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의 정치·경제학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1 10:00
  • 호수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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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럴당 10달러 오를 때마다 韓 100억 달러 부담 증가…美, 이란·베네수엘라 제재 풀지 주목

OPEC 플러스(+)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13개 회원국에 러시아를 비롯한 비(非)OPEC 10개 산유국을 포함한다. OPEC+회의가 결국 아무 결론 없이 종료됐다. 예정됐던 장관급 회의는 취소됐고, 추후 일정도 잡지 않았다고 한다. 증산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였다. 유가는 상승 압박을 받고 있다. 브렌트유 9월 인도분은 배럴당 77달러를 넘기며 3년 만에 최고 기록을 다시 썼다. 일부에서는 배럴당 10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만약 실현된다면 2014년 이후 처음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놀라운 변화다. 유가는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지난해 3월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4월20일 WTI(미국 서부텍사스유) 가격은 역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가 됐다. 사는 쪽에서 돈을 내는 게 아니라, 파는 쪽에서 오히려 돈을 얹어줘야 했다. 현재 8월 인도분 WTI는 배럴당 75달러를 넘어섰다. 연초와 비교해도 50% 이상 올랐다. 전문기관들은 가격 전망치를 계속 상향 조정하고 있다. 브렌트유 기준으로 모건스탠리는 내년 중반까지 배럴당 75달러에서 80달러 사이를 예상하고, 골드만삭스는 좀 더 앞당겨 올 3분기에 배럴당 80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봤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아예 내년 여름에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7월6일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에 설치된 스크린에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이 표시돼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국제유가, 3년 만에 최고기록 경신

유가 상승을 예상하는 배경은 물론 수요와 공급이다. 원자재는 다른 어떤 것보다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글로벌 석유시장의 수요를 하루 평균 9765만 배럴, 공급을 하루 평균 9682만 배럴로 예상했다. 매일 평균 83만 배럴의 공급이 부족할 거라는 얘기다. 이 정도면 그래도 다행이다. 더 심각한 공급 부족을 전망하는 곳이 많다. 골드만삭스는 하루 평균 500만 배럴 정도의 공급 부족을 예상한다. 경기 개선에 따른 수요의 회복이 가장 큰 이유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3월 중기 전망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석유 수요가 2022년 하루 1억 배럴까지 늘어나 2019년 수준을 회복하고 그 뒤에도 2026년까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요가 늘어나도 공급이 충분하면 가격이 오를 이유는 없다. 역설적이지만 세계 각국 정부의 친환경 정책도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과거 유가의 흐름을 보면 석유 탐사와 개발을 위한 투자는 시차를 두고 수급에 영향을 미쳤다. 1990년에서 2000년 사이에 유가는 배럴당 10~20달러로 낮은 수준이었다. 낮은 유가는 투자 감소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2000년대 초반 늘어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지 못하게 됐고, 점차 유가가 뛰면서 마침내 2008년 7월에는 역대 최고치인 140달러까지 올랐다.

이후 유가는 금융위기를 겪으며 잠시 급락했다가 다시 회복해 2014년 상반기에는 대체로 100달러 이상을 유지했다. 고유가는 새로운 투자를 유도했고,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이어졌다. 2015년부터 유가는 급락하게 된다. 지금은 화석연료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생산 감소로 이어져 유가를 더 끌어올리는 상황이다. 지난해 전 세계 석유 채굴 비용은 3290억 달러였다. 2014년의 절반 수준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알래스카 원유 시추를 중단시키는 등 친환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고, 이에 따라 정유사들의 투자는 위축됐다. 저유가로 셰일오일 업체들은 줄줄이 파산했고 환경규제까지 강화되면서 공급도 줄어들었다. 당분간 상황이 바뀌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의 정치적 선택은 국제유가의 향방에 대단히 중요한 변수다. 휘발유 가격은 미국 정부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휘발유 평균가격은 갤런당 3.13달러다. 연초 이후 40% 이상 급등했다. 지난 2014년 이후 최고치다. 유가가 너무 많이 오르는 건 아무래도 경제 회복에 부정적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에너지 가격 조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는 게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제재다. 현재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 받았던 미국의 제재로 석유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란이 핵협상에 복귀하고 미국이 제재를 풀면 이란의 석유 수출량은 2~3개월 안에 이전 수준으로 돌아올 수 있다. 베네수엘라도 마찬가지다. 베네수엘라에 좌파 정권이 들어선 후 트럼프 행정부는 제재를 가했다. 만약 바이든 정부가 제재를 푼다면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가 공급자로 동참하게 된다.

결국은 전통적인 산유국들의 합의와 그 이행 여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OPEC+ 회원국들은 작년 4월 줄어든 원유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산유량을 하루 970만 배럴 줄였다. 당시 세계 생산량의 10% 정도에 해당하는 물량이었다. 작년 12월부터는 조금씩 생산을 늘려 감산량은 현재 하루 580만 배럴이다. 일단 올 연말까지 매월 40만 배럴씩 생산을 늘리자는 데는 합의했다고 하는데, 아랍에미리트(UAE) 등 일부 회원국은 요즘처럼 가격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생산량을 대폭 늘리지 못한다는 게 불만이다.

 

OPEC+, 가격 유지 위해 산유량 조절

일부의 불만에도 산유량을 더 많이 늘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은 물론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유가가 마냥 오르기만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전통적인 산유국들이 바라는 것은 충분한 이익을 내면서도 미국의 셰일 업계가 다시 투자를 늘리지 않도록 하는 수준이다. 수요가 오히려 줄어들거나, 투자를 촉진할 수준의 높은 유가는 산유국으로서도 반갑지 않다. 생산비를 비교하면 러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는 배럴당 10달러 정도고 미국 셰일오일 업계는 45달러 수준이라고 한다.

국제유가가 일부의 예상대로 배럴당 100달러 이상 가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감산에 대한 OPEC+의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작년 3월에도 사우디와 러시아의 대립은 증산 경쟁으로 이어졌었다. 둘째, 미국의 정책기조가 바뀌지 않아야 한다.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는 물론이고 환경보호를 위한 강한 규제도 유지해야 한다. 휘발유 가격의 상승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셋째는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인한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가라앉아야 한다. 지난 5월 유가 상승세가 주춤했던 것도 코로나19 재확산 우려 때문이었다.

2000년 이후 유가는 최저 23달러에서 최고 140달러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유를 연간 10억 배럴 정도 수입한다.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르면 100억 달러의 부담이 늘어난다. 나쁜 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인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의 수출금액이 늘어나고 정유사의 실적은 개선된다. 산유국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 역시 너무 높은 유가도, 반대로 너무 낮은 유가도 반갑기만 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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