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외침 “비폭력은 끝났다, 무장투쟁 준비됐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6 14:00
  • 호수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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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나잉툰 NLD 한국 지부장·군부 블랙리스트 오른 찬찬 등
국내외 활동가들이 전하는 미얀마 反군부 세력의 향후 계획

피의 50일이었다. 7세 아이부터 임산부까지, 미얀마 군부 쿠데타 세력의 총구는 그 앞에 선 누구에게든 무차별적으로 향했다. 그렇게 300명(공식 확인된 숫자만) 가까운 생명이 거리 위에서, 집 앞에서, 심지어 집 안에서 숨을 다했다. 피는 일방적으로 흘렀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저항의 상징으로 세 손가락을 들었지만, 군부는 이들을 향해 실탄을 들었다.

계속되는 일방적 희생에 미얀마 시민들은 비무장·비폭력 원칙을 철회하고 있다. 이미 미국에 체류하며 정부 역할을 대신하는 ‘연방의회 대표위원회(CRPH)’를 중심으로, 시민들은 무장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본격적인 강 대 강 대치가 시작되면서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군부 쿠데타에 반발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시위가 본격화된 이후 지난 3주에 걸쳐 시사저널과 SNS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하며 현지 상황을 전했던 시민 A씨는 3월11일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 타이밍이 되면 국민들의 비폭력 시위는 폭력 시위로 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군부도 큰 피해를 볼 것이다. 우리는 피를 흘리더라도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결연한 심경을 본지에 밝힌 바 있다.(시사저널 1639호 ‘“어떻게 민주국가들이 미얀마를 지켜보고만 있나?”’ 보도 참조) 당시 그가 말했던 타이밍은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CRPH 등 임시정부 지도부의 신호를 말함이었다. 안타깝게도 A씨는 11일 이후 SNS 접속이 안 되고 있다. 시위대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강경해지면서 군부가 인터넷 접속을 방해하거나 차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혈 참사에도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가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유혈 참사에도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가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미얀마 현재 상황, 1980년 광주보다 심각”

시사저널은 국내외 미얀마 활동가와 아웅산 수치 고문 측 관계자들을 만나 이들 반(反)군부 세력의 계획과 미얀마 사태의 전망을 물었다.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이제 비폭력은 끝났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에서 미얀마어 강사로 일하는 찬찬은 현재 미얀마 군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한국 방송에 나와 군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페이스북 팔로워 100만 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그는 매일같이 피 흘리는 현지 시민들의 사진과 영상 제보를 받고 있다. “내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후, 미얀마에 계신 부모님이 집에서 나와 피신해 계신다. 밤에 갑자기 쳐들어와 잡아가서 다음 날 시체 찾아가라고 연락하는 게 미얀마 군부다. 전화가 차단돼, 연락도 거의 안 된다. 자는 동안 부모님 잘못됐다는 연락이 올까봐 밤에 잠도 못 잔다.” 그는 “SNS로 오는 현지 시민들의 피해 모습은 1초도 쳐다보기 힘들 만큼 잔혹하다.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미얀마를 연구해 온 박현용 덕성여대 교수는 미얀마 상황이 1980년 광주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평가한다. 그는 “군경이 낮에 시위 현장에서 본 사람들을 일일이 밤에 찾아다니며 끌고 간다. 국제사회가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더 상황이 안 좋다. 이젠 비폭력을 기초로 한 단순 저항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3월27일 ‘군의 날’을 기점으로 쿠데타 세력과 반군부 시민들의 대치가 더욱 일촉즉발로 치달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얀마 관계자들은 A씨처럼 대다수 시민이 이미 무장투쟁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에 밀리면 또다시 끔찍한 군사독재 시대가 열린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민주주의를 경험한 시민들은 과거로 돌아가길 죽음만큼이나 원치 않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정범래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자유의 맛을 본 Z세대와 1988년 혁명을 기억하고 군사정권의 참담함을 아는 기성세대 간에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2007년 미얀마 민주화 시위 당시 현지에 머무르며 군부와 싸우다 태국으로 도피한 경험이 있다. 그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 언론들이 보통 ‘조직화된 군부 세력’ 대 ‘모래알 시민 세력’의 싸움으로 조명하는데, 반군부 시민 세력들도 철저히 조직화돼 있다. 소수민족 군대의 90% 규모가 이미 반군부 세력에 힘을 더하고 있다. 오히려 군부 안에서 탈영병이 속출하는 등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 6개월 안에 승리로 끝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경찰 출신 아버지를 보고 자라 미얀마 군경의 특징을 잘 안다는 찬찬 역시 “군경 중엔 대단한 사명감보단 생계를 위해 직업을 택한 이들이 다수다. 따라서 시민들이 더욱 위협을 가하고 겁을 주며 ‘시민을 손대면 자신들도 다친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군경은) 빠르게 분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CRPH가 무장투쟁의 중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로이터 유튜브 캡처·사사 트위터·연합뉴스
ⓒ© 로이터 유튜브 캡처·사사 트위터·연합뉴스

“국경에서 집결해 미얀마로 진군할 계획도”

