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LH 퇴직자 영입 ‘전관 회사’, 1조원대 LH 용역 '싹쓸이'
  • 조해수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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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건축사사무소에 재취업한 LH OB(전관) 명단' 단독 입수...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과 공동 분석

LH(한국토지주택공사)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LH 전관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LH 퇴직자들을 영입한 건설업계 회사들이 ‘전관 인맥’을 활용해 LH가 발주한 용역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업계 내부 고발자를 통해 ‘주요 건축사사무소에 재취업한 LH OB(전관) 명단’을 단독 입수했다. 이 명단에 따르면 40여 개 건축사사무소가 90여 명의 LH 전관을 영입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공동으로 LH의 2015~20년 발주 용역을 분석한 결과, 이들 회사는 무려 1조원 이상의 LH 용역을 ‘싹쓸이’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변창흠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이 LH 사장으로 재임하던 2019~20년에 ‘전관 회사 LH 일감 싹쓸이’ 행태가 극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견 건축사사무소 대표인 내부 고발자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LH 전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카르텔’을 통해 (전관 회사들이) 경쟁입찰에서도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수주를 받고 있다”고 양심 고백을 했다([단독] “LH 전관 카르텔, 경쟁입찰에서도 돌아가며 수주 받아” 기사 참조). 그러나 LH 직원 약 1만 명 가운데 ‘재취업 제한’ 대상자는 단 7명에 불과하다.

내부 고발자 “LH 전관들의 추악한 카르텔”

시사저널이 입수한 명단을 보면, 71개 건축사사무소의 업체명-소재 지역-대표 이름-업체 전화번호-LH OB-기타 출신(국토부, 서울시, 군 출신 등) OB 등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 이 중 47개 업체가 93명의 LH 전관을 영입했다.

LH 전관의 경우, 출신 대학교-LH 최종 직책-LH 퇴직 연도까지 나온다. 명단에 2018년 12월 퇴직한 LH 전관들의 정보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볼 때, 최소한 2019년에 업데이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전관 영입을 맡은 각 회사 담당자 이름과 연락처까지 모두 기재돼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내부 고발자는 “이 명단은 주요 건축사사무소들이 LH 전관을 통해 ‘추악한 카르텔’을 형성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이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이 명단에 회사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 LH 사업을 수주하는 것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라고 잘라 말했다.

내부 고발자의 말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전관 회사들의 LH 수주 실적을 따져보면 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시사저널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LH의 2015년부터 2020년 11월30일까지의 ‘건축설계 공모 수주내역’ ‘건설사업관리용역 수주내역’을 입수했다. 자료 분석은 경실련의 국책사업감시단(단장 신영철)이 맡았다. 국책사업감시단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 특별법을 문재인 정부의 ‘매표(買票) 공항 특별법’이라고 규탄하는 등 각종 국책사업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 왔다.

건축사사무소와 직결되는 LH의 두 용역을 분석한 결과, 전관 회사들이 수주한 금액은 모두 1조43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용역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관 회사들의 ‘LH 일감 싹쓸이’ 행태가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LH는 건축설계 용역으로 2015~20년 모두 536건, 금액으로 따지면 9484억원어치를 발주했다. 이 중 전관 회사는 297개 사업, 6581억원을 챙겼다. 건수로 따지면 절반가량(55.4%)이지만, 액수로 보면 69.4%에 이른다.

47개 전관 회사 중 45곳이 계약을 따냈는데, 합계건수 상위 10개 업체(1위 15건~10위 12건) 중 전관 회사가 80%(8곳)를 차지했다. 합계금액 상위 10개 업체(1위 516억원~10위 264억원)는 100%(10곳) 전관 회사였다.

개별사업 금액으로 따져봐도 전관 회사의 압도적 우위가 이어졌다. 전관 회사는 상위 10개 사업(1위 87억원~10위 62억원)에서 70%(7개)를 가져갔다. 물론 87억원 규모의 가장 큰 사업을 따낸 것도 전관 회사다.

건축사업관리 용역은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할까. 2015~20년 LH가 발주한 건수는 290건, 금액으로는 8034억원이다. 이 중 115개 사업(39.7%), 3853억원(48.0%)이 전관 회사 몫으로 떨어졌다. 설계용역보다는 덜한 수치지만, 설계용역 계약을 따낸 전관 회사(45곳)의 약 4분의 1에 불과한 12개 회사가 나눠 가진 것이기 때문에 각 회사에 돌아간 몫이 결코 작지 않다.

전관 회사는 합계건수 상위 10개 업체(1위 25건~10위 9건) 중 60%(6곳), 합계금액 상위 10개 업체(1위 927억원~10위 268억원) 중에서는 50%(5곳)를 차지했다. 개별사업 금액 상위 10개 사업(1위 102억원~10위 76억원)으로 따지면, 전관 회사가 50%(5개)를 가져갔다.

