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차별보다 더 혹독한 ‘외부자’ 취급 받는 아시아계 이민자들
  •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7 12:00
  • 호수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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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혐오 논란 확산
흑인과 아시아계 간 갈등도 심각

미국 내 아시아계 이민자 차별은 역사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흑백 갈등에 밀려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왔다. 최근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집단살해 사건을 계기로 아시아계 이민자의 삶에 대한 관심이 조금 증가하는 추세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아마도 코로나19 발원지가 중국이라고 믿는 일부 미국인의 편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보고된 지역이 중국인 것은 사실이나, 실제 전염병이 중국 우한시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쾌하게 밝혀진 바 없다. 하지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면서 방역 문제를 교묘하게 정치 문제로 변질시킨 바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벌어진 경제적 어려움의 책임을 중국으로 돌려 분노와 절망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폭력행위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도 아시아계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차별과 범죄행위가 자세히 보도되지 않았을 뿐, 결코 드물지 않았다. 미국 내 인종 소수자인 흑인에 대한 차별에는 주목하면서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차별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흑인과 아시아계 이민자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3월2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폭력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도중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있다.ⓒAP연합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은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 관계라는 수직적 위계질서 문제로 귀결된다. 반면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차별은 ‘내부자’와 ‘외부자’ 관계로 규정된다는 차이가 있다. 이미 미국 땅에 정착한 지 오래된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차별의 대부분은 이러한 표현으로 시작된다. 다시 말해 이민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언어·문화·관습의 차원에서 온전한 미국인이 될 자격이 부족한 ‘외부자’로 취급해 배제함으로써 차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인종 위계질서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 주류 백인들은 아시아계 이민자를 ‘외부자’로 취급하는 동시에, 대내적으로는 흑인에 대한 차별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해 왔다. 이러한 현상을 사회학에서는 ‘모범적인 소수자(model minority)’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 개념에 따르면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열심히 노력해 상당수가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는데, 흑인들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처럼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사회와 정부에 대한 불만만 표출하고 있다. 이것은 일면 타당한 논리처럼 들리기는 하나 사실 매우 근거가 빈약한 주장이다.

이 주장이 근거가 빈약한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모범적인 소수자’ 논의가 아시아계 이민자 중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의 비율이 꽤 높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산층으로서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차지한 아시아계 이민자의 상당수는 미국에 오기 전에 본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은 전문직 종사자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제도적 차별을 받아왔던 흑인과는 이미 출발선 자체가 달랐다는 말이다.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논리가 아님에도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모범적인 소수자’라는 이미지를 수용했다. 아직 미국의 주류, 즉 백인의 지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명백하게 다른 인종 소수자인 흑인보다는 우월하다고 스스로 생각해 왔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인종 위계질서에서 백인과 흑인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는 인식을 분석하는 학술적 논의를 ‘중간 소수자 이론(middleman minority theory)’이라고 부른다. 미국 내 인종 관계를 이러한 이론적 틀로 이해하게 되면,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흑인의 분노는 백인에게 가기 전, 중간에 위치한 아시아계 이민자를 향하게 된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백인에 의한 아시아계 이민자 차별이 결코 적지 않았음에도, 흑인과 아시아계 이민자 간 갈등이 부각되는 기이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아시아계 이민자는 자신들이 언젠가 주류 백인의 지위를 쟁취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해 흑인들을 업신여기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흑인들은 자신과 연대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인종 위계질서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경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을 통해 미국의 인종 위계질서는 재생산된다.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가 미국 오클랜드에서 열린 ‘아시아계 혐오 중지’ 시위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CBS 피츠버그 유튜브 캡처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 아시아계 이민자들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차별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아온 이유는 궁극적으로 미국 사회의 주류에 편입되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아시아계 이민자의 구성이 너무 다양하다는 점이다. 아시아계 이민자는 한국·일본·중국·인도·파키스탄·필리핀·베트남·이란·라오스·태국 등 거의 모든 아시아 대륙 출신 이민자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기에는 언어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생활습관도 너무 다르다. 따라서 아시아계 이민자를 향한 증오범죄에 대한 반응이 피해자가 어떤 나라 출신이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애틀랜타 살해 사건의 희생자 8명 중 4명이 한국 출신인데, 이들을 추모하고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규탄하는 집회에 인도·파키스탄·베트남계 이민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을까. 코로나19 확산에서 비롯된 분노와 미·중 무역 갈등에서 파생된 반중(反中) 정서가 결합해 미국 내 중국계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 더 심화된다면, 과연 한국·필리핀·베트남계 이민자들이 중국계 이민자들로 오인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집과 직장, 그리고 소지품에 본국의 국기를 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바이든 대통령의 4대 국정 과제 중 하나가 미국 내 인종 불평등을 철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제는 트럼프 행정부 때 부각된 흑인 차별에 초점을 맞춘 내용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흑인에 대한 차별과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차별은 성격이 많이 다르다. 바이든 행정부가 상징적인 차원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를 향한 증오범죄에 유감을 표명하기는 하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정치인들의 주목을 받기에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지위가 여전히 모호하기 때문이다.

우선 흑인과 달리 중산층 비율이 높은 집단이기 때문에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리고 아시아 대륙 출신을 모두 모아도 미국 전체 인구의 약 5%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집단 내 다양성 때문에 ‘아시아계 이민자’로서의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인종 소수자인 흑인 혹은 히스패닉계 이민자와의 연대도 만만치 않다. 이것이 현재 미국의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처해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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