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말육초 전 상서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1.04.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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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의 말》ㅣ 한혜경 지음ㅣ싱긋 펴냄ㅣ256쪽ㅣ1만5000원

은퇴생활 전문 연구가 한혜경의 《은퇴의 말》에 새로운 말은 없다. 모두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던, 친구들과 대화의 주제였던 말들이다. 책 자체도 초판이 아니라 2014년 출판됐던 《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의 개정판이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중요하지 않은 시점이 없겠지만 오십 대 후반부터 육십 대 초반을 일컫는 ‘오말육초’는 특히 생사를 가르는 건강의 분기점에다 은퇴를 현실로 맞닥뜨리는 난기류 지점이다. 이때가 되면 은퇴 후 삶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하므로 《은퇴의 말》을 흘려 듣지 말고 유념해 들으라는 뜻에서 이 책을 진지하게 권한다.

여기까지 쓰는 순간(26일 낮) 정이삭 감독 영화 ‘미나리’의 주연 배우 윤여정이 미국 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 조연상을 탔다는 뉴스가 속보로 떴다. 올해 만 74세인 윤여정은 얼마 전 영국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탔을 때 “오래 살고 볼 일이다”고 했던 수상 소감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녀가 세계 정상에 서기까지 그냥 오래(?) 산 게 아니라 치열하게 준비하고, 연마하고, 활동하며 살았다는 것이 공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얼마 전 공개석상에서 은퇴한 전 대학교수의 말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의 말씀 요지는 ‘은퇴하고 나니 학벌 좋은 것, 훈장 탄 것, 연구논문 많은 것은 전혀 쓸모가 없더라. 교수 출신이나 은행원 출신이나 직업군인 출신이나 다 똑 같더라. 하루하루가 너무 무료해 아파트 경비라도 하고 싶은데 (체면 때문에) 아내가 반대해 그것도 못하고 있다. 은퇴 후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준비를 너무 안 했다’는 것이었다.

이 어르신 말씀이 정답이다 싶었다.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지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할 일 없어 괴로운 것인데 우리는 ‘산에나 다니지, 책이나 읽지, 농사나 짓지, 여행이나 다니지’라 쉽게 말한다. 그 말에 은퇴한 사람들이 이렇게 답한다. ‘산에 다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날마다 다녀봐라, 갈 맛이 나는지.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책은 아무나 읽나? 독서도 습관이 된 사람이나 가능한 것이더라. 북 돋아 줄 때, 가지 쳐 줄 때 하루 놓치면 망치는 것이 농사다. 씨앗 심고 나면 한참 동안 별로 할 일도 없더라. 도시 텃밭농사라도 먼저 해보고 그런 말 하라. 여행 편히 다닐 만큼 돈은 벌어두었고?’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먼 훗날을 위해 오늘을 희생 제물처럼 바치는 그런 생활은 다시는 하지 않을 겁니다”가 다 대변하는 《은퇴의 말》에는 은퇴 준비를 어떻게 해야 현명한지, 은퇴 준비를 잘 하지 않으면 어떤 재미 없는 삶이 우리를 기다리는지 매우 구체적이고, 뼈아프게 들어있다. 남녀불문 은퇴가 예정된 사람들에게 유효하고, 저자의 또 다른 은퇴 연구서 《은퇴의 맛》을 부부가 함께 ‘공부’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모든 책은 출판의 목표가 있다. 저자는 현역에 있을 때 노후 대비를 《은퇴의 말》로 하기로 작정했던 것이 분명하다. 은퇴하기 오래 전부터 은퇴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이름을 쌓고, 개정판과 복수의 책들을 출판한 것이 방증이다. 필자 역시 은퇴 후 명불허전, 불후의 베스트셀러 기행문집을 쓰기 위해 지금 글쓰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봄에 씨앗을 뿌려야 가을에 걷을 게 있는 법이므로.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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