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MZ세대는 #쿠팡탈퇴 해시태그를 걸었나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5 08:00
  • 호수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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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불매운동 사태로 본 MZ세대의 ‘미닝아웃’

‘탈팡’. 이것은 쿠친(쿠팡친구·옛 쿠팡맨)들이 쓰던 말이었다. ‘쿠팡에서 탈출한다’는 뜻의 이 단어는 더 이상 쿠친들만의 은어가 아니다. 소비자들이 쿠팡을 탈퇴하기 시작했다. 쿠팡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물류센터 화재 이후 민낯처럼 드러난 노동자 처우 문제와 안일한 대처 방식은 고객들의 신뢰까지 태워버렸다. 사고가 난 지 5시간 뒤에 나온 김범석 쿠팡 창업자의 의장·등기 이사 사임 발표는 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시점의 우연’은 대중에게 통하지 않았다. 쿠팡은 보상과 생계 보장을 언급했지만, 대중의 뇌리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남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시태그를 걸었다. #쿠팡탈퇴. 쿠팡이 내걸었던 ‘쿠팡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라는 슬로건은 ‘쿠팡 없이 살 수 있다’는 탈퇴 인증글로 뒤집혔다.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며 공격적으로 성장했던 쿠팡이었고, ‘로켓배송’이라는 무기를 쥐고 소비자를 공략했던 ‘속도의 쿠팡’이었다. 이제 ‘쿠팡의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쿠팡 없이는 불편하다고, 대체는 불가하다고 말했던 소비자들이 쿠팡을 내려놓았다. 속도와 편리라는 이점보다 ‘가치’를 우선순위에 둔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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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pik·시사저널

#불매운동이 MZ세대에서 확산된 배경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소비의 행태가 달라진다. 이 현상을 ‘미닝아웃’이라 부른다.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커밍아웃(Coming Out)을 더한 이 단어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때 자체의 품질과 기능, 가격만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그 제품을 만든 기업이나 오너의 자세, 윤리, 환경까지 고려한다. 지난해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 중 62%가 ‘법을 위반하거나 사회적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영향을 고려해 소비해야 한다’고 답했다.

소비자들은 신념과 가치에 맞는 기업의 서비스는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추구하는 가치와 맞지 않는 기업에는 지갑을 닫는다. 그래서 미닝아웃은 ‘구매’와 ‘불매’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이제 소비행위 자체에 자신의 신념과 뜻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객들에게 ‘제품과 서비스로 승부하면 된다’는 옛말은 통하지 않는다. 특히 MZ세대는 윤리나 환경, 사회적 책임, 공정성 등의 이슈를 과거 세대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특성이 있다. 글로벌 커머스 마케팅 기업 크리테오의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52%는 친환경 등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맞는 미닝아웃 소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있다. 소셜미디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퍼뜨릴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다. 그렇게 MZ세대는 물리적 연대를 구성하지는 않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신념과 관련한 연대를 맺는다. 천혜정 이화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치적 소비주의, 소비자 불매행동 그리고 소셜미디어’ 논문을 통해 “소셜미디어가 문제 기업의 행위에 목소리를 내고 불매운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유인책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는 다른 사회운동처럼 오프라인에서 특정 조직이나 단체가 (불매운동을) 주도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개인화된 미디어와 온라인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자별적 참여를 선호하면서 스스로의 참여 동기를 찾는다”고 분석한 바 있다.

특히 최근의 ‘미닝아웃’은 인권과 노동, 차별 문제와 소비를 연결하는 특성을 보인다. 제품이나 서비스로 인한 소비자 피해만큼 기업의 비윤리성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과거 대리점 갑질 논란이 일었던 남양유업은 불매운동의 여파를 오래도록 맞았고, 대웅제약은 직원들에 대한 회장의 상습적인 폭언으로 대중들에게 외면받았다. 올해 3월에는 동아제약 채용 과정에서 성차별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동아제약 불매리스트’가 공유되기도 했다. 이번 쿠팡에 대한 소비자 반발은 화재 책임뿐 아니라 쿠친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불합리한 노동환경에 대한 부정적 인식, 자영업자에 대한 갑질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서 기인했다.

