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거래소 파워 세졌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06.07 07:30
  • 호수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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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자 잇단 가상화폐 거래소行에 “격세지감”

“격세지감을 느낀다. 가상자산 거래소의 위상이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 금감원 고위 간부 A씨가 최근 가상자산 거래소로 옮기기 위해 사표를 낸 것을 두고 금융 당국 관계자가 한 말이다. 정부는 그동안 가상자산 열풍에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4월말 국회에 출석해 “가상자산은 내재 가치가 없는 인정할 수 없는 화폐다. 사람들이 많이 투자해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럼에도 고위 공직자들의 ‘가상자산 거래소행’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가상자산 거래소 취업을 위해 사표를 낸 금감원의 A 전 부국장이 대표적이다. A 전 부국장은 유가증권 발행과 관련 기관을 감독하던 증권감독원 출신이다. 자본시장의 메커니즘뿐 아니라, 불공정 거래 조사에도 해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금융 당국의 규제가 본격화될 때 일종의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러스트 김세중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뒷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직자 윤리가 바닥을 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최근 법무부 장관정책보좌관실 소속의 현직 검사였던 B씨가 업비트로 이직하기 위해 사표를 제출했다가 취업 승인 심사 직전에 취소한 전례가 있어 시선이 더 곱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법무부는 그동안 가상자산 열풍이 불 때마다 ‘투기 행위에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면서 “장관을 보좌하는 검사가 곧바로 거래소로 옮기려 한 것에 대해 뒷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A 전 부국장을 잘 알고 있는 금감원 관계자들의 시각은 달랐다. 기자가 만난 금감원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A 전 부국장은 평소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후배들과 토론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핀테크 현장자문단에 있을 당시 내부 게시판에 의견을 적극 피력했을 정도로 핀테크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 가상화폐도 그중 하나다”면서 “가상화폐 거래소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적임자를 데려간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거래액만 22조원대…주식 앞질러

오히려 금감원 주변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의 위상이 그만큼 올라간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그동안 금감원 1급 공무원은 퇴직 후 시중은행 또는 대형 증권사 감사로 가는 게 관례였다. 2급 정도면 중견 건설사나 대형 자산운용사 감사나 대표로 가는 것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A 전 국장이 업비트로 갔다는 것 자체가 가상자산 시장의 파워가 올라갔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는 현재 600만 명, 거래소는 알려진 것만 60여 개에 이른다. 이곳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돈만 22조원대로, 유가증권 시장 하루 평균 거래대금(약 16조원)을 웃돌고 있다. 특히 A 전 부국장과 B 전 검사가 옮기려고 하는 업비트는 거래량 기준 국내 1위, 세계 4위의 가상자산 거래소다. 급여도 어지간한 중견 증권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삼성과 LG 등 대기업은 물론이고, 벤처기업 인사들의 가상자산 거래소행이 최근 몇 년간 계속되고 있다. 빗썸의 대표였던 전수용 전 NHN엔터테인먼트 부회장과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의 대표 이석우 전 카카오 공동대표가 대표적이다. 빗썸의 지주사 격이었던 빗썸홀딩스의 이상준 대표 역시 금감원 팀장으로 재직했던 인물이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A 전 부국장의 사례가 처음은 아니라는 얘기다. 때문에 정·관·재계 인사들의 가상자산 거래소 시장으로의 이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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