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 ‘다크웹’…성착취물 100여 개 유포
  • 유지만·조해수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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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범죄 특집 ⑦] “n번방은 빙산의 일각…다크웹 제재 법안 시급”

※편집자 주 : 한국기자협회의 성범죄 보도준칙에 따르면, 언론은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성폭력 사건이 아닐 경우 보도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지난해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한 다양한 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다크웹에 대한 법은 전무한 상황이다. 시사저널은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인 다크웹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보도를 결정했다. 단, 피해자와 그 가족의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신상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삭제했다. 사진 등 영상 보도에서도 2차 피해를 각별히 주의했다. 특히 모방 범죄 등을 우려해 재연에 신중을 기했다. 또한, 피해자와 독자에게 공포감과 불쾌감을 주고 불필요한 성적 상상을 유발하는 표현은 삼갔다.

 

최악의 디지털 성범죄가 또다시 터졌다. '인터넷 암시장' 다크웹을 통해 100여편의 성착취물이 피해자에 대한 자세한 인적사항과 함께 무차별 살포됐다. 피해 여성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출신 학교를 비롯해 신체적 특징까지 공개됐다. 피해 여성은 모두 120여명에 이른다. 지난해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각종 법안이 만들어지고 수사당국의 집중단속이 있었지만, 결국 다크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다크웹을 제재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공개된 웹은 4%인 반면 다크웹은 6%에 이른다. ⓒ에스투더블유랩(S2W LAB)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공개된 웹은 4%인 반면 다크웹은 6%에 이른다. ⓒ에스투더블유랩

제작·유포자는 일명 '돈XXX' '윤XXX'로 통하는 윤아무개 씨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성착취물을 다크웹에 공개했다. 성착취물이 단시간 내에 광범위하게 퍼진 이유다. 지난해 6월부터 성착취물을 시청·소지하는 것만으로도 1년 이상의 징역을 받게 됐다. 이에 따라 피의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수사기관 관계자는 “돈XXX은 자살을 하면서 성착취물을 살포했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이런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다. 변태적·반사회적 성향이 다크웹을 만나 ’사이버 테러’ 수준으로 비화한 것”이라면서 “그러나 다크웹일지라도 디지털 기록은 반드시 남는다. 시청·소지죄가 신설된 만큼 한번이라도 해당 성착취물을 본 사람은 절대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변태적·반사회적 사이버 테러”

현재 이 사건은 국가수사본부 산하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 수사과를 중심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여성가족부(여가부) 등이 협력해 대처하고 있다. 모니터링을 통해 성착취물을 찾아 삭제하는 일을 맡고 있는 방심위가 해당 성착취물을 최초 적발했다. 방심위 관계자는 “지난해 11월17일 (해당 성착취물을) 처음 발견했다. 영상의 수위도 문제지만, 피해 여성들에 대한 개인정보까지 함께 공개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N번방보다 훨씬 악랄한 범죄”라면서 “삭제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경찰에 통보해 수사가 이뤄지도록 했다. 현재도 24시간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먼저 인터넷 사업자에게 자율규제를 요청하고, 이후 심의를 거쳐 삭제 조치를 내린다. 방심위에 따르면, 해당 성착취물은 3월16일 기준으로 자율규제를 통해 수백 건 삭제됐고, 심의를 거쳐 수십 건 지워졌다. 문제는 적발해 놓고도 삭제하지 못한 성착취물의 수가 여전히 수백 건이라는 점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방심위의 심의는 지난 1월29일 이후 중단된 상태다. 방심위원 선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심위원은 9명으로 대통령이 3명,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원내대표와 상의해 3명(국회의장 1명, 여당 1명, 야당 1명), 소관 상임위원회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3명(여당 1명, 야당 2명)을 추천한다.

그런데 현재 방심위원으로 추천된 인원은 2명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과방위 여당 몫으로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를 추천했고, 국회의장 몫으로는 정민영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가 선정됐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대통령 추천 인사를 공개하지 않으면 방심위원을 추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심위원장에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내정했다는 얘기가 돌자, 이를 막기 위해 야당 몫 추천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야 간 정쟁으로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건 피해자들이다.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성착취물의 삭제는 가해자 처벌만큼 중요하다. 성착취물의 삭제 없이는 피해자의 완전한 회복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n번방 사건 이후 여야는 '피해자 보호'를 앞다퉈 외쳤지만, 오히려 피해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정치권인 셈이다.

온라인에 유포된 일명 '윤드로저'의 성착취물 ⓒ시사저널 입수사진
온라인 상에 유포된 일명 '윤XXX'의 성착취물 ⓒ시사저널 입수사진

 

만화에 나오는 ‘해적왕’ 이름 따온 것

지난 3월16일은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상징적인 날이다. n번방 운영자 조주빈이 검거된 지 꼭 1년이 됐다. 같은 날 아동·청소년에 대한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 처벌, 성착취물 제작 범죄 공소시효 폐지, 사법경찰관의 위장수사 허용 등을 포함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공포안'이 국무회의에서 처리됐다. n번방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성범죄에 우리 사회가 결사적으로 항전하고 있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날이다.

