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절규가 안 들리나
  • 구민주·김종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1 13:00
  • 호수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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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갈등·무관심 속 방심위 5개월째 심의 공백
피해 신고 1만5086건…방심위 담당자 “피해자들에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 한숨

모두가 잠든 깊은 새벽, 한 통의 전화가 울린다. “제가 찍힌 영상이 A사이트에 올라온 것 같아요.” 조심스럽지만 다급한 목소리다. 꼬박 밤을 새운 듯하다. 며칠 후 같은 피해자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왜 제 영상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건가요?” 그 사이 해당 영상은 B사이트로도 퍼진 상태다. 수화기 너머로, 생사의 기로에 선 한 사람의 절박함이 전해진다. 목 끝까지 여러 말이 차오르지만, 해줄 수 있는 얘긴 이것뿐이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지금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디지털성범죄심의지원단(이하 방심위 디성단)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모습이다(시사저널은 개별 사례 소개가 피해자를 특정하거나 이들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취재·서술하지 않았다). 디성단은 시간이 곧 생명인 디지털 성범죄에 곧장 대응하기 위해 2019년 출범한 전담조직이다. 피해접수팀·긴급대응팀·확산방지팀·청소년보호팀 등 4개 부서로 나뉘어 24시간 신속한 심의를 진행한다. ‘신속함’은 디성단 설립의 이유이자 목적이다.

그런데 지금 디성단에선 이 신속함이 멈춰버렸다. 디지털 성범죄 정보를 심의하고 처리해야 할 5기 새 방심위원들이 5개월째 임명되지 않은 채 올스톱되고 있어서다. 디성단으로부터 받은 통계에 따르면, 4기 활동이 종료된 지난 1월30일 이후부터 6월14일까지 총 1만5086건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접수됐다. 하루 약 110건의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지난 4월 시사저널이 확인했을 당시 디지털 성범죄 피해 접수는 총 3551건이었다. 불과 두 달 사이 1만2000건이 추가된 것이다.

6월14일 현재 1만5086건 중 디성단 차원에서 해당 사이트 등에 요청 공문을 보내 즉각 삭제 처리한 경우는 5180건. 나머지 9906건은 현재 기약 없이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심의 대기 중인 피해 또한 지난 4월(1888건) 이후 8000여 건이 더 쌓였다.

김영선 디성단장은 “피해자가 계속 여기저기 퍼지는 본인 자료를 찾아 여러 번 신고 전화를 하기도 한다. 신고 시간을 보면 새벽 시간인 경우도 많다. 일상생활을 하려면 자야 하는 시간인데, 자신의 모든 시간을 그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피해자와 가장 먼저 접촉하는 피해접수팀 이희영 팀장은 “24시간 3교대 체제로 운영하는 것도 신속하게 피해 확산을 막으려고 마련한 시스템인데, 그걸 원하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아직 위원회 구성이 안 돼 심의를 못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고 밝혔다.

여야 과방위원 “개별 의견 없다, 당론 따를 것”

심의 공백의 원인은 국회에 있다. 방심위원은 3년마다 대통령, 국회의장,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각각 3명씩 총 9명을 추천해 위촉한다. 지난 1월 4기 방심위원들의 활동이 종료된 직후, 대통령 추천 몫인 방심위원장 자리에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내정됐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문제는 시작됐다. 야당이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하며 추천 명단 제출을 거부한 것이다. 야당은 청와대와 여당이 확정된 추천 명단을 먼저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여당은 야당이 방심위 출범을 고의로 지연시키고 있다며 맞서고 있다.

과방위 여당 간사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이 정연주 전 사장을 공식적으로 지명한 적도 없는데 야당이 이를 트집 잡아 논의 자체를 거부해 버렸다. 설령 대통령이 정 전 사장을 임명한다 하더라도, 그건 엄연히 대통령의 임명 권한인데, 야당이 발목잡을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의 지난한 정쟁에 속 타는 건 피해자와 접점에 있는 방심위다. 민경중 방심위 사무총장은 지난 3월 기자간담회를 열어 방심위 출범 지연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알리고 과방위 여야 간사에게 위원 임명을 촉구하는 편지까지 보냈다. 그러나 방심위엔 수개월째 어떠한 소식도 전달되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은 국회의 논의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6월7일 여야 과방위원 20명 의원실을 방문해 현 상황에 대한 설문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답변을 회신한 위원은 4명에 불과했다. 미제출 이유는 ‘당론’, 즉 당의 입장을 따르겠다는 것이었다. “무조건 이건 야당 탓이다(여당 의원실 관계자).”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하지만 방심위 중립성도 중요하다(야당 의원실 관계자).” “간사 인터뷰 진행하는 대신 우리 개별 입장은 빼달라.” 설문지 대신 얻은 의원들의 답변 내용이다. 방심위 출범 지연의 심각한 피해에 대한 국회의 인식과 태도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심의의 부재는 각종 불법 사이트 사업자들에겐 분명한 호재다. 국제 공조를 담당하는 이용배 확산방지팀장의 말이다. “일반적인 국내 사이트들은 대부분 우리가 요청하면 바로 삭제·차단한다. 그런데 디지털 성범죄는 보통 국내보다 해외 불법 사이트 위주이기 때문에 대응이 쉽지 않다. 불법인 걸 알면서도 버젓이 운영하는 곳들이니, 우리가 차단을 요청하면 오히려 우리 IP를 차단해 버린다. 보통 이들은 심의를 통해 기존 주소가 차단되면 주소만 살짝 바꿔가며 다시 운영하는 수법을 행한다. 예를 들어 AAA1 사이트가 막히면 AAA2, AAA3으로 다시 개설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역대 최장기간 이 사이트 주소들이 바뀌지 않고 있다. 심의가 이뤄지지 않으니 지장 없이 운영되는 것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단체 ‘리셋’에 따르면, ‘지인 능욕’을 자행하는 계정이나 수년째 성착취물을 판매·유포하고 있는 계정이 발견됐음에도, 심의 지연으로 인해 이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현재로선 법적 강제 권한이 있는 심의를 통해 해당 계정·사이트를 압박하는 수밖에 방도가 없다.

