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이란 달콤한 거짓말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6 10:00
  • 호수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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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관련 현실화되지 않은 3가지 발언
“전문성 부족한 기모란, 靑 방어하는 폴리페서”

국민을 상대로 한 희망 고문인가.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지난해 말 코로나19와 관련해 긍정적 메시지를 쏟아냈다. “백신 2000만 명분을 들여오겠다” “2분기부터 백신 공급 가능하다”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 등이다. 현실은 달랐다. 백신 접종률이 선진국 수준을 밑도는 가운데 코로나19 4차 대유행과 맞닥뜨렸다. 청와대는 한술 더 떠 백신 구입에 관망적이었던 교수를 방역기획관 자리에 앉혔다. 정부가 자찬했던 ‘K방역’은 야권에서 제기하는 책임론으로 뒤덮인 모양새다. 헛된 희망은 언제부터 심어진 걸까. 지금과는 결이 다른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과거 모습을 되짚어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4월1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 점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① “백신으로 긴 터널 끝 보인다”...7개월 뒤 ‘4차 대유행’ 발생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9일 수도권 방역상황 긴급 점검 화상회의에서 “백신과 치료제로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말했다. “코로나의 긴 터널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 자리에서 ‘터널의 끝’은 세 번 등장했다. 이날 발언 전후로 대통령 지지율(한국갤럽)은 38.0%에서 40.0%로 반등했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올 1월11일 신년사에서도 “드디어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인다”며 코로나19 극복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터널의 끝’의 정확한 의미와 시기는 밝히지 않았다. 그것이 집단면역을 뜻한다면 7개월이 지난 지금도 터널의 끝은 까마득하다. 글로벌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 인 데이터’에 따르면, 7월13일 기준 캐나다의 백신 접종률은 69.6%를 기록했다. 정부의 집단면역 기준인 70%에 육박한다. 또 영국(67.7%), 이스라엘(66.2%), 이탈리아(59.6%), 미국(55.1%) 등 이른바 선진국들의 접종률은 50%를 넘었다. 반면 지난 2월26일부터 접종을 시작한 한국의 접종률은 30.6%를 기록했다. 일본(31.1%)에 비해 다소 뒤처지는 수준이다.

백신을 2회 맞은 사람의 비율인 완전 접종률의 경우, 한국은 11.8%다. 세계 평균인 12.4%보다 낮다. 이러한 가운데 7월6일에는 올해 처음으로 국내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을 넘었다. 수도권에 대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12일부터 4단계로 격상됐다. 코로나 4차 대유행이 본격화된 것이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도 치명적인 변수로 작용했다.

앞으로도 한동안 터널 속을 달려 나가야 할 전망이다. 시사저널은 7월14일 오전 10시30분 서울의 한 예방접종센터를 찾았다. 현재 전국에는 이와 같은 예방접종센터가 260여 곳 설치돼 있다. 의료진과 공무원, 자원봉사자 등이 배치돼 신속한 백신 접종을 이끌고 있다. 그런데 기자가 들렀을 때 접종자는 2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반면 센터를 지키는 근무자는 의료진을 포함해 50명 정도였다.

익명을 요구한 현장 의료진은 “하루 평균 200명 정도가 접종을 받으러 오는데, 의료진 1인당 60~70명을 접종하면 끝”이라고 했다. 이어 “지난주에는 하루에 총 70명밖에 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백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접종자들이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는데, 물량이 다 떨어져 예약이 안 되니 막상 현장은 한가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불편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접종 속도가 늦다”고 비판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백신 도입이 계획대로 잘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도입 자체가 애초에 늦은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델타 변이가 나오면서 ‘코로나 종식’은 현실화될 수 없는 개념이 돼버렸다”면서 “그래도 코로나를 통제하려면 거의 모든 국민이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전문가는 접종률 90%를 집단면역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렇게 되면 방역 당국 목표대로 11월 접종률 70%를 달성해도 안심하기 힘든 상황이 계속될 수 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작년 말 ‘터널의 끝’을 언급하면서 치료제 출시 가능성도 내비쳤다. 대통령은 “국내 기업들의 치료제 개발에 빠른 진전이 있다”며 “이르면 올 연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가시적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는 백신 이전에 치료제부터 먼저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했다.

국내 1호 코로나19 치료제는 셀트리온의 ‘렉키로나’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12월29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 허가 신청을 했다. 이후 38일 만인 지난 2월5일 조건부 허가 결정을 받았다. 통상 식약처 심사에 180일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빠른 결정이었다. 렉키로나는 2월17일부터 의료현장에 공급됐다. 백신 접종 시작일(2월26일)보다 조금 빨랐다.

단 렉키로나는 아직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투여할 수 있는 대상은 만 18세 이상의 고위험군 경증 또는 중증 환자로 정해져 있다. 렉키로나의 뒤를 이을 2호 치료제의 등장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대웅제약, 신풍제약, 일양약품 등이 도전장을 던졌으나 임상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다.

