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통령 암살 부른 안갯속 피의 정치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7 14:00
  • 호수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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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퇴진 외쳤던 정적들이 배후로 거론…미국과 중국 개입설도 나돌아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에서 7월7일 발생한 현직 대통령 암살 사건은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너무도 많다. 이런 사건에는 실행자와 배후가 있는 것은 물론 동기나 목적도 분명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53세의 조브렐 모이즈 대통령은 이날 새벽 1시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이 사건은 암살 장소부터 묘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사저에서 숨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문은 대통령 부부와 사저에 함께 있던 경호원과 직원들, 그리고 모이즈의 자녀는 무사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공영라디오인 NPR은 “대통령 보안요원 중 누구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는 점이 미심쩍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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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8일(현지시간) 모이즈 대통령 암살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무장 괴한들이 탄 경찰차가 지나가자 아이티 경찰들이 길을 터주고 있다.ⓒAFP 연합

“자신의 보안요원에 암살당했다” 주장도

아이티 검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수석 검사인 벳포르 클로드는 모이즈 대통령의 경호실장인 장 라겔 시빌과 대통령 사저 보안 책임자인 디미트리 에라르를 심문하겠다고 밝혔다. 알자지라방송은 콜롬비아 매체를 인용해 에라르가 암살 몇 주 전에 콜롬비아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에라르는 올해 2~5월 콜롬비아와 에콰도르·파나마·도미니카공화국 등을 방문했다. 하지만 에라르와 암살의 연관성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CEPR)는 미국 법집행 기관이 에라르에 대해 불법 무기 거래와 연결됐는지를 수사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혐의다. 2015년 대선에 출마했던 야당 상원의원 스테븐 브누아는 미국 대학라디오(AUR)에서 “모이즈는 콜롬비아인이 아닌 자신의 보안요원들에게 암살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기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못했다.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을 부를 만큼 원한을 산 사람이 있었을까. 대통령 임기를 둘러싼 황당한 정치 싸움이 있기는 했다. 모이즈 대통령은 지난 2015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야당 후보들의 불복으로 당선 확정이 16개월이나 늦어져 2017년 2월에야 5년 임기의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정국 혼란으로 늦게 시작했으니 임기는 2022년 2월까지”라고 주장해 왔다.

반면 반대파들은 대통령 임기는 대선 직후부터 따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래서 모이즈의 임기가 이미 지난해 10월 종료됐다며 몇 달 전부터 자리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왔다. 이들은 모이즈 대통령이 갱단을 동원해 정적들을 탄압하고, 각종 부정부패에 연루됐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그러자 모이즈는 지난 1월 하원을 해산했다. 이처럼 아이티는 정치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았지만, 이 나라는 역사 이래 정치적으로 안정적이거나 경제적으로 풍요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로 지적되지는 않는다. 미국은 현직 대통령인 모이즈의 주장에 동조해 왔다.

아이티 경찰국장인 레옹 샤를은 “범행은 ‘28인의 암살단’이 벌였으며, 그중 26명이 콜롬비아군 출신의 용병이며 나머지 두 사람은 아이티계 미국인으로 통역을 맡았다”고 발표했다. 같은 남미 국가지만 아이티에선 프랑스어를, 콜롬비아에선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이 발표로 의혹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들은 왜 말도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에 와서 대통령 암살이란 엄청난 일에 가담했을까.

주목할 점은 콜롬비아군이 오랜 내전으로 우파 및 좌파 게릴라와 전투를 치른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에스코바르를 비롯한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해 끈질기게 특수작전을 벌인 경험도 있다. 미국으로 향하는 마약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미군과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오랫동안 콜롬비아를 지원해 왔다. 미국이 콜롬비아군과 경찰의 장비와 훈련을 맡아왔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아이티의 레옹 샤를 경찰청장은 7월11일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아이티인 의사 크리스티앙 에마뉘엘 사농(63)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실행범으론 외국인 용병 28인을 특정하고 그 배후 인물의 하나로 사농을 지목한 것이다. 암살 사건의 퍼즐 맞추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샤를 경찰청장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살며 아이티를 왕래했던 사농이 정치적 목적에서 지난 6월 개인 비행기를 타고 아이티에 왔다고 밝혔다. 신변 경호를 위해서라며 마이애미의 민간군사기업(PMC)을 통해 전 콜롬비아 정부군을 모집했다고 설명했다. 사농은 애초 모이즈 대통령을 납치하려 했지만 도중에 작전이 변경됐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아이티 밖에서 살고 있던 의사가 PMC를 통해 대통령 납치나 암살을 기도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동기나 배후는 계속 의문일 수밖에 없다. 로이터에 따르면 사농은 2013년 파산 신청을 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현직 대통령을 몰아내고 암살하기 위해 용병을 고용한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 자금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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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대행과 상원의장 등 벌써 권력다툼

모이즈의 사망으로 정치적인 이득을 보는 인물을 찾아보는 것은 배후를 추정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가 사라지면 권력을 쥘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모이즈가 암살된 뒤 클로드 조제프 총리 권한대행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다. 미국 뉴욕의 뉴스쿨에서 공공정책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대학에서 교수를 하던 그는 지난해 3월4일 외교부 장관에 취임했다. 그러다 올해 4월14일 조제프 주테 총리가 사임하면서 총리 권한대행도 함께 맡아왔다. 모이즈가 숨지자 즉각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비상사태와 계엄령을 선포했다. 유엔은 조제프를 합법적인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인정한다.