변창흠 LH 사장 때 ‘전관 회사 일감 싹쓸이’ 극심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LH 사장을 맡고 있던 2019~20년엔 전관 회사의 싹쓸이 행태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

먼저 건축설계 용역을 보면, 2015~18년의 연별 발주 건수는 최하 62건(2015년)에서 최대 88건(2018년)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9년 변창흠 LH 사장 첫해인 2019년 133건으로 뛰었고, 2020년 역시 98건으로 2019년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았다. 문제는 건축설계 용역은 모두 ‘수의계약’ 형태로 발주됐기 때문에 ‘전관 특혜’가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발주 금액으로 보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2015~18년의 연별 발주 금액은 최하 906억원(2016년), 최대 1386억원(2018년)이다. 이 중 전관 회사가 차지한 금액은 633억(65%, 2016년)~951억원(69.2%, 2018년)이다.

발주 금액은 2019~20년 각각 2895억원, 2251억원으로 급증했다. 2019년의 경우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어났는데, 전관 회사가 가져간 몫도 2109억원(72.9%)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경쟁입찰로 진행된 건축사업관리 용역도 마찬가지다. 2015~18년의 연별 발주 건수는 최하 33건(2016년), 최대 49건(2017년)을 기록했다. 전관 회사가 따낸 건수는 5(2018년)~22건(2017년)으로 14.3~44.9%를 차지했다.

건축사업관리 용역 발주 건수 역시 변창흠 LH 사장 시절 급증했다. 2019년 55건, 2020년에는 75건이 발주됐는데, 전관 회사가 차지한 사업 건수 역시 각각 24건(42.8%), 37건(57.7%)으로 건수와 비율 모두 최고치를 찍었다.

발주 금액으로 따지면 더욱 놀랍다. 2015~18년의 연별 금액은 615억(2016년)~1203억원(2017년) 수준이었다. 전관 회사가 차지한 금액도 159억(22.5%, 2018년)~615억원(51.2%, 2017년) 정도였다.
그러나 2019~20년 연별 금액이 각각 1711억~3080억원으로 폭증하면서, 전관 회사가 가져간 금액 역시 732억(42.8%)~1776억원(57.7%)으로 크게 늘어났다.

LH 측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수주처를 결정하기 때문에 전관 특혜로 용역을 싹쓸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LH 전관들이 재취업한 회사가 대부분 대형 업체들이고, 이 업체들의 실적이 원래 좋았던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내부 고발자의 설명은 달랐다. 내부 고발자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LH 전관들은 재취업하면서 대부분 회장·부회장·사장 등의 직함을 받는다. 법인카드, 차량 지원 등을 합치면 연봉이 3억원쯤 된다”면서 “이런 거액을 받고 하는 일이라고는 한마디로 ‘LH 현직에 대한 골프 접대’다. 전관들은 LH 현직들을 접대하면서 내부 정보를 빼내고, 수주를 받아오는 것이 지상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LH 내부 심사위원을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LH 출신이 개설한 소형 건축사사무소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설계 지분 10% 정도를 할애해 준다”면서 “LH 출신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설계 도면 한 장 안 그리고 오로지 내부 위원을 상대로 득표 활동만 한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주로 교수들로 구성되는 외부 심사위원에 대한 로비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내부 고발자는 “심사 당일 새벽 6시에 추첨을 통해 외부 심사위원을 결정하는데, 선정되면 오후 2시까지 진주 LH 본사로 가야 한다. 이 틈을 이용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사례를 약속하거나 또는 중간 지점에서 만나 직접 현금을 전달한다”면서 “심사위원 1인당 발주 금액의 1% 정도가 업계 관행이다. 예를 들어 30억원짜리 용역일 경우 1인당 3000만원을 ‘실탄(로비)’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퇴직자 재취업 법적으로 제한받는 LH 직원은 7명뿐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서기관) 이상 일반직 공무원은 퇴직일부터 3년간 공무원 시절 마지막 5년 동안의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공공기관·사기업에는 취업할 수 없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재취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LH는 공기업이어서 LH 퇴직자는 바로 재취업이 가능하다.

재취업 제한에 걸리는 LH 직원은 전체 9500여 명 중 사장, 부사장, 상임감사, 4명의 상임이사 등 7명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해 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LH가 퇴직자 재취업과 관련해 특혜를 누려왔다고밖에 볼 수 없다. LH의 용역은 수십억, 수백억원이 오가는 사업인 경우가 많고 이해 관계자도 많다. 당연히 퇴직자 재취업 제한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면서 “국회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나.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에 개발사업을 하나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LH의 눈치를 본 것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LH의 재산등록 의무자 역시 사장, 부사장, 상임감사, 상임이사뿐이었다. 그러나 3월24일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LH를 포함해 부동산 관련 업무를 하거나 부동산 정보를 취급하는 공직유관단체 직원은 모두 재산등록을 해야 한다.

또한 함께 통과된 한국토지주택공사법 개정안에 따라, LH 임직원과 10년 이내 퇴직자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을 거래한 경우 이익을 모두 몰수·추징당하고 5년 이하의 징역이나 이익의 3~5배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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