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가상화폐 과세 유예 주장은 정치 논리에 불과
  • 이경근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금융조세포럼 부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3 14:00
  • 호수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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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 원칙대로 부과하되 투자자 보호장치는 마련해야

지난 4월22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발언은 비트코인 값을 1000만원 이상 떨어트릴 정도로 투자자와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은 위원장은 가상화폐에 대해 “소득세는 부과할 계획이지만 금융자산으로 인정할 수 없고 정부가 나서서 투자자를 보호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이에 2030세대가 집단반발하자 여권은 민심 달래기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일부 민주당 국회의원은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가상화폐 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를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된 이유는 ‘가상화폐의 자산 가치가 없기에 정부가 세금을 걷을 경우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세 전문가 입장에서 최근 정치권에서 전개되는 가상화폐 과세 논쟁을 보는 필자의 견해는 다르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1월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정부의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 위헌 확인 공개 변론을 위해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1월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정부의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 위헌 확인 공개 변론을 위해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가상화폐 세금 부과는 조세 형평성 차원의 조치

주식투자이익에 대한 공제액이 가상화폐에 대한 공제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허용한 것은 차별과세니만큼 이 차별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은, 조세특례제한법에 포함된 수백 가지 조세감면 규정이 일반 납세자를 차별한다는 이유로 세법상 이러한 차별을 없애자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각종 비과세나 조세감면은 국가가 정책 목적상 특정 행위나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본시장을 육성함으로써 기업들이 직접 금융시장을 통해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하도록 정책적으로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비과세 제도를 도입했다. 최근 들어 이를 과세로 전환하되 과도기적으로 5000만원의 소득공제를 허용했다.

반면 가상화폐는 그동안 열거주의 과세 방식을 채택한 소득세법상의 성격상, 소득세법에 열거되지 않아 비과세됐던 것을 형평 차원에서 과세 대상으로 분명히 규정해 내년 1월1일부터 과세토록 했다. 법인세법의 경우 소득세법과 달리 순자산증가설에 따라 법령에 특별히 열거돼 있지 않아도 포괄주의 과세원칙에 따라 법인의 주식양도차익에 과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해당 소득은 당초부터 과세가 돼 왔던 것과 비교해 보면, 최근에 도입된 가상화폐에 대한 소득세법상의 과세조치는 세법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임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가 정책적으로 주식양도차익에 소득공제를 상대적으로 많이 허용하는 것을 가상화폐 소득세 과세와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할 성격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여당 의원들의 논리(가상화폐의 자산 가치가 없기에 정부가 세금을 걷을 경우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에 대해 필자는 소득세는 ‘자산 가치’가 있어야 부과되는 세금이 아니고 ‘소득’이 있다면 부과되는 세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소득이 있다면 과세돼야 한다는 논리의 연장선에서 현행 소득세법 제21조(기타소득)는 제1항에 ‘뇌물’ 및 ‘알선수재 및 배임수재에 의하여 받는 금품’과 같은 불법소득도 소득세법 과세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2020년 10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간한 ‘가상화폐 과세: 과세와 새로운 조세 정책 문제 개요(Taxing Virtual Currencies: An Overview of Tax Treatments and Emerging Tax Policy Issues)’ 보고서를 보면 가상화폐를 화폐(currency)의 한 종류로 보고 있는 벨기에·이탈리아·폴란드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국가에선 소득세 목적상 ‘자산(property)’의 한 형태로 간주하고 있다. 이 자산을 통해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 양도·사업·기타소득으로 보고 과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상화폐에 대해 소득세를 부과하는 세계 대다수 국가가 자국 투자자들을 법령으로 모두 보호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가상화폐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제도가 도입될 때까지는 과세를 유예해야 한다’는 논리는 상식적인 조세논리에 기반을 둔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계산에 기반한 논리라고 생각된다.

한편으로 가상화폐를 모두 투기 대상으로만 보고 투자자에 대한 법률적 보호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금융 당국의 입장 역시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P2P(Peer-to-peer) 방식으로 개인 간 자유롭게 송금 등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는 기술이다. 무엇보다 가치 저장 기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스마트 계약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분산 컴퓨팅 플랫폼이자 운영체제로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해 가치가 날로 상승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가상화폐는 향후 블록체인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의 경제활동을 혁신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 경제에서 사용되는 경제적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가상화폐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투자행위에 대해 향후 법과 제도를 마련해 적정하게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가상화폐에 대한 과도한 투기적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법적 장치도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

올해부터 정부가 시중은행으로 하여금 가상화폐 수탁업무(custody)를 영위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자 신한·국민 등 대형 은행들은 가상화폐뿐만 아니라 화폐·부동산·미술품·권리 등이 디지털 자산으로 발행·거래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기술과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현재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의 틀 안에서 자금세탁 방지 차원에서 가상화폐 거래소들에 대해 등록을 허용하는 정도로 지도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가상자산업권법을 제정해 이를 통해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유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

가상자산업권법 제정해 생태계부터 구축해야

이를 위해 해외 입법 사례를 참고해 사업자 규제와 산업 진흥 두 가지 목적을 모두 추구하는 가상자산업권법을 만들고 여기에 사업자 내부통제, 이해상충 방지, 광고 규제, 화폐의 분리보관, 자율규제, 보상보험 등의 내용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스위스·싱가포르·홍콩 등 관련 법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국가에서는 가상화폐를 금융자산의 한 종류로 취급해 이 분야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아울러 가상화폐가 테러 자금, 마약 구매나 탈세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운용의 투명성을 사업자의 인가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제도를 벤치마킹해 가상화폐 시장의 발전을 우리나라 금융시장 발전의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와 같은 내용의 ‘가상자산업권법’이 제정·시행될 때까지 과세를 유보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과세를 유보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득세 과세는 일반적인 소득과세 원칙에 따라 도입·시행돼야 하는 것이지 어느 특정 자산 거래에 대한 소득세 과세가 그 자산 관련 산업의 업권법 제정 여부의 종속변수가 돼 운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타당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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