② “모더나 2000만 명분 2분기부터 도입”...6월까지 ‘5.5만 명분’ 도착

문 대통령은 백신 전화계약을 통해 기대감을 불러모으기도 했다. 청와대는 지난해 12월29일 “문 대통령이 스테파네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전화통화를 하고 코로나19 백신 2000만 명분을 공급받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원래 모더나로부터 확보하기로 돼 있던 1000만 명분에서 2배로 늘어난 것이다. 또 청와대는 “애초 내년 3분기로 추진했던 백신 공급 시기를 2분기부터 들여오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당초 (백신 공급) 계약이 연내에 있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어제 통화를 통해 계약 시점이 앞당겨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백신 확보전에 직접 뛰어들어 성과를 올렸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로써 정부는 기존에 확보한 다른 백신들을 포함해 단숨에 5600만 명이 맞을 수 있는 백신을 들여오게 됐다. 국내 총인구(5180만 명)보다 많아 100% 접종률을 달성하기에 충분한 분량이다. 이후 일각에선 “이르면 2021년 3~6월 중에 모더나 백신 접종이 가능할 것”이란 예상이 제기됐다.

그러나 해가 바뀌자 말도 바뀌었다. 올 4월20일 당시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모더나 백신이) 하반기에 대개 들어오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발표와 달리 대량 도입 시기가 6월 이후로 밀려난 것이다. 홍 직무대행은 “상당 부분 상반기에는 물량이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란 말도 덧붙였다. 이에 야권은 “백신 계약서를 보여 달라”며 압박했다.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결국 2021년 2분기부터 들어온다던 모더나 백신은 올 6월 5만5500명분이 도입되는 데 그쳤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2000만 명분의 약 0.2%에 불과하다. 7월에는 두 번에 걸쳐 총 37만5000명분이 들어왔다. 모두 합하면 43만500명분이다. 앞으로 매달 평균 100만 명분이 도착한다 해도, 올해 안에 약속한 분량의 절반도 달성하기 힘든 상황이다. 더군다나 도입량이 주간 단위로 정해지기 때문에 도입 완료 시기를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다.

불안한 백신 수급은 결국 사달을 냈다. 질병관리청은 7월12일 0시부터 55~59세를 대상으로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모더나 백신 접종 사전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15시간30분 만에 돌발 중단됐다. 확보된 물량에 한해 예약을 받기로 했는데, 185만 명이 몰리면서 백신이 동났기 때문이다. 질병청은 추가 예약을 시행한다면서도 “접종의 구체적 일정과 물량은 말하기 어렵다(이상원 질병청 위기대응분석관)”고 했다.

③ “백신 안 급하다”던 교수 임용한 靑...백신 확보에 팔 걷은 政

“한국의 환자 발생 수준을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코로나 백신 구입이) 그렇게 급하지 않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훨씬 가격도 비싸기 때문에 굳이 (백신 구매를 서두를) 필요가 없지 않을까.”

지난해 11월20일 당시 기모란 국립암센터 암관리학과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백신 공급에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또 “화이자의 마케팅에 넘어갈 이유가 없다”는 김어준씨의 주장에 “그렇다”며 동조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10일에도 같은 방송에 나와 “화이자와 모더나를 쓸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청와대는 올 4월16일 기 교수를 방역기획관으로 임명했다. 1급 비서관 자리다.

기 기획관의 의견은 결과적으로 현실에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들어 화이자 백신 총 3300만 명분을 도입하기로 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지난 6월 화이자와 모더나를 “3분기 주력 백신”으로 꼽았다. 청와대 비서관의 생각이 틀렸음을 정부 당국이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염호기 인제대 백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기 기획관이 입장을 바꿔 정책에 개입한 게 아니라, 그 입장을 따를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백신에 대해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을 방역기획관에 앉힌 것부터 문제”라며 “기 기획관은 그저 청와대와 정부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역할만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염 교수는 기 기획관에 대해 “청와대를 방어하는 폴리페서”라고 표현했다.

코로나 4차 대유행은 기 기획관의 과거 발언을 다시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7월12일 해당 발언을 거론하며 “이런 사람이 실무 책임자로 있는 이상 선택적 정치방역에만 치중하느라 과학적 방역 실패는 거듭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시에 기 기획관을 향해 “즉각 경질돼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김근식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은 CBS 라디오에 나와 “기 기획관의 그전 행적 같은 걸 보면 백신에 별로 관심이 없던 분”이라며 “이런 것들에 대해 정부 자체에서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시사저널 최준필

청와대는 ‘기모란 지키기’에 나섰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7월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기 기획관의 역할은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며 “그의 역할은 청와대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가교”라고 말했다. 이는 과거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난 주장이다. 청와대는 지난 4월 방역기획관직을 새로 만들 때 “방역정책 및 방역조치를 전담하기 위한 자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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