 

“심의 없으니 불법 사이트 최장기간 유지 중”

“디지털 성범죄에는 골든타임이란 없다. 그냥 무조건 1초라도 빠르면 좋다.”(이희영 피해접수팀장) 이처럼 한시가 급한 사안이라면, 심의 없이 우선 바로 처리하면 안 되는 걸까. 디성단 직원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자 지적이다. 고현철 청소년보호팀장은 “일반 시민 눈높이에선 답답한 얘기일 수 있지만, 통신은 의사 표현의 수단이기 때문에 최소 규제 원칙을 따르게 돼 있다. 따라서 특정 정보를 불법으로 명시하고 규제하는 게 헌법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므로, 법적 권한을 가진 위원들의 심의가 있기 전까진 판단이 어렵다”고 전했다.

그는 디성단으로 두 유형의 전화가 걸려 온다고도 말한다. 불법 정보나 자료를 지워달라는 요청, 그리고 그걸 왜 지우느냐는 항의다. 고 팀장은 “‘성인인 내가 보겠다는데 왜 영상을 지우느냐’는 연락도 많이 들어온다. 양극단으로부터 전화를 받는 셈”이라고 말한다.

판단의 영역은 신중해야 하지만, 피해자의 신고를 듣고 밤새 불법 영상을 모니터링하는 디성단 직원들로선 매일 동요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해외 사이트 한 곳에라도 더 “이 영상물은 상업용이 아니라 피해자가 있는 것이다. 피해자가 고통받고 있으니 삭제와 차단이 필요하다”는 영문의 요청 공문을 작성해 보낸다. 최대한 심의 대기 비율을 낮추고 자체 처리 비율을 높여 나가려는 시도다. “5기 방심위가 뒤늦게 출범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발생하고 있는 피해는 그때 돌이킬 방법이 없다. 이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급해진다.”(최승호 긴급대응팀장)

6월4일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디지털성범죄심의지원단 단장(맨 왼쪽)과 4개 부서 팀장들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6월4일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디지털성범죄심의지원단 단장(맨 왼쪽)과 4개 부서 팀장들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3년 전 4기 구성 때의 7개월 공백 되풀이

결국 하루라도 빨리 심의를 재개하는 방법 말고는 딱히 피해를 막을 수단이 없다는 얘기다. 국회에서 심의 공백 사태에 관한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8년 방심위 3기에서 4기로 넘어갈 때도 7개월이 넘는 공백이 발생한 바 있다. 그때도 여야의 추천 권한 배분과 관련한 알력 다툼 탓이었다. 이후 방심위 위원들의 임기를 서로 다르게 하거나, 새 기수가 출범하기 전까지 직전 기수의 임기를 연장하는 식의 아이디어가 제안돼 왔다. 그러나 매번 아이디어로만 그쳤을 뿐 논의가 공식화된 적은 없었다.

고현철 청소년보호팀장은 “피해자들이 매일 이렇게 삶을 잃어가는데,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며 미루고 있는 것이 답답한 노릇”이라고 강조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역시 “2018년 4기에 위원 구성이 안 됐을 때도 심의 건수가 수만 건 쌓였었다. 그때 기억 때문에 이번에도 걱정은 하고 있었다. 위원 임명이 미뤄지는 것이 디지털 성폭력과 관련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정치권이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나마 최근 일부 언론과 국회의원들에 의해 방심위 공백과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조금씩 언급되면서, 국회는 미약하게나마 움직임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과방위 간사는 새 위원 임명까지 직전 기수 임기를 연장하는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기수엔 적용되지 않더라도, 이후 반복적인 방심위 공백 사태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n번방 사태를 겪으며 이른바 ‘n번방 방지법’으로 불리는 여러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일례로, 디지털 성범죄 촬영물의 경우 먼저 임시차단을 하고 이후 심의 등을 진행하도록 하는 개정안(조승래 의원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시행될 경우, 심의가 바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임시차단으로 확산을 방지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는 피해자가 존재하는 불법 성착취물에 대한 수요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승희 대표는 “(불법 촬영물) 이용자나 운영자들이 실제 강하게 처벌받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증명될 때, 비로소 이런 사이트를 운영해 얻는 이득보다 리스크가 훨씬 더 크다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야 궁극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줄어든다. 지금은 어차피 안 잡힌다, 안 무섭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방심위로부터 심의 대기 중인 디지털 성범죄 신고가 총 9906건이라는 통계를 받은 건 지난 6월15일 오전 10시경이었다. 이내 건수가 1만 건을 넘었다는 소식이 전달됐다. 6월15일 오후 5시 기준 1만139건.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는 생겨나고 있으며, 불법 정보는 불특정한 곳들로 무섭게 퍼지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일상이 무너진 채 모니터 앞을 지키며 밤을 보내는 이들의 전화는 오늘도 디성단 사무실을 채운다. 9906건, 1만 건, 1만139건, 심의 공백 136일(6월15일 기준). 이건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의 절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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