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의 이름으로 짓밟힌 홍콩의 민주화
  • 조해수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3 09:00
  • 호수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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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법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상황 더 악화

“국가 안보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National Security)”.

국제앰네스티는 중국 정부가 제정한 ‘홍콩 국가보안법(보안법)’으로 인해 홍콩의 자유가 훼손되고 인권보호가 심각하게 결여됐다는 조사 보고서를 위와 같은 이름으로 6월30일 발표했다. 6월30일은 보안법이 시행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국가 안보의 이름으로 지난 1년간 홍콩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보안법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외국 세력과의 공모 행위’ ‘국가 분리독립’ ‘전복’ ‘테러리즘’을 대상으로 한다. 문제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법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국제앰네스티는 “‘국가 안보’를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명확성과 법적 예측성이 부족하다”면서 “표현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 및 결사의 자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반대 입장을 탄압하기 위한 자의적 적용이 가능하다”고 비판했다.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 32주년을 맞은 6월4일 홍콩대학에 있는 ‘수치의 기둥(Pillar of Shame)’ 앞에서 학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AP연합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 32주년을 맞은 6월4일 홍콩대학에 있는 ‘수치의 기둥(Pillar of Shame)’ 앞에서 학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AP연합

‘코에 걸면 코걸이’식 보안법

지난해 7월1일부터 올해 6월23일까지 홍콩 경찰은 보안법에 따라 최소 114명을 체포하거나 체포 명령을 내렸다. 보안법으로 체포된 사람에게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의 핵심인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기소된 사람의 70%가 보석을 거부당해 구금돼 있다.

외교관과 연락하거나 다른 나라에 제재 조치를 촉구하고 박해를 피해 타국으로 피신하는 사람들은 ‘외국 세력’과 ‘결탁’하거나 ‘공모’한 죄로 처벌받았다. 지금까지 12명이 이와 같은 이유로 체포됐다. 지난 6월28일에는, 빈과일보 논설위원 펑와이쿵이 영국으로 출국하려다 공항에서 긴급 체포되기도 했다.

이 밖에 SNS에 글을 올리거나 해외 매체와 인터뷰를 한 것만으로도 경찰의 표적이 됐다. 홍콩 입법회 의원·공직자가 되기 위해서는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이라는 정책에 따라 충성 서약서를 써야 한다. 이를 거부한 공무원 129명은 해고됐다. 

자택 수색, 자산 동결·몰수, 언론자료 압수 등 막강한 권한이 홍콩 국가안보처에 부여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압수·수색·체포 등의 영장을 발부할 때 경찰→검찰→법원의 단계를 거치면서 서로 다른 세 개의 기관이 공권력의 인권 침해를 견제·감시한다. 그러나 홍콩의 경우 국가안보처의 권력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

야미니 미슈라 국제앰네스티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보안법으로 인해 홍콩은 빠르게 ‘경찰국가’가 돼가고 있다”면서 “홍콩은 중국 본토와 매우 유사한 ‘인권 불모지’가 될 위협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홍콩은 2047년까지 약속받은 ‘일국양제(홍콩 자치권 보장)’를 지키기 위해 격렬하게 저항해 왔다.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한 2014년 ‘우산혁명’과 송환법(중국으로의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한 2019년 시위가 대표적이다.

시사저널은 시위가 절정에 이르렀던 지난 2019년 11월18~21일까지 홍콩 현지를 취재했다. 당시 홍콩은 내전 상황에 비견될 만큼 극한 상황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마스크를 쓴 시위대는 화염병과 보도블록을 던지며 저항했고, 경찰은 최루탄과 고무탄을 앞세워 폭력 진압을 서슴지 않았다. 홍콩 도심 곳곳은 화염에 휩싸여 방독마스크 없이는 1분도 견딜 수 없었으며, 거리는 부상자들의 피로 덧칠해졌다(2019년 11월25일자 '[홍콩의 눈물] 우리가 알던 홍콩은 이제 없다' 기사 참조). 2019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시위에는 2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 11월18일 밤 홍콩 야우만테 시위 현장 모습 ⓒ 시사저널
2019년 11월18일 밤 홍콩 야우만테 시위 현장 모습 ⓒ 시사저널

가속화하는 ‘중국화’, 사라져가는 ‘민주화’

그러나 중국의 벽은 너무나 높고 견고했다. 우산혁명에 이어 2019년 시위도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오히려 시위 대응책으로 2020년 6월 보안법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국보법 이후의 홍콩 민주화 세력은 급속히 몰락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시민사회 자체가 마비되다시피 위축됐다.

익명을 요구한 교민은 홍콩의 현재 상황에 대해 “보안법 이후 야당·민주 세력의 저항은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코로나 사태로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크게 제한됐다. 홍콩에서는 지역감염 사례 한두 건만 나와도 감염자가 사는 건물이나 구역을 통째로 막고 강제검사, 강제격리를 한다. 정부 당국이 민주화 세력을 억제하는 방편으로 코로나 시국을 잘 이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 시위에 참여했던 한 대학생은 “시위를 주도했던 민주진영의 리더들이 보안법으로 잡혀가거나 국외로 탈출해 구심점이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오프라인 시위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온라인을 통해 저항운동을 펼치고 있다. 친중국 기업들의 SNS를 공격하거나 불매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홍콩 언론인은 “홍콩 민주진영은 동력을 상실했다. 2014년, 2019년 대규모 시위를 벌였지만 결국 중국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해봤자 안 된다’는 패배주의가 생겨났다”면서 “중국 본토에서 넘어온 사람들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또한 서민들의 주요 생계 수단인 관광산업의 경우, 관광객의 80% 이상이 중국 본토인이다. 여기에 중·고등학생들의 교과서도 최근 바뀌어 ‘홍콩인=중국인’식 교육이 본격화되고 있다. 가속화하고 있는 ‘중국화’를 막을 방법도 없지만, 중국에 저항하려는 정신 자체도 사라져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7월1일은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날이자, 홍콩의 중국 반환 24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중국 본토가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할 때 홍콩에서는 경찰 1만여 명이 거리에 배치됐다. 혹시 모를 반중 시위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홍콩 시민사회의 모습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극적으로 변했다. 지난 2019년 시위 현장에서 만난 홍콩인들은 기자에게 “한국, 홍콩을 지지해 달라(Korea, stand by Hongkong)”며 두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나 그때의 홍콩은 이미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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