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지지도 못 한 부끄러운 선거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9 12:00
  • 호수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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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일관한 여당,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
자신들만 옳다는 낡은 도그마에 갇혀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4·7 보궐선거의 결과는 문재인 정부 집권 세력이 잊고 있던 그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역대급 압승을 거두었던 더불어민주당은 1년도 지나지 않아 준엄하게 심판당하는 정반대 위치가 되고 말았다. 정치가 아무리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고 해도 이렇게 빠른 대반전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시민들이 이렇듯 대거 정권 심판 투표에 나선 것일까.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4월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입장 발표를 한 뒤 굳은 표정으로 당사를 떠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4월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입장 발표를 한 뒤 굳은 표정으로 당사를 떠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민심은 그렇게 낯뜨거운 네거티브까지도 심판

굳이 여론조사 결과들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체감해 예측할 수 있었던 선거 결과였다. 뒤죽박죽이 된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과 분노는 모든 계층과 세대에 걸쳐 쌓여 있었고, 언제나 ‘내로남불’하는 집권 세력의 오만에 대한 분노로 시민들의 심판 의지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한때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도 배신감에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반드시 투표해서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벼르던 사람이 너무도 많았던 것은 민주당만 모르고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박영선 캠프의 네거티브 선거 전략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웠던 선거를 최악의 선거로 만들어버렸다. 정권 심판론이 압도하는 선거에서 박영선으로서는 ‘박영선 대 오세훈’의 인물 대결로 몰고 가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만들어낸 ‘생태탕 선거’로 인해 박영선이라는 인물의 장점과 여당 후보로서의 정책은 다 파묻혀버렸다. 16년 전 생태탕 먹으러 온 사람의 신발 색깔이 이슈가 된 선거는 대체 어떤 선거란 말인가. 서울시장 선거는 생태탕·페라가모·하얀 로퍼·선글라스 이런 키워드들에 올인하는 선거가 되고 말았다. 2021년에 대한민국 수도의 시장을 뽑는 선거의 최대 이슈가 ‘생태탕’이 되어버린 현실은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것이었다.

시민들은 오세훈이 측량 현장에 갔는지 아닌지 알지 못하지만, 16년 전 그가 시장도 아니었던 시절에 설혹 측량 현장에 있었으면 어떻고 생태탕을 먹었으면 또 어떠한가라고 반문한다. 오세훈이 혹여 지레 겁을 먹고 사실과 다르게 둘러댄 것이라면 진실성 부재에 대해서만 비판하면 될 일이지, 무슨 엄청난 사건처럼 만든 전형적인 ‘선수’들의 기법이었다. 과거 서울시장으로서 내곡동 땅과 관련해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불법부당한 관여를 했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인데, 민주당은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하고 그저 ‘생태탕’ 얘기만 반복했다. 그것도 모자라 서울시의회까지 동원하는가 하면, ‘중대 결심’ 운운하는 얘기를 꺼냈다. 

선거 마지막에는 느닷없이 박영선을 생뚱맞게도 6411번 버스에 태워 ‘노회찬’의 이름을 소환하더니 이번 선거와 아무 상관도 없는 ‘노무현’의 이름을 소환하는 광경까지 연출했다. 여당으로서는 정말 버라이어티하게 안 해 본 것 없이 다 해 보고 끝낸 선거였다.

하지만 민심은 그렇게 낯뜨거운 네거티브까지도 심판했다. 이번 선거가 민주당 소속 박원순-오거돈 전직 시장들의 성희롱 사건 때문에 치러진 것이었으니, 애당초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어야 했다. 끝내 비판을 무릅쓰고 후보를 냈다면, 지더라도 부끄럽지는 않게 지는 길을 택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은 대한민국의 집권여당이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를 거듭 회의하게 만들었다. 내년 3월이면 대통령선거가 있고 곧이어 6월 지방선거도 있다. 이번 선거가 전부가 아니라면 차라리 당당하게 지는 게 다음을 위해서라도 나았을 텐데, 민주당은 너무 망가지는 모습을 보였다. 게도 잃고 구럭도 잃게 된 셈이다. 그러니 민주당 전체의 공감능력 마비를 탓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고작 ‘김어준들’에게 기대어 승리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이 나라 집권여당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라는 현실은 시민 모두를 참담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선거 기간 동안 민주당이 보인 모습을 돌아보면, 이번 참패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달라질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증폭된다. 자신들을 심판하겠다는 민심이 확산일로인데도 이들은 조금도 겸손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리자 민주당이 내놓은 몇 가지 사과에 진정성이 없음을 어린아이들도 알 수 있었다.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를 말하지 않는 ‘묻지마 사과’는, 사실은 사과할 진심이 없음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달라짐을 전제로 하지 않는 사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번 선거에 다시 드러난 여당의 내로남불과 오만은 민주당 주류 세력이 갖고 있는 이분법적 세계관에 기초한 것이기에 앞으로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만 옳다는 낡은 도그마에 갇혀 있는 정치인들이 민주당을 이끄는 한, 민주당의 환골탈태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것을 내다본 시민들이 이번에 꺼내든 것은 경고를 하려는 ‘옐로 카드’가 아니라, 퇴장을 명하는 ‘레드 카드’였던 것이다.

 

기득권 양당 체제에 균열 내는 변화 만들어야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향후 대선 구도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당장 여권 전체가 침몰한 상황이라 민주당 주자들의 고전은 불가피해졌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할 이낙연 전 대표는 대선주자로서는 사실상 탈락한 상태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의 대선주자는 이재명 경기지사 독주체제가 예상되는데, 여권 전체의 추락 속에서 과연 그만이 건재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만약 이 지사까지 흔들리는 상황이 되면 집권여당이 해볼 만한 대선후보를 내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당내 친문 세력은 불안한 이재명에게 기대하느니 제3의 자체 후보를 추진하겠지만, ‘86세력’에 대한 민심의 거부가 뚜렷한 상황에서 그것도 힘을 얻기 어려운 대안이다. 

물론 대선후보가 마땅치 않은 것은 압승을 거둔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압승을 거둔 제1야당이라고는 하지만, 경쟁력 있는 후보가 없는 정당은 대선 정국에서는 힘을 가질 수 없다. 결국 정권교체를 원하는 민심은 윤석열을 소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에 흡수되어 대선후보가 되는 길은 편하기는 하겠지만 의미 있는 길은 아니며, 파괴력 또한 스스로 제한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 

야권으로선 윤석열이 일정한 준비 기간을 거친 후 등판해, 판을 주도할 독자 세력으로 힘을 키운 후에 야권 전체를 결집시키는 것이 파괴력을 극대화하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믿는 눈치다. 하지만 윤석열은 단지 개인의 한풀이나 명예회복을 위해 대선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제3후보라 하면 기득권 양당 체제에 균열을 내는 변화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개인이나 특정 정당이 아니라 우리 정치를 위해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내년 3월의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다시 한번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보게 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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