그러나 낙관적인 기대를 하기에는 이르다. 같은 날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성착취물을 업로드 했다거나 판매한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돈XXX’ 또는 ‘윤XXX’였다. A포털사이트 검색 결과, “돈XXX(윤XXX) 자료 더 없을까요?” “돈XXX도 풀팩(풀 패키지)입니다. 딴 데 보다 싸게 넘겨드려요. 연락주세요” 등의 글들이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취재 결과, ‘윤XXX’로 불리는 윤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직전 다크웹에 자신의 B드라이브 주소를 남기면서, 이 곳을 찾아 올 경우 성착취물을 다운로드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소문이 인터넷 상에서 퍼지면서, 다크웹이 아닌 포털사이트까지 윤씨의 영상을 구하는 글들이 올라오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성착취물 제작·유포자들은 금전적 이득을 노린다. n번방의 주범 조주빈은 성착취물을 통해 1억800만원의 범죄수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는 이 돈을 은닉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추가로 선고 받기도 했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는 유료회원 4000여명으로부터 7300여회에 걸쳐 4억여원을 받았다.

그러나 윤씨는 달랐다. 그는 돈보다 자신의 성착취물을 과시하는 것이 목표인 듯 보인다. 윤씨의 비상식적인 행위는 ‘윤XXX’라는 이름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윤XXX는 일본 만화에 나오는 해적왕 캐릭터의 이름을 따 온 것이다. 해당 만화는 단일 저자에 의한 단행본 발행 부수에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전설적인 해적으로 수많은 보물을 손에 넣었던 만화 속의 인물은 갑자기 자수해 공개처형됐다.  

수사기관 관계자는 “윤씨가 자신을 만화속 인물로, 성착취물을 보물로, 음란물 유저를 해적으로, 다크웹을 바다로, 자살을 공개처형으로 여긴 듯하다”면서 “전형적인 과대망상증이다. 만화와 현실은 다르다. 성착취물은 삭제되고 있고, 성착취물을 접촉한 사람들도 모두 검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크웹 사용자 증가율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8~2020년 우리나라 다크웹 사용자 증가율은 36%를 기록했다. ⓒ에스투더블유랩
다크웹 사용자 증가율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8~2020년 우리나라 다크웹 사용자 증가율은 77%를 기록했다. ⓒ에스투더블유랩

 

“다크웹, 투명인간이 저지른 범죄”

그렇다면 다크웹에서의 실제 상황은 어떨까. 시사저널은 3월17일, 다크웹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디지털 보안업체 에스투더블유랩(S2W LAB)의 도움을 받아 다크웹에 접속했다. 다크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한다. 이로 인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접속자나 서버를 확인할 수 없다. 다크웹이 범죄에 많이 활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스투더블유랩 관계자는 “익명네트워크 기술이 반사회적 목적으로 악용된 결과물이 다크웹”이라면서 “다크웹에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강력한 탈중앙화 및 암호화 기술이 적용돼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면서 초기에는 언론의 자유, 기밀 폭로 등의 창구로 쓰였다. 그러나 이런 기술이 나쁜 용도로 사용되면 ‘투명인간’이 저지른 범죄와 같은 부작용을 가져 온다. 성착취물 유통이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다크웹에서 윤XXX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수많은 곳에서 윤XXX를 언급한 내용이 포착됐다. 대부분 성착취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내용이었고, 간혹 판매자가 남긴 메시지도 보였다. 그러나 성착취 영상은 다크웹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방심위 관계자는 “윤XXX 사건을 특별하게 보고 있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 사명감을 갖고 업무에 임하게 된다”면서 “최초 적발 후 4개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꾸준히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는 성착취물이 대부분 삭제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크웹에는 “영상이 자꾸 삭제되는 걸 보니 경찰이 수사에 들어간 듯. 모두 숨어라”는 글이 올라와 있기도 하다.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은, 음란물 유저들이 윤씨를 오히려 역추적해 신상을 털었다는 것이다. 다크웹에는 윤씨의 이름과 출신학교, 주소 등이 돌아다니고 있다. 윤씨의 집안환경, 경제 상황을 언급한 글도 있다. 수사기관 관계자는 “다크웹에서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면서 “다크웹은 원숭이에게 핵폭탄 발사 버튼을 맡긴 것과 비슷하다. 별다른 이유 없이 즉흥적 감정으로 누구든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여기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고 경고했다.

현재 다크웹은 암호화폐의 등장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15~2019년 비트코인 거래량이 3배 늘자 다크웹 페이지수도 똑같이 3배 증가했다. 다크웹 사용자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고, 우리나라는 20위권이다. 그러나 다크웹 사용자 증가율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8~2020년 미국 다크웹 사용자 증가율은 21%에 그쳤지만, 같은 기간 우리나라는 77%를 기록했다. 특히, n번방은 국내 다크웹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다. 다크웹에서 n번방 언급량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멀어지기 시작한 지난해 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다크웹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일까. 에스투더블유랩 관계자는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의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는 통찰은 다크웹 보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크웹을 측정하고 탐지하는 것이 중요한 첫 걸음”이라면서 “다크웹 범죄 추적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모든 족적이 영구적으로 남는다. 결국 기술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인 것이다. 의지를 가진 기술과 제도가 뒷받침되면 악행은 반드시 단죄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나 영상의 불법촬영·유포, 이를 빌미로 한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지지동반팀(02-2275-2201, digital_sc@hanmail.net), 여성긴급전화 1366,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02-735-8994, www.women1366.kr/stopds),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02-817-7959, hotline@cyber-lion.com)에서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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