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인 엑소더스에도 미소 짓는 시진핑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7 11:00
  • 호수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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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연방 등의 홍콩인 입국 허용에 겉으론 “내정 간섭” 반발, 속으론 “빈자리 채울 중국인 많아”

4월8일 영국 정부는 홍콩에서 이주해 오는 이민자의 정착을 돕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4300만 파운드(약 668억원)의 예산을 배정해 홍콩 이민자의 영어 교육, 주거비용, 창업과 건강관리, 자녀 학교 등록 등을 지원키로 한 것이다. 또한 이를 전담하는 가상 지역사무소인 웰컴 허브 12곳을 열기로 했다. 로버트 젠릭 영국 지역사회부 장관은 이런 계획을 설명하면서 “영국 해외시민(BNO)과 그 가족들이 영국에 오자마자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보장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며 “그들이 집과 학교, 기회와 번영을 찾을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홍콩인에 대한 영국의 이민 확대정책은 지난해 7월 홍콩국가보안법 시행에 대한 맞대응이었다. 영국은 홍콩인 중 BNO 여권 소지자와 그 가족이 특별비자를 받아 영국에 오면, 5년 동안 거주하고 취업한 뒤 시민권을 신청하도록 이민법을 개정했다. 그리고 지난 1월3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홍콩인의 자유로운 이민을 사실상 허용한 것이다. 영국이 이처럼 홍콩인을 우대하게 된 데는 BNO 여권의 특수성 때문이다. BNO 여권은 1984년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하기로 결정하면서 등장했다. 당시 반환 협정의 핵심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였다.

덩샤오핑(鄧小平)은 반환 이후 50년 동안 일국양제로 홍콩의 현상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홍콩인의 홍콩 통치(港人治港)를 천명했다. 이를 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이 1990년 제정한 ‘홍콩특별행정구기본법’이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홍콩인의 불안감과 의심은 해소되지 못했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광장의 민주화 시위를 강제로 유혈 진압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은 홍콩인을 달래기 위해 BNO 여권을 마련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전에 태어난 홍콩인 중 희망자에 한해 BNO 여권을 1987년부터 발급해 주었던 것이다.

2020년 5월29일 홍콩의 한 시민이 중국의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자신이 소지한 영국 국적의 여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AP 연합

홍콩인의 65% “홍콩을 떠나고 싶다”

BNO 여권 소지자는 원천적으로 영국 시민권자가 아니다. 하지만 영국에서 간단히 비자를 발급받아 6개월 동안 체류할 수 있다. 또한 영연방 국가에서는 체류허가·건강보험 등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 덕분에 1980년대 말부터 적지 않은 홍콩인이 BNO 여권을 발급받아 캐나다·호주 등 영연방 국가로 이주했다. 홍콩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과거 BNO 여권을 발급받은 홍콩인은 344만 명에 달했다. 최근에는 여권 소지자와 그 가족까지 합쳐 540만 명에 육박한다. 2019년 말 홍콩 인구가 752만 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무려 72%에 달하는 수치다.

이렇듯 BNO 여권 소지자에 대한 문호 개방은 즉시 효과가 나타났다. 3월20일 영국 정부는 “BNO 여권을 소지한 홍콩인 2만7000여 명이 영국 시민권 획득을 위한 특별비자를 신청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향후 5년 동안 약 32만 명에서 100만 명의 홍콩인이 특별비자를 받아 이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캐나다도 홍콩인을 위한 이민 우대정책을 마련했다. 2월8일부터 최근 5년간 대졸 이상 학위를 취득한 홍콩인에게 3년 취업비자를 내주는 특별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취업 1년 후에는 영주권도 신청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홍콩인이 해외 이민을 고민하고 있을까?