미국에 평화유지군과 미군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백악관은 그의 요청을 검토 중이라고만 언급했다. 미국은 1994년 9월 평화와 민주주의 복구를 위한다며 1991년 쿠데타로 집권한 라울 세드라스 대통령과 협상해 그를 파나마로 망명 보냈다. 이어 아이티에 2만 명의 미군 병력을 주둔시킨 뒤 자유선거를 치르게 해 쫓겨났던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을 복귀시켰다.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이뤄졌던 이런 일이 조 바이든 시대에 재연될지는 미지수다.

아이티에서 총리 권한대행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을 수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실제로 상원의원들은 조제프 랑베르 상원의장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선출했다. 게다가 모이즈는 숨지기 이틀 전 신경외과 의사인 아리엘 앙리를 총리서리로 지명했다. 누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사태를 수습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사태를 법적으로 수습할 대법원장은 지난달 코로나19로 사망해 공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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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 연합

대만과 수교한 아이티, 중국엔 눈엣가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상태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 타임스는 7월11일 흥미로운 기사를 내보냈다. 거리의 갱단 두목인 지미 체리지에가 이날(11일) 비디오 연설에서 “냄새나는 부르주아들이 대통령을 희생시켰다”며 자신이 내막을 밝히겠다고 주장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경찰 출신의 갱으로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9개 갱단을 연합해 만든 G9의 두목이다. 바비큐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앞으로 거리를 장악하고 합법적인 폭력으로 레바논이나 시리아 출신의 경제계 거물들이 장악한 시스템을 나같이 꼬인 머리카락의 흑인 아이티인들에게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아이티 경제를 일부 장악한 중동계 기업인과 정치인들을 대통령 암살의 배후로 지목한 셈이다. 아이티 사회에 잠재해 있던 인종 간, 계층 간 갈등이 대통령 암살을 계기로 수면 위에 오르려는 상황이다. 중국공산당과 관련 있는 매체가 이런 보도를 하는 것 자체가 의아스럽기도 하다.

사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는 중국과는 수교하지 않고 있으며 대만과 1956년부터 국교를 맺고 있다. 주목할 점은 암살범들이 범행 직후 대통령 사저 주변의 대만대사관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대만 외교부에 따르면 사건이 벌어진 7월7일 현지 대사관에 무장그룹 11명이 침입한 것을 경비가 발견했으며, 연락을 받은 아이티 당국이 이날 저녁 이들을 전원 체포해 갔다. 대만대사관의 창문이 깨졌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런 대만과 아이티의 관계는 각별하다. 아이티는 1956년 대만을 승인하고 국교를 수립했다. 아이티는 현재 대만과 수교하고 있는 15개국 중 하나다. 아이티 대통령이 다섯 차례, 총리가 한 차례, 국회의장(상원 또는 하원)이 다섯 차례 대만을 찾았으며, 대만도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2019년 한 차례 아이티를 방문했다.

2018년 이웃 도미니카공화국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맺었지만, 아이티는 변함이 없었다. 아이티는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몸값을 올리기에 유리한 위치였다. 중국은 1993년 아이티에 무역사무소를 설치하고 수년간 관계 정상화에 박차를 가했지만, 소득을 얻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선 이른바 은탄 외교, 돈과 혜택을 앞세운 외교가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대만은 외교 관계 유지를 위해 아이티에 1억5000만 달러를 들여 2010년 아이티 대지진으로 무너진 인프라 중 농촌의 전력망을 재건해 주기로 했다.

동쪽 3분의 2를 차지한 도미니카공화국이 중국과 수교하자 대만은 아이티도 뒤따를까봐 더욱 공을 들였다. 모이즈 대통령은 2018년 5월28일 상하 양원 의장을 대동하고 대만을 방문해 차이 총통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중국으로선 이런 모이즈 대통령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이즈가 사라진다고 아이티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대통령을 암살할 정도로 국교 수립이 절실하지도 않다. 작은 자존심 싸움일 뿐이다.

살펴본 대로 아이티의 모이즈 대통령 암살 사건은 파면 팔수록 시계가 더욱 흐려진다. 대통령 물러나라고 외쳤던 정적들, 미국 교수 출신의 총리 권한대행, 미국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온 아이티계 의사에 일각에선 중국 개입설까지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속 시원한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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