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하늘길’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 찾는 관광 스타트업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9 10:00
  • 호수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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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 입주기업 밀착취재
고사 위기 딛고 진화 ‘부활 날갯짓’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언택트(un+contact·비대면)는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되어 버렸다. 자연스레 적응하는 이도, 소외되는 이도 생겨났다. 기업들은 더욱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다. 웬만한 대기업들이야 카운터펀치를 맞고도 특유의 강한 맷집으로 다시 일어섰으나, 중견·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중엔 그로기 상태에 빠진 곳이 많다. 특히 언택트, IT 등과 관계없는 스타트업들은 고사 위기에 처했다. 

관광 스타트업은 여기에 ‘해외여행 올스톱’이란 약점을 하나 더 추가했다. 코로나19로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여행)와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여행) 모두 멈춰서면서 이들 업체는 전대미문의 데스밸리(창업 초기 도산 위기)를 함께 지나게 됐다. 5월11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를 찾아 관광 스타트업 구성원들과 만나봤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만큼 암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희망이 감돌았다. 이유가 뭘까.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커무브·하스스튜디오·트래블메이커스·한국자전거나라 구성원들이 사무실에서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50여 개사에 임대료·프로그램 지원 

현재 관광공사 서울센터에 베이스캠프를 친 관광 스타트업은 50여 개사다. 관광공사 서울센터는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입주기업들에 임대료 50~100%를 지원하고 있다. 덕분에 기업들은 마치 부모님 댁에서 신세를 지듯 집세 부담 없이 사업을 이어가는 게 가능해졌다. 체험형 이벤트 기업 커무브를 이끄는 원준호 대표(35)는 “밖에서 일반 사무실을 구했으면 한 달에 100만원 이상 지출해야 했을 텐데, 그런 부담이 없으니 굉장히 안정감이 든다”며 “사무실뿐 아니라 사업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서 ‘당장 사람(관광객)이 없어도 점차 돌파구를 마련해 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관광공사 서울센터는 사무실과 회의실, 미팅룸, 라운지, 상담실, 다목적홀 등을 갖췄다. 입주기업들은 유관기관의 협업·교류를 위한 네트워킹 데이, 창업·관광·법률·특허·재무 상담 등에도 참여할 수 있다. 국내 가이드 투어를 기획·제작하는 한국자전거나라 사무실 문을 열어봤다. 커다란 책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여행업과 관련한 책들로 빼곡했다. 책장 옆 화이트보드엔 사업 아이디어들이 브레인스토밍 식으로 적혀 있었다. 복도에서 전화통화 소리가 들려 돌아봤다. 여행·숙박 플랫폼을 운영하는 트래블메이커스 직원이 제휴 호텔 측과 통화하며 라운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사무실 바로 옆 소회의실에서 화상회의를 하고 나온 이용규 대표(40)가 직원들에게 “저 왔어요”라고 경쾌하게 인사했다. 이 대표를 비롯한 한국자전거나라 구성원 5명은 이곳에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현재와 미래를 꾸려가고 있다. 

