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콘텐츠 대전’이 시작됐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1 10:00
  • 호수 16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종 OTT들, 합종연횡·자체 제작 앞세워 대공세 개시
‘콘텐츠 괴물’ 디즈니·‘글로벌 프로젝트’ 애플TV플러스도 하반기 한국 상륙 예고

절대강자. 모두가 넷플릭스를 이렇게 부른다.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던 전망이 무색하게 넷플릭스는 ‘돌풍’이 돼 시장 판도를 뒤흔들었다. 한국에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가능성을 입증해 냈고, 생소했던 OTT를 ‘주류 플랫폼’ 자리까지 끌어올렸고, 고퀄리티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국내 구독자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결국 넷플릭스를 ‘왕좌’에 앉힌 것은 콘텐츠다. 올 하반기 한국 상륙을 예고한 디즈니플러스가 흥행할 것이라는 전망 역시 자체 보유한 마블, 픽사 등의 IP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경쟁력에서 나온다. 콘텐츠 확보가 곧 OTT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이제 ‘공식’이 됐다.

넷플릭스의 이용자 규모는 절대적으로 크고, 이용자 만족도 역시 가장 높다. 그렇기에 넷플릭스의 ‘위기’를 아직 논할 수는 없지만, 이전과는 분명 다르다. 닐슨코리안클릭의 모바일 OTT 월간 순방문자 수(MAU) 분석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MAU는 올 1월 역대 최고치인 899만 명을 달성한 이후 수개월째 감소세다. 올해 5월에는 791만 명까지 떨어졌다. 코로나19로 투자와 제작 환경이 위축되고, 제작사들의 촬영이 지연되면서 상반기 넷플릭스의 신규 콘텐츠가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예측된다.

실제로 7월15일 기준 넷플릭스의 ‘오늘 한국의 TOP 콘텐츠’ 1~5위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아닌, 한국 콘텐츠들이다. 《라켓소년단》 《슬기로운 의사 생활》 《알고 있지만》 《너는 나의 봄》 《결혼 작사 이혼 작곡》이 순위권에 포진돼 있다. 매력적인 콘텐츠 공급이 줄어들면 이용자들은 눈을 돌린다. 이득을 본 건 토종 OTT다. 지상파 3사와 SK텔레콤의 합작사인 웨이브의 MAU는 374만 명으로 올해 최고치를 찍었다. CJ ENM과 JTBC가 합작해 탄생시킨 티빙의 MAU는 334만 명. 독립법인 출범 이래 최고치다. 약진은 분명하다. 견고했던 넷플릭스의 왕좌에 조금씩 균열이 가는 상황에서, 그동안 넷플릭스 아성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토종 OTT가 ‘콘텐츠 승부수’를 띄우기 시작했다.

ⓒ
ⓒ일러스트 김세중

네이버 업은 티빙, 웹툰 IP로 경쟁력 확보

특히 최근 눈에 띄는 것은 티빙의 행보다. 일명 네이버와의 ‘공고한 동맹’. 네이버는 올 6월말 티빙에 4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결정했다. 앞서 네이버와 CJ ENM은 1500억원 규모의 지분 맞교환을 통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바 있다. 티빙과 네이버의 협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역시 콘텐츠다. 포털이자 국내 1위 웹툰·웹소설 플랫폼이기도 한 네이버의 저력 중 하나. 네이버가 보유하고 있는 방대한 IP다. 곧 이 동맹은 콘텐츠 기획·제작 역량을 가진 CJ ENM과 다양한 IP를 가진 네이버의 대대적인 시너지를 발휘하기 위함이다.

올해 OTT 오리지널 콘텐츠 중 기대작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다. 티빙의 3대 주주인 스튜디오드래곤이 드라마를 제작하기로 하면서 본격적으로 힘이 실렸다. 네이버 웹툰 《방과 후 전쟁활동》 역시 티빙의 오리지널 드라마로 편성을 예고했다. 본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편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됐던 작품이 티빙의 품에 안기게 되면서 콘텐츠를 통한 티빙의 성장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미 티빙과 네이버의 협업은 여러 방면에서 진행 중이다. 네이버는 올 3월부터 유료 서비스인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이용자의 혜택에 티빙 구독권을 추가했다.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티빙의 최신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여기에 3000~9000원의 별도 금액을 추가로 지불하면 오리지널 콘텐츠와 티빙에서 제공하는 영화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네이버 가입자를 티빙의 잠재적 고객으로 연결하는 전략은 주효했다. 멤버십 결합상품 출시는 이용자 확대로 이어졌다. 올 2월 289만 명에 불과했던 티빙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3월 327만 명까지 늘어났고, 5월에는 334만 명으로 늘어났다. 2023년까지 유료 가입자 500만 명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던 티빙은 목표치를 800만 명으로 상향 조정했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과 티빙은 단순 계정 제휴를 넘어 티빙 유료 가입자 확대를 위한 공동 마케팅 및 티빙 오리지널향 원천 IP 제공 & 투자 등 다방면으로 협업 기회를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
오리지널 콘텐츠는 OTT의 ‘힘’이다. 티빙이 7월16일 공개한 오리지널 드라마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와 넷플릭스가 7월23일 공개하는 오리지널 콘텐츠 《킹덤: 아신전》ⓒ티빙·넷플릭스 제공

웨이브, 자체 콘텐츠 제작에 본격적으로 나서

그렇다면 토종 OTT 1위를 달리고 있는 웨이브의 우군은 누굴까. 지상파다. 웨이브의 태생을 보자. SK텔레콤의 옥수수와 지상파의 푹(POOQ)을 통합해 탄생했다. 웨이브의 경쟁력은 지상파 3사가 축적해온 콘텐츠다. 매일 방송사로부터 100여 편의 콘텐츠가 추가된다. 푹의 이용자, 곧 지상파 시청자를 웨이브는 그대로 흡수했다. 그렇기에 웨이브의 가장 탄탄한 고객층은 지상파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있는 30~50대다. 최근에는 1020세대를 잡기 위해 아이돌 예능도 선보이고 있다.