수치 고문이 이끌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얀나잉툰 한국지부장은 “쿠데타 세력과의 평화적인 결말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무장투쟁이야말로 지금의 무고한 희생을 ‘가장 빠르게 끝낼 방법’이라고도 말한다. 그는 현재 군부로부터 공개수배령이 내려져 연일 현지 언론에 얼굴과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또한 CRPH 지도부들과 직접 연락하며 향후 대응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그 역시 CRPH를 “지난해 선거로 선출된 이들이 모여 만든 정통성 있는 정부 기관”이라고 규정하며, 국제사회의 확실한 인정과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재 CRPH는 부통령 대행을 비롯해 9개 부처 장관을 임명한 상태며, 신변상의 이유로 정확한 거취를 알리지 않고 있다. 이들 지도부는 한꺼번에 움직이지 않고, 한 지도부 무리가 활동할 때 다른 무리는 철저히 숨는 등 위협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얀나잉툰은 취재진에 사사(Dr. Sasa) 유엔 특사를 비롯한 CRPH 지도자들의 계획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CRPH는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질 경우, 조직화된 반군부 세력과 함께 태국으로 이동해 미얀마 내부로 진군할 계획이다. 이미 대표적인 반군 소수민족 카렌 군대를 비롯해 상당수가 태국-미얀마 국경에 집결해 있다고도 말했다. 정범래 대표 역시 그곳에서 무기를 얻어 미얀마로 진군하는 것이 군부와 반군부 세력 간 최후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미얀마 활동가들은 그 과정에서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지원이 최선책이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D10 (Democracy 10)’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G7 국가에 한국·인도·호주가 더해진 것으로, 이들이 미얀마에 평화유지군을 보내 시민들을 보호해 줘야 한다는 호소다. 활동가들은 그중에서도 미얀마 시민들에게 가장 신뢰와 호감도가 높은 한국이 그 역할을 주도해 주길 바란다. 얀나잉툰은 “최근 국회를 방문해 송영길 외교통일위원장과 CRPH 외교부 장관인 진마아웅 의원 간 전화통화를 주선했다. 통화에서 D10을 비롯한 한국의 지원을 요청했고,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송 위원장의 약속도 받았다”고 말했다.

ⓒ찬찬 제공·시사저널 임준선·정범래 제공·연합뉴스·박현용 제공
ⓒ찬찬 제공·시사저널 임준선·정범래 제공·연합뉴스·박현용 제공

“포스코, 미얀마 내 경제활동 멈춰주길”

본지와 인터뷰한 미얀마 관계자들은 지금보다 더 직접적인 국제사회 지원을 바라면서도 그것이 결코 쉽진 않을 거라고 내다봤다. 유럽연합(EU)·미국 등에서 군부를 향해 초반보다 강력해진 제재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는 중국과 러시아의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박현용 교수는 중국·러시아의 내정불간섭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내정불간섭은 근대사회에서 국가 권력이 최우선시됐을 때 나왔던 국제법으로, 이미 개인이나 단체, 국제기구 등으로 국제사회 플레이어가 다양해진 지금 이를 내세우는 건 구시대적 패러다임을 고집하는 행태”란 것이다. 또한 박 교수는 “선진국에서 말하는 내정불간섭 원칙을 민주주의가 약한 동남아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건 실질적인 평등이 아니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군부 규탄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한국을 향한 미얀마 시민들의 고마움을 대신 전했다. 한국의 민주화 역사를 학습하고 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미얀마 내에 퍼져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1980년 광주를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는 것이 유행이 돼 있기도 하다.

또한 금융거래가 차단돼 학비는 물론, 생활비 부족에 시달리는 미얀마 유학생들을 지원하는 국내 여러 움직임 역시 미얀마 현지로 전해지고 있다. 외통위 소속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각 대학·금융권과의 소통을 통해 군부의 해외송금 차단으로 어려움에 처한 유학생 1000여 명에게 학비·생활비를 유예 또는 지원해 주는 방안을 국회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포스코 기업의 군부 지원 의혹에 대해선 활동가들도 다소 아쉬움을 드러냈다. 포스코가 미얀마 현지에서 해 온 가스전 개발, 철강재 가공 사업이 쿠데타 군부와 직간접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시민단체의 지적에 대해 포스코 측에선 “국제법 위반 사실이 없고 불법 자금을 지원한 적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미얀마 활동가들은 좀 더 확실한 메시지를 내주길 바라고 있다.

얀나잉툰은 “포스코가 미얀마를 위해 투자해 온 건 고마운 일이지만, 지금은 시민 인권에 우선 신경 써줬으면 한다. 일단 미얀마 내 경제활동을 멈추고 이후 문민정부가 다시 제대로 들어서면 재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포스코와 미얀마 간 관계에 더욱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측과 대면한 이용선 의원은 “가스는 군부가 아닌 미얀마 국영공사와 계약돼 있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다. 그러나 철강을 가공하는 포스코강판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군부에 이익금이 전달될 수 있는 구조다. 포스코 관계자가 의원실을 찾아와 사태가 종식되기 전까지 군부에 이익금을 배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포스코강판은 국가 대표 기업이자 상장회사니만큼, 앞으로도 더 높은 사회적 의무의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미얀마 소수민족은 반(反)군부 대열에 속속 합류 중

미얀마 소수민족들의 동향은 현재 미얀마 쿠데타 사태의 가장 큰 변수였다. 쿠데타 군부와 연방의회 대표위원회(CRPH) 양측에서 모두 이들을 향해 구애를 펼쳤지만, 현재로선 CRPH와 힘을 합쳐 반(反)군부 부대를 창설할 것으로 보인다. 쿠데타 군부와 72년째 싸우고 있는 카렌민족연합(KNU)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머무르는 카렌주엔 이미 반군부 세력들이 집결해 군부와 무장투쟁할 준비에 나서고 있다. 이미 군부의 군의 날(3월27일) 행사 초대도 거부했다. 군부 편에 설 것으로 예상되던 서부 라카인주의 라카인족(아라칸족) 군대도 최근 반군부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라카인주 내 소수민족 시민단체 77곳에서 반군부 선언을 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미얀마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미 소수민족 군대 중 90%에 가까운 규모가 CRPH 중심의 반군부 세력과 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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