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에서 철군하는 미국, 미소 짓는 중국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2 08:00
  • 호수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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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ETIM과 아편 문제 해결 위해
아프가니스탄 사태 적극 개입 노려

7월8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특별 연설이 열렸다. 아프가니스탄 내 미군의 철군 문제에 관한 브리핑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에 갔던 미군은 테러 조직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고 알 카에다의 능력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며 “우리는 두 목표를 모두 이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아프간의 미래를 어떻게 운영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프간 국민의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아프간에서 미군 임무는 8월말에 종료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은 미군이 아프간의 바그람 기지에서 철수한 직후였기에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바그람은 아프간 수도인 카불에서 북쪽으로 45km 떨어져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군은 아프간에서 탈레반 및 알 카에다와 싸우기 위해 바그람을 요새화했다. 그 뒤 바그람은 아프간 최대 군사기지로 자리했고 대형 활주로, 병원, 교도소 등까지 갖춰 최대 10만 명까지 주둔했다. 하지만 7월6일 미군은 아프간군에 통보도 없이 사라졌다. 수백 대의 장갑차, 수천 대의 차량, 각종 소형무기, 산더미 같은 생활물품 등을 그대로 놔두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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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연합·디자이너 양선영

미군 철수 후 中에 손 내미는 아프간과 탈레반

사실 미군의 철수는 예정된 스케줄이었다. 지난해 2월 미국은 탈레반과 카타르 도하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 따라 아프간에 파병됐던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군을 모두 철수시키기로 했다. 새로 집권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철군을 5월에 시작해 9월11일 이전에 끝내겠다”고 확인했다. 따라서 나토 동맹군은 이미 철수했고, 미군은 90%가 떠난 상태다. 이러는 사이 탈레반은 현상 유지라는 협정을 어기고 점령지를 확대했다. 특히 미군이 바그람에서 철수한 직후에는 10여 개 도시에 무혈입성하기도 했다.

기세가 오른 탈레반은 7월9일 “현재 아프간 영토의 85%를 우리가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전 탈레반은 “영토의 3분의 1을 통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이끄는 아프간 정부는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7월 들어 아프간 정부는 미국을 대신할 구원자를 적극 찾고 있었다. 7월5일 아프간 정부는 “러시아·중국·인도가 아프간에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에 맞서 탈레반도 중국에 추파를 던졌다. 7일 탈레반 대변인은 “중국은 아프간의 친구”라며 “재건사업에 대한 투자를 협의하자”고 제의했다.

이런 양측의 요청에 중국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미군이 철수한 이후 아프간을 영향력 아래 둘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길이는 76km로 다른 인접국과 비교하면 짧은 편이다. 그러나 아프간에는 중국에 위협이 되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과 아편이다. ETIM은 1970년대 말 신장위구르족자치구 카슈가르에서 결성된 위구르족 독립운동 단체다. 1990년대까지 중국의 국경 관리는 허술했다. 따라서 적지 않은 위구르족이 월경해 아프간으로 넘어갔다.

그로 인해 1990년대 중반부터 ETIM은 아프간을 발판 삼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1996년 탈레반이 아프간 내전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으면서 세력도 커졌다. 탈레반 정권이 ETIM을 도와 아프간 곳곳에 위구르족 훈련캠프를 세워 운영토록 했기 때문이다. 이런 지원 덕분에 ETIM은 중국과 여러 나라에서 수십 차례의 테러 행위를 저질렀다. 그런데 ETIM을 몰락시킨 건 뜻밖에도 미국이었다. 2001년 미국은 아프간을 공격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 와중에 전투에 참가했거나 캠프에서 훈련 중이던 위구르족이 체포됐다.

2002년 미군은 이들을 태평양 건너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 내 수용소로 압송해 갔다. 그 뒤 수년간의 조사를 거쳐 단순 체류자들은 석방해 유럽 여러 나라로 보냈다. 하지만 테러 활동에 연계됐다고 판결받은 22명은 12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2013년 풀려났다. 오랫동안 중국은 관타나모에 수용된 위구르족의 신병 인도 문제로 미국과 대립했다. “위구르족은 우리국민”이라며 중국으로의 송환을 주장했다. 미국은 이를 무시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위구르족도 유럽으로 보냈다. 게다가 지난해 11월에는 2001년부터 테러 단체로 지정했던 ETIM을 해제시켰다.

중국 공안 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ETIM은 아프간에서 큰 타격을 받은 뒤 조직원의 상당수가 중국과 중동으로 침투했다. 그에 따라 2009년 7월 우루무치 유혈 사건 이후 중국 곳곳에서 위구르족이 벌인 테러가 급증했다. ETIM은 테러 이후 자신들의 소행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중동에 간 조직원은 이슬람국가(IS)에 참여하기도 했다. IS 군인으로 전투를 벌이는 위구르족의 행적은 뉴스를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됐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 ETIM 조직원은 다시 아프간으로 되돌아왔다. 중국이 ETIM을 극심하게 타격한 데다, IS가 붕괴됐기 때문이다.

아편은 중국에 사회적 골칫거리다. 아프간은 중동과 달리 석유가 없다. 변변한 산업이 없고 건조한 기후로 양귀비 경작이 쉬워 1960년대부터 아편을 대량생산했다. 1990년대 말에는 동남아의 골든트라이앵글을 제치고 세계 최대 아편 생산국으로 등극했다. 금세기 들어 아편 생산량은 더욱 늘어났다. 그 원흉은 탈레반이었다. 본래 탈레반은 아편 재배를 죄악시했다. 하지만 미군에 정권이 붕괴된 뒤 농민들에게 아편을 재배시켜 군비를 충당했다. 현재 아프간에서 아편 생산량은 1만여 톤을 넘고 가치는 40억~50억 달러에 이른다.

아편은 인접국인 파키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을 거쳐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다. 중국이 아프간과의 국경을 철저히 통제해 단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편의 유입을 모두 막지는 못했다. 신장자치구는 8개국과 5600km나 인접해 있어 전체 국경선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신장으로 유입된 아편은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중국 마약 정세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말 중국의 마약 중독자는 214만 명에 달했다. 이 보고서는 “마약은 골든트라이앵글에서 가장 많이 유입되지만, 아프간에서의 유입세가 가파르게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위협 요소 방지 위해 영향력 아래 두려는 중국

이렇듯 자국을 위협하는 ETIM과 아편을 막기 위해 중국은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주변 국가들과 협력해 평화유지군을 보내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지난 4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내 여러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인용해 “아프간이 혼란에 빠지면 신장에도 위협이 되기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5월 중국은 중앙아시아 5개국 외교장관을 초청해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간 문제를 논의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주변국은 아프간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을 위해 합당하게 공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던 차에 최근 탈레반이 먼저 중국에 적극적인 협력 의사를 타진하면서 기류가 바뀌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안보에 위협이 되는 ETIM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탈레반과의 우호 증진이 필요하다. 이렇듯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간 상황은 중국에 여러모로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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