한국자전거나라는 최근 이웃 사무실의 하스스튜디오와 협업을 시작했다. 관광공사 서울센터에선 입주기업 간 업무·노하우 공유가 실시간으로 일어난다. 건축문화 여행상품을 기획·운영하는 하스스튜디오 김현정 대표(31)는 “한국자전거나라와 ‘김중업 건축 투어’ 상품을 같이 만들고 있다”며 “문외한이었던 가이드 투어 전반에 대해 한국자전거나라의 자문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하스스튜디오는 지난해 3월 관광공사가 진행하는 액셀러레이팅(창업기획) 지원 사업에 응모해 선정됐다. 관광공사는 하스스튜디오를 포함한 선정 기업 30곳에 각각 자금 5000만원씩을 지원했다. 아울러 액셀러레이터 3개사와 연계해 역량 강화 교육, 멘토링, 네트워킹, 홍보, 투자유치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우수 참여 기업엔 액셀러레이터로부터 직접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관광공사는 올해도 액셀러레이팅 지원 사업과 관광벤처 공모전, 관광 글로벌 선도기업 지원 사업 등을 추진한다. 이런 사업들은 관광 스타트업들에 젖줄과 다름없다. 김현정 대표는 “지난해 초만 해도 인테리어 같은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면서 “관광공사, 서울시 등의 지원을 받은 덕에 지금은 본업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요즘에야 간신히 숨을 돌리고 있지만, 지난해 관광 스타트업들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을 걸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관광레저 분야 소비지출액은 134조8985억원으로 전년보다 21.8%(37조6782억원)나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지난해 여행업 분야 소비지출액(471억원)이 83.5% 줄어들어 감소폭이 최대였다. 이어 카지노(-78.8%), 면세점(-73.5%), 항공사(-71.7%), 관광기념품판매업(-59.2%), 관광숙박업(-45.4%) 등 순으로 감소율이 높았다. 

“오프라인 의존하다가 매출 감소율 98%” 

이용규 대표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지난해 (전년 대비) 매출 감소율이 98% 정도였다. 사업이 아예 사라져버린 느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오프라인에 기반한 사업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정직원 수까지 줄여가며 버텼다”고 회고했다. 원준호 대표는 “외국인 관광객 유입은 둘째 치고 행사 개최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대면 콘텐츠인 ‘좀비런’ 하나만 들고 있던 우리 회사는 정말 죽다 살았다”고 고백했다. 김병주 트래블메이커스 대표(31)도 “2019년 4월 커스텀 여행 플랫폼 ‘트래블메이커’의 베타 서비스(미리보기 서비스)를 내놓은 뒤 2020년부터 정식 서비스를 운영하려던 차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면서 “처음엔 오래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었다. 관광공사의 사무실 지원과 서울센터 입주기업들의 자구 노력이 더해지자 새로운 길이 보였다. 이날 만난 관광 스타트업 대표들이 가장 많이 쓴 단어는 ‘피봇(Pivot·사업 전환)’이었다. 김현정 대표는 “오프라인 전시로 수익을 창출하다가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제로(0) 상태가 되니 무조건 바꿔야 했다”며 “마침 코로나 상황을 지나며 일상 속 소중한 여행, 건축·공간의 중요성 등이 주목받아, 관련 정보를 온라인으로 제공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그 결과물이 지난해 말 출시한 ‘아키로드’ 앱이다. ‘아키로드’는 드는 영상, 사진, 글 등을 통해 고객들에게 건축문화 여행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김 대표는 “언택트로의 피봇을 앞당기고 가이드 투어 업체, 가상현실(VR) 전문가 등과 언제든 협업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코로나19가 의외의 수확을 안겨준 셈”이라고 덧붙였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원준호 커무브 대표·김현정 하스스튜디오 대표·김병주 트래블메이커스 대표·이용규 한국자전거나라 대표 ⓒ시사저널 이종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원준호 커무브 대표·김현정 하스스튜디오 대표·김병주 트래블메이커스 대표·이용규 한국자전거나라 대표 ⓒ시사저널 이종현

언택트·B2G로 사업 방향 전환 성공 

트래블메이커스는 코로나19 종식을 기다리며 하나둘씩 고안한 사업 아이템으로 ‘대박’을 냈다. 아웃바운드 위주였던 트래블메이커스의 사업모델은 코로나19 이후 ‘코로나 프리 맵(해외여행 가능 국가 알리미)’ ‘호텔에삶(호텔 장기 투숙 플랫폼)’ 등으로 확장됐다. ‘호텔에삶’은 코로나 이후 호텔 장기 숙박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늘어난 점을 간파해 내놓은 서비스다. 지난해 12월 출시 후 벌써 1만여 개 넘는 객실을 판매했다. 높은 공실률에 눈물짓던 호텔들 입장에서도 대환영이었다. 현재 제휴를 맺은 호텔이 30여 곳이고, 조만간 60여 곳으로 늘어날 예정이라고 트래블메이커스 측은 밝혔다. 