 

경제적 주체로서 즉각적 행동 나서

MZ세대의 행동은 즉각적이다. 성차별이나 폭언 문제에서 비롯된 불매운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대두시켰고, 매출 하락이나 오너가의 퇴진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변화한 기업도 있다. ‘쿠팡 사태’에서도 쿠팡의 변화를 요구하는 MZ세대의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온라인을 통한 쿠팡 탈퇴 인증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화재 사고 이틀 뒤인 6월19일, ‘쿠팡탈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올라온 글은 17만 건을 넘었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쿠팡 앱 사용자 수는 사고 이후 나흘간 47만 명이 감소했다. 특히 이탈이 가장 두드러진 연령대는 MZ세대였다. 20대 사용자의 24.5%가 줄어들면서 가장 큰 이탈률을 보였다.

이들의 목소리가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으로 기능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미닝아웃을 이유로 다수의 행동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기업 불매운동이 한창일 때, 유니클로 매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명 ‘유파라치’가 등장해 논란이 됐다. 불매운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며 비난을 던지는 행위가 오히려 미닝아웃 현상과 상충된다는 것이다. 기업의 책임을 요구하고 촉구하는 방식이 반드시 ‘불매’일 필요는 없다는 것. 미닝아웃 자체가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 보이는 현상이니만큼, 소비자가 소신에 따라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객의 삶을 ‘낫게’ 만든 기업이 ‘책임 있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MZ세대가 주목하고 있다.  

 

‘돈쭐’의 배경에도 ‘가치 소비’가 있다

소비자들의 행동은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행위를 ‘응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의미가 있는 행동을 한 기업이나 점포에는 응원을 보내고 지갑을 연다. “돈으로 혼쭐을 내준다.” 일명 ‘돈쭐’이다. 보이콧과 반대로 일부러 소비해 주는 이 행위는, 바이콧(Buycott)이라 불리기도 한다. 돈쭐을 주도하는 것도 MZ세대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MZ세대의 특성 중 하나로 ‘선한 오지랖’을 지목한 바 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착한 사연, 미담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착한 소비’를 장려하는 것도 ‘선한 오지랖’에서 출발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돈이 없어 치킨집 앞을 서성이던 어린 형제에게 무료로 치킨을 대접한 사연이 알려지며 ‘돈쭐’이 난 철인 7호 홍대점 사례가 대표적이다.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버텨오던 형제가 5000원어치의 치킨만이라도 사기 위해 거리를 배회할 때, 코로나19로 매출 타격을 입는 상황에서도 대가 없이 치킨을 대접한 치킨집 사장의 미담이 확산되면서 해당 지점의 주문은 불티가 났다. 강원도, 제주도 등 배달이 불가능한 지역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어려운 아동에게 치킨을 전달해 달라며 주문을 넣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 외에도 몇 년째 소외계층을 돕는 일에 남몰래 거액을 기부하는 가게, 결식 아동에게 무료로 파스타를 제공하는 가게 등이 돈쭐의 대상이 됐다. 결식 아동을 돕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는 업주들이 늘어나면서, ‘선한 영향력’이라는 자발적인 자영업자 공동체 모임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MZ세대가 소셜미디어에 ‘돈쭐 내줄 가게 목록’을 공유하는 것도 선행에 대한 대가를 받게 해줘야 한다는 신념에서 출발한다. 네티즌들은 돈쭐을 내줄 가게로 지목된 곳을 찾아 음식이나 상품을 구매한 뒤 인증 사진을 다시 올리면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한다. ‘돈쭐’ 역시 기업과 사업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MZ세대의 효율적인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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