK이노베이션, CJ(주)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기업 중 상당수는 지난해 실적 악화를 겪었다. 특히 자동차·철강·석유·화학업종의 어려움이 컸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2조3875억원 영업적자로 돌아섰고,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 3곳의 영업이익도 약 1조5000억원 감소했다. 철강업에서는 포스코의 영업이익이 1조원 이상 감소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삼성전자가 매출 상위 10대 기업 전체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8.6%로 전년의 62.9%보다 높아졌다.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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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건물ⓒ시사저널 고성준

IT·전자 웃고, 자동차·철강·석유 울었다

시선을 매출 상위 10위권 밖 기업까지 넓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 평가 전문업체인 CEO스코어가 국내 시가총액 500대 기업 중 올해 2월15일까지 지난해 잠정 실적을 공개한 326개 기업 실적을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의 전체 매출액은 2106조6511억원으로 전년 2105조6307억원 대비 1조204억원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27조631억원으로 전년 대비 0.6%(7839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역시 반도체 사업에서 호실적을 거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역할이 컸다. 두 회사를 제외한 324개 기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1837조9436억원으로 2019년(1848조2391억원) 대비 10조2954억원(0.6%) 감소했다. 삼성전자(8조2254억원)와 SK하이닉스(2조2999억원)의 지난해 합산 매출 증가액(11조3158억원)이 나머지 기업들의 매출 감소 규모를 웃돌면서 전체 매출액이 ‘플러스’로 돌아선 것이다.

시가총액 500대 기업의 실적에서는 업종별로 희비가 명확히 갈렸다. 전체 22개 업종 중 11개 업종에서는 영업이익이 총 19조1453억원 늘었다. 특히 언택트 수요 확산으로 IT·전기·전자업종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47조9882억원으로 전년 대비 13조3923억원 증가했다. 또 증권(1조5941억원)과 보험(1조4504억원) 업종도 주식시장 활황의 수혜를 입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고, 식음료(1조1309억원) 업종도 1조원대 영업이익 증가세를 나타냈다.

반면, 나머지 11개 업종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8조3614억원 감소했다. 우선 34개 지주사의 지난해 영업이익 합산액이 22조5045억원으로 전년 대비 10조2069억원 감소했고, 조선·기계·설비(-2조1523억원) 업종이 감소액 기준으로 뒤를 이었다. 이 밖에 자동차·부품(-1조4428억원), 철강(-1조3861억원) 등 업종의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1조원 이상 증발했다.

기업별로 보면 조사 대상 326개 기업 중 185곳의 영업이익이 총 28조9262원 늘어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LG화학(1조4575억원), LG디스플레이(1조3303억원), HMM(1조2805억원) 등이 전년 대비 1조원대 추가 영업이익을 냈다. 이어 (주)LG(8011억원)와 LG전자(7588억원), 하나금융지주(5777억원), 삼성생명(5375억원), 키움증권(4812억원) 등도 영업이익 규모 증가 10위권 내에 들었다.

반면 나머지 141곳의 영업이익은 2019년에 비해 28조1423억원 감소했다. SK(주)가 영업이익이 4조1410억원 줄어 감소폭이 가장 컸고, SK이노베이션(-3조8381억원)이 뒤를 이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포스코를 비롯해 에스오일(-1조5078억원)과 현대중공업지주(-1조2637억원), GS(-1조1126억원)도 1조원 이상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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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기아자동차 본사 건물ⓒ시사저널 임준선

2019년 대비 순고용 인원 큰 폭 감소

이처럼 코로나19 사태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기업들은 R&D 투자엔 오히려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실제 국내 500대 기업 중 R&D 투자액을 공시하는 217개 기업의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투자액은 총 40조156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03%(약 8000억원) 늘어났다.

R&D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건 삼성전자였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R&D 투자액이 15조8971억원에 달했다. 또 LG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 LG디스플레이, 기아차 등도 R&D에 1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이들 기업의 R&D 투자액은 조사 대상 기업 전체의 65.2%에 해당한다. 이 밖에 네이버와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언택트 관련 업종과 한미약품, 셀트리온 등 제약 업종의 매출 대비 R&D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반면 사정이 여의치 않은 조선·기계·설비·철강·건설·건자재 등 8개 업종의 R&D 투자액은 5조9414억원으로 전년 대비 5.2% 감소했다.

이처럼 기업들은 지난해 R&D 투자를 늘린 반면, 고용은 줄였다. 국내 500대 기업 중 497곳의 국민연금 가입자 현황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기업의 취업자는 26만4901명, 퇴사자는 27만803명으로 나타났다. 순고용 인원이 5902명 감소한 셈이다. 특히 조사 대상 기업의 지난해 취업자는 전년(31만3768명)에 비해 4만8867명 줄어들었다.

고용 역시 업종에 따른 온도차가 명확했다. 전체 22개 업종 중 12개에서 1만9889명의 순고용 인원이 줄었는데, 그중에서도 건설·건자재 업종의 순고용 인원 감소폭(7792명)이 가장 컸다. 생활용품(-3516명)과 자동차·부품(-1771명), 조선·기계·설비(-1551명), 운송(-1096명), 통신(-1063명) 등의 업종도 순고용 인원 감소가 1000명 이상이었다. 반면 나머지 10개 업종은 순고용 인원이 1만3987명 증가했는데, 언택트 관련 업종인 IT·전기전자 등의 취업자 수가 두드러졌다.

기업별로 보면 쿠팡의 지난해 고용이 1만872명으로 가장 많았다.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직원을 대거 채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쿠팡의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도 직원이 1만828명 늘어났다. 또 지난해 호실적을 낸 삼성전자는 직원이 3552명 증가했고, 한화솔루션도 지난해 1월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 합병의 영향으로 직원이 3063명 늘어났다. 이 밖에 홈플러스(2890명)와 코웨이(1610명), LG이노텍(1608명), 롯데케미칼(1127명) 등 7개 기업의 순고용 인원도 1000명 이상이었다.

반면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의 순고용 인원은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해 점포 수를 대폭 줄인 롯데쇼핑(-3248명)과 일부 극장을 폐쇄하고 상영 회차를 줄인 CJ CGV(-2459명)를 비롯해 GS리테일(-1479명), 두산중공업(-1044명), 삼성디스플레이(-1011명) 등의 순고용 인원은 1000명 이상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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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왼쪽부터)이 2020년 2월1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 참석했다.ⓒ연합뉴스

이처럼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R&D 투자를 늘리는 한편, 고용 축소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엔 R&D 투자와 고용이 동반 감소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KOITA)가 최근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 등을 상대로 ‘2021년 R&D 투자 및 연구인력 채용 전망’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이와 관련해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주문했다. 협회 관계자는 “어려울 때일수록 지속적인 R&D만이 경제 회복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기업의 R&D 투자 의지가 꺾이지 않게 정부가 세제 지원, 인력 지원 등 R&D 투자 유인 방안을 적극적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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