3월19일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홍콩민의연구소가 3월15일부터 18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57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내용이었다. 응답자 중 20%는 ‘영원히 홍콩을 떠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고, 2%는 ‘이미 이주 작업을 마쳤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42%는 ‘향후 상황 변화에 따라 떠날 수 있다’며 이민 의사를 드러냈다. 오직 27%만 ‘어떤 상황이 오든 홍콩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무려 66%가 홍콩을 떠날 계획이거나 의사가 있다고 대답한 배경은 홍콩인들이 그만큼 홍콩의 자유와 정치 상황을 절망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홍콩을 영원히 떠난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38%는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 17%는 ‘홍콩의 정치 상황 때문에’, 11%는 각각 ‘개인의 생활’과 ‘가정의 앞날을 위해서’, 6%는 ‘홍콩의 불투명한 경제 전망’ 순으로 꼽았다. 또한 응답자의 65%는 ‘미래 홍콩의 정치 환경에 대해 믿음이 없다’고 답변했다. 오직 25%만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물론 이 조사는 온라인을 통해 진행되어 젊은 층의 참여도와 답변 비율이 높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홍콩인들의 암울한 현실 인식을 객관적인 수치로 보여주기에 큰 의미가 있다.

영국과 영연방 국가가 홍콩인의 이민을 적극 수용하는 정책에 대해 홍콩과 중국은 “내정 간섭”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3월 중순 홍콩 정부는 한국·미국·독일·일본 등 14개국에 BNO 여권의 효력을 인정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홍콩인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할 때는 BNO 여권이 아닌 홍콩 여권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조치는 BNO 여권이 영국이나 영연방 국가 이외의 나라에서 통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서구 국가들로부터 “홍콩 정부가 외국 여권의 효력에 개입할 그 어떤 권한도 없다”는 비판만 자초했다.

올해에만 2802억 홍콩달러 유출 전망 

사실 홍콩 정부의 이런 요청은 충분히 이해될 만한 조치였다. 대다수 BNO 여권 소지자는 홍콩에서 사회적으로 엘리트, 경제적으로 중상류층이다. 이들이 홍콩 내 자산을 매각한 뒤 영국이나 영연방 국가로 이민을 갈 경우, 홍콩 입장에서는 인재와 재부가 유출되는 셈이다. 지난 1월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홍콩인의 이주로 올해에만 약 2802억 홍콩달러(약 40조1414억원)의 자금이 해외로 유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향후 5년 동안에는 5880억 홍콩달러가 빠져나갈 것으로 추산했다. 이주하는 홍콩인들로 인해 런던의 고급주택 가격은 지난해 하반기 내내 상승했다.

그러나 정작 중국의 속내는 전혀 다르다. 겉으로는 “내정 간섭”을 외치며 불쾌해하면서도 홍콩인의 이민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주한 홍콩인을 대신해 애국심이 투철한 중국인을 투입하면 되기 때문이다. 현재 홍콩에서는 영어·만다린(Mandarin)·캔토니즈(Cantonese)가 공용어다. 만다린은 중국의 표준어이고, 캔토니즈는 광둥(廣東)성 사투리인 광둥어다. 홍콩 인구는 752만 명이지만, 홍콩과 인접한 광둥성 주민은 1억1521만 명이다. 광둥에서 광둥어를 구사하는 인구는 대략 85~90%다. 여기에다 광시(廣西)자치구에도 광둥어를 구사하는 주민이 2500만 명이나 된다.

따라서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를 할 줄 아는 광둥어 사용자는 중국에만 수백만 명이나 된다. 그렇기에 홍콩의 인재가 해외로 떠나도, 같은 조건과 능력을 갖춘 중국인으로 금방 빈자리가 채워진다. 중국의 이런 속내는 지난 1월말 캐리 람 행정장관의 자문기구인 행정회의 버나드 찬 의장의 입을 통해 누설됐다. 찬 의장은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홍콩인의 해외 엑소더스는 자격이 잘 갖춰진 중국인으로 곧 상쇄되기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찬 의장은 홍콩에서 대표적인 친중파로 통한다. 홍콩 언론은 “중국공산당의 생각을 반영한 언급”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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