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영화계 “OTT야, 같이 살자”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2 10:00
  • 호수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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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플랫폼 각축 시대, 위기와 기회는 함께 온다

코로나19 팬데믹 2년 차. 극장가는 찬바람이 불고, 개봉 영화는 창고에 쌓였고, 투자는 얼어붙었다. 한국 영화산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 1년간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한 문제다. 역병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측되지 않는 지금도 이 물음은 유효하다. 그러나 많은 이가 수긍하는 지점 하나. 미디어 업계 전반의 콘텐츠 소비 패턴이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년여의 시간이 알려준 또 하나는 코로나19가 지속되는 한 극장은 사양산업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영화를 홍보하고, 영화관에선 집단감염이 없었음을 알려봤자, 관객은 극장으로 쉽게 발길을 안 돌린다. 스타가 나오는 영화든, 인기 감독의 영화든 매한가지다. 요즘은 영화 한 편이 100만 명 동원하기도 힘들다. ‘개봉 3일 만에 100만 돌파’ ‘최단기간 100만 돌파’ 같은 홍보 문구는 이제 ‘옛날 옛적’ 구전동화처럼 느껴진다. 이는 수치가 증명한다. 2020년 한국 극장 매출액은 전년 대비 73.3%나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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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CGV용산아이파크몰ⓒ시사저널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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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낙원의 밤》ⓒ넷플릭스

‘극장 우선’ 개봉 원칙 깨졌다

극장이 죽을 쑬 때, 상승 그래프를 그린 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다. 장소 제약 없이 클릭 하나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점은 코로나19 시대에 그 자체로 특화된 장점으로 승화됐다. 특히 OTT계의 선두주자인 넷플릭스는 팬데믹 시대 대표 수혜주로 평가받는다. 사람들의 ‘집콕’ 시간 증가와 비례해 구독자 수도 점프했다. 이를 바라보는 영화계, 특히 극장가의 심정이 복잡한 건 OTT가 영화관의 대체재로 굳어지면 어쩌나 하는 위기감 때문이다. OTT를 통해 영화 콘텐츠 소비의 새로운 경험을 쌓은 관객들이 팬데믹 이후 극장으로 돌아올까?

한국 영화산업은 그동안 극장 중심으로 짜여왔다. 영화 수익의 대부분이 극장에서 나왔다. 슈퍼 갑인 극장의 위기는 산업 전반의 연쇄 쓰나미를 예고했다. 그러니 영화계로서는 OTT의 영역 확장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극장이라는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OTT는 오랜 시간 견고하게 쌓아온 영화계 수익 구조와 유통 경로를 거스르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과거 넷플릭스 영화 《옥자》의 극장-OTT 동시 개봉 추진에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결사반대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기득권에 도전하려는 자, 경계하라.

그러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극장 선공개’라는 원칙은 깨졌다. 《사냥의 시간》을 시작으로 《차인표》 《콜》 《승리호》 《낙원의 밤》 등이 극장을 패싱하고 넷플릭스로 관객을 만났다. 오리지널 콘텐츠가 필요한 넷플릭스와 개봉작 표류 리스크를 어떻게든 줄이려는 영화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러나 콘텐츠 제공자 입장에선 풀고 싶은 숙제가 많다. 넷플릭스에 작품을 팔면 제작비는 보전할 수 있지만, 창작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어지니 말이다. 재주는 제작사들이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가 벌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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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극장 동시 개봉을 택한 《서복》ⓒCJ ENM 제공

‘극장-토종 OTT 티빙’ 동시 공개를 선택한 CJ ENM 《서복》은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모델로서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 영화를 홀드백(한 편의 영화가 다른 수익 과정으로 중심을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 없이 OTT-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동시 공개하는 건 《서복》이 최초다. 이를 두고 영화진흥위원회는 “《서복》은 극장과 OTT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상생의 관계로 접어드는 길목의 첫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CJ ENM 역시 극장-OTT 상생이 통했다고 자평했다. 물론 CJ ENM 내부 평가와 달리 《서복》의 결과는 여러모로 아쉽다. 코로나19 영향이 있다 치더라도, 34만이라는 저조한 박스오피스는 충격적이다. 그럼에도 홀드백에 연연하지 않는 시도를 했다는 점은 유의미한 사례로 남는다. CJ ENM은 영화 《해피 뉴 이어》를 《서복》처럼 티빙 오리지널 공개와 함께 극장에서 개봉할 계획이다. 한지민, 이동욱, 강하늘, 임윤아, 원진아, 김영광, 서강준, 이광수 등이 《해피 뉴 이어》에 출연한다.

마침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들이 한국 시장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넷플릭스에 맞서 자체 콘텐츠 제작 역량을 키우려는 토종 OTT(왓챠, 웨이브, 티빙, 쿠팡플레이)들도 우후죽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를 맞이하는 영화계의 자세는 1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학습효과 덕이다. OTT 업체들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면, 개봉 방식은 물론 영화 기획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형식의 수익 모델들이 나올 수 있다. 여러 OTT 업체가 경쟁하면서 콘텐츠 제공자들에게 다양한 계약 조건을 던질 공산도 크다. 영화 관람의 제1 관문 역할을 했던 극장으로서는 ‘슈퍼 갑’ 지위를 상실하는 일. 그러나 극장 매출에 의존했던 기존의 수익 구조 개선이 필요한 영화계 전반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위기와 기회는 함께 오는 법이다.

수익 구조 다변화의 대안을 찾는 움직임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CJ ENM이 자회사 티빙을 통해 신개념 유통을 실험했다면, 투자배급사 NEW와 쇼박스는 쿠팡플레이와 손잡고 《남산의 부장들》 《부산행》 《변호인》 등을 제공했다. 영화제들도 OTT를 적극 끌어안고 있다. 전주영화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OTT 플랫폼 웨이브를 통해 출품작들을 온라인 상영했다. 웨이브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도 힘을 모았다. 부천국제영화제 역시 왓챠와 함께 영화제를 치렀다.

OTT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창작자들 운신의 폭은 넓어지는 분위기다. 이경미(《보건교사 안은영》)·연상호(《지옥》)·윤종빈(《수리남》) 감독 등이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만들었거나,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경미 감독은 넷플릭스 작업의 가장 큰 장점으로 ‘창작의 자유’를 꼽은 바 있다. 한국영화라면 주저했을 과감한 시도들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감독들에게 OTT라는 세계는 새로운 기회의 장인 게 사실이다. 배우들 역시 다르지 않다. OTT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계 시청자를 만날 수 있으니, 효과는 1석2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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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승리호》ⓒ넷플릭스

해외 자본의 빠른 국내 유입 ‘눈길’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해외 자본이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는 모두 해외에 본사를 둔 외국 기업이다. 이들은 국내 시장이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투자·제작비를 제공함으로써 수준 높은 볼거리를 만들어내고, 국내 일자리 확충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는 국내시장에서 해외 자본의 입김이 강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이들은 단순히 플랫폼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제작과 유통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려 하고 있다. 실제로 오리지널 영화 《옥자》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킹덤》 등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으로 인지도를 높인 넷플릭스는 한국영화 《카터》(가제)와 《모럴센스》(가제)를 자체 제작 중이다. 해외 자본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국내 콘텐츠 제공자들의 자체적인 경쟁력 확보는 필수다.

코로나19가 앞당기긴 했지만, 미디어 업계에서 빠르게 세를 확장해 가던 OTT는 영화계가 언젠가 맞닥뜨려야 할 대상이었다. 변화하는 미디어 생태계에 적응할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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