방송사를 통해 검증된 콘텐츠를 보여주는 것이 웨이브의 장점이었다면, 이제 한발 더 나아갔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스튜디오를 출범시킨 것이다. ‘스튜디오웨이브’다. 웨이브는 5월 《미생》 《도깨비》 《비밀의 숲》 등 작품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았던 이찬호 전 스튜디오드래곤 CP를 영입해 콘텐츠 전략본부장으로 선임하고 스튜디오웨이브의 대표이사직을 맡겼다. 웨이브가 제작하는 콘텐츠를 텐트폴 라인업으로 구축하고, 검증된 IP를 스튜디오웨이브를 통해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임시완과 손현주 주연의 드라마 《트레이서》를 비롯해, 김성령 주연의 정치 시트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안희연·윤시윤 주연의 《유 레이즈 미 업》 등이 하반기 등판을 예고했다.

콘텐츠 확대를 위해서라면, 손을 잡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올 초에는 스튜디오S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SBS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병행하는 드라마 전문 스튜디오인 스튜디오S는 《스토브리그》 《펜트하우스》 등 다수의 인기 콘텐츠를 제작한 회사다. 7월12일에는 오리지널 영화 콘텐츠 확보를 위해 펀드 운용사인 C47인베스트먼트와 함께 400억원 규모의 사모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첫 투자 영화는 내년 개봉 예정인 《젠틀맨》. 웨이브는 자체 투자금 및 펀드를 통해 제작비 100% 투자를 결정했다. 내년 5월 극장 상영 후 웨이브를 통해 월정액 독점 영화로 서비스될 예정이다.

 

데이터 기반으로 움직이는 왓챠

글로벌 기업, 혹은 대기업 계열의 OTT가 시장을 흔드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팬덤을 확보하며 성장하는 OTT 스타트업이 있으니, 왓챠다. 일명 ‘이용자보다 이용자의 취향을 더 잘 아는 플랫폼’. 콘텐츠 추천·평가 서비스인 왓챠피디아에서 출발한 왓챠는 6억 개가 넘는 소비자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영화, 드라마, 예능, 애니메이션 등 9만 편의 작품이 왓챠의 시스템을 통해 이용자들에게 추천된다. 박태훈 왓챠 대표는 “왓챠의 전체 보유 콘텐츠 중 80%가 왓챠의 추천 시스템을 통해 소비될 정도로 높은 추천 정확도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왓차는 데이터와 추천 역량을 바탕으로 이용자들이 재밌게 볼 확률이 높은 콘텐츠를 수급한다. 데이터를 통해 많은 대중이 ‘지나간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알고 과거 콘텐츠도 다양하게 확보했다. 《왕좌의 게임》 《체르노빌》 등 킬러 콘텐츠가 굳건하지만, 왓챠에 더 중요한 것은 ‘콘텐츠가 이용자에게 킬러 콘텐츠로 작용하느냐’다. 올해 초 이용자들이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함께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왓챠 파티’를 론칭하는 등 이용자 경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시도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런 왓챠가 항상 내세우던 키워드는 ‘데이터’였다. 그러나 올해 창업 10년을 맞은 왓챠는 ‘독점 콘텐츠’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함께 내놨다. 이용자 선호도에 맞는 대작들을 발 빠르게 독점 배급하는 것을 넘어, 이제 독점 콘텐츠 제작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것. 올 시즌 대대적인 팀 리빌딩을 선언한 한화 이글스의 변화를 담아내는 《한화 이글스 다큐멘터리》를 시작으로 박정민·손석구·최희서·이제훈 네 배우가 집필한 시나리오를 연출하는 《언프레임드》 프로젝트를 통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 외의 플레이어들도 콘텐츠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분주하다. 쿠팡플레이는 신동엽이 출연하는 예능 콘텐츠 《SNL코리아》를 올여름 독점 출시하고, 김수현·차승원 주연의 드라마 《어느 날》을 11월 중 오리지널 시리즈로 선보일 계획이다. 다양한 스포츠 중계 서비스와 교육 콘텐츠로도 차별화를 꾀하는 중이다. 카카오도 영상 스트리밍 기술 업체를 인수하면서 OTT 플랫폼 준비에 나서고 있다. 향후 웹툰과 웹소설 IP를 활용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넷플릭스는 2021년 한 해 동안 한국 콘텐츠에 55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웨이브는 올 3월 ‘2023년까지 3000억원’이라는 투자계획을 ‘2025년까지 1조원’으로 확대했다. CJ ENM은 향후 5년간 콘텐츠에 5조원을 투자하는 한편, 2023년까지 100여 편의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콘텐츠로 무장한 채 한국 상륙을 예고한 디즈니플러스와, 글로벌 프로젝트 드라마를 쥐고 진입하려는 애플TV플러스까지. 한국의 OTT 전쟁은 이제 2라운드로 진입했다. ‘시장의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말은 정말일까. 토종 OTT와 글로벌 OTT가 벌일 각축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