내·외국인들에게 직접 국내여행 상품을 판매하던 한국자전거나라는 공공사업(B2G)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미술주간’의 ‘떠나자, 미술 여행’ 프로그램을 맡아 정부와 소비자 모두에게서 호평받았다. 상품 기획과 가이드 역량 등 한국자전거나라의 장점을 십분 발휘했다. 

희망을 맛본 관광 스타트업들은 이제 조심스레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바라본다. 위기 극복 노하우와 사업 아이디어가 탄탄하게 축적돼 있다. 다만 이들은 여행·관광 회복을 기다리기에 앞서 내실을 다지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현정 대표는 “관광 스타트업들이 코로나19를 뚫고 우리 문화콘텐츠를 알려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여도 촬영 허가 문제, 관계자들의 이해도 부족 등에 부딪힐 때가 많다”며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에 대해 시큰둥하거나 폐쇄적으로 대하지 말고 ‘숨겨진 관광수익을 끌어낼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적극 지원해야 코로나 이후 관광산업 전망이 더욱 밝아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용규 대표는 “향후 여행업은 IT 중심의 플랫폼 사업과 이를 채울 콘텐츠 등 양대 분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는 “한국은 아직 관광 대국에 비해 콘텐츠 제작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관광 콘텐츠에 관한 연구·개발(R&D) 예산도 태부족”이라며 “관광 소프트웨어 지원을 늘려 포스트 코로나를 뛰어넘는 중장기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존 업계 역시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요구를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김병주 대표는 강조했다. 김 대표는 “코로나19 종식 후엔 누적된 여행 욕구, 전염병에 대한 여전한 불안감 등으로 여행업이 ‘롱 스테이’ 형태로 전환할 여지가 많다”면서 “수요자가 급증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움직이지 말고 미리 준비해 놓으면 분명히 큰 메리트를 얻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멀리에서 커 보이는 것도 가까이에서 보면 결코 그렇게 크지 않다.“ 미국 가수 밥 딜런이 했다는 말이 복도 벽에 새겨져 있었다. 관광 스타트업 구성원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했다. 

 

■ 코로나19 백신에 ‘날갯짓’하는 여행업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진행되면서 여행 수요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여행업계는 백신 접종 완료자를 대상으로 한 여행상품을 속속 내놨다. 하나투어가 최근 선보인 ‘지금 떠나는 해외여행’은 국내에서 백신 권장 횟수 접종을 마치고 항체 형성에 필요한 2주가 지난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 여행지는 하와이, 스위스, 몰디브, 두바이 등이다. 

참좋은여행도 지난 4월30일부터 백신 접종 완료자를 위한 괌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 상품의 첫 출발일은 7월21일이며, 9월18일까지 모두 9차례 출국이 예정돼 있다. 

인천국제공항은 외국인 여행객이 비행기에서 내린 후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지 않고 터미널 내 주요 시설을 체험할 수 있는 ‘무입국 인바운드 상품’ 도입을 추진 중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상대적으로 덜하면서 비행거리가 3시간 이내인 대만이나 싱가포르 여행객이 주요 대상이다.  

이 밖에 미국이나 유럽 백신 접종 국가의 여행객을 대상으로 완전 입국을 허가한 후 지정된 안전 코스를 관광할 수 있게 하는 ‘완전 입국 인바운드’ 상품 개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4월29일 ‘서울관광플라자’ 개관식에 참여해 “코로나 종식이 전 세계적으로 몇 개월 시차는 있겠지만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가능하리라 예상한다. 그러면 관광 분야는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장(戰場)이 될 것”이라며 관광산업 회복에 대비한 역량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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