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홍수 참사, 기후위기 탓만이 아니다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5 12:00
  • 호수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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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天災) 아닌 인재(人災)…“경보 시스템 문제 없다”는 정부 변명에 민심 들끓어

물살에 떠내려가는 자동차들, 물에 잠긴 고속도로, 폭포를 연상케 하는 거리의 거센 물살. 독일 서부 지역의 이 모습이 전 세계 뉴스를 강타한 지 일주일을 넘기고 있다. 독일 국민도 독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상상조차 못했다며 경악하고 있다. 피해 규모는 막대하다. 현지시간 7월21일 기준 이미 17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부상자까지 합치면 피해자는 1000명대에 이르고 있다. 현재까지 실종자는 1300명 정도로 보도됐지만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고 전해진다. 정전돼 통신망이 두절된 지역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로망까지 적잖은 타격을 입어 생사 확인이 불가능한 사람이 많다. 추후 통신망이 복구되면 실종자 통계는 줄어들 거라는 막연한 기대만 안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가 그친 주말에는 전 지역에서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저기 홍수 피해 사진과 영상을 찍어대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혼란을 틈탄 도난 사건도 20여 건 신고됐다. 각종 교량·철도·도로 등 인프라를 복구하는 데만 약 20억 유로(약 2조7000억원)가 들 것으로 예측된다.

유례없는 홍수 피해는 어디서 기인한 걸까. 의견이 갈린다. 가장 먼저 ‘기후위기’가 꼽힌다. 실제 기단의 움직임 등이 기후위기로 인해 변화하면서 이러한 이변이 발생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피해 주민들은 해당 지역이 본래 홍수에 유독 취약했다고 말한다. 피해 지역엔 주로 역사가 깊은 작은 마을이 많다. 이 때문에 수백 년 전의 기록까지 보존돼 있는데, 기록에 따르면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꾸준히 홍수 피해가 발생했다. 그간 없던 홍수가 근래 갑자기 발생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EPA 연합
대홍수 사태로 7월19일 독일 알테나르에서 아르강이 범람한 후 지역 주민들이 쌓인 쓰레기 사이를 걷고 있다.ⓒEPA 연합

앱 통한 홍수 경보, 주민 다수가 받지 못해

또한 피해 지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루어·에르프트·아르·뒤셀 등 한국으로 치면 개울이나 계곡 정도로밖에 취급받지 못할 작은 규모의 물들이 곳곳에 흐르고 있다. 외지인은 그 작은 물들이 그렇게나 갑자기 불어나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몇 년에 한 번씩 무서울 정도로 물이 불어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한다. 주민들은 궁극적으로 이 같은 규모의 자연재해 원인이 기후위기 탓이라고 해도, 일단 당장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부터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책이 실패하면 더 이상 불가피한 ‘재난’이 아닌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현재 독일의 다수 언론은 ‘왜 해당 지역 주민들이 대피하지 못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지역 내 경보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다. 언제·누가·어떻게 기상예보를 전달했는지, 피해에 대해 어떤 기구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등을 처음부터 따져보자는 것이다. 일단 유럽연합(EU) 차원에서는 2002년 엘베강과 도나우강에서 발생한 홍수를 반면교사로 삼아, 홍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유럽 홍수 조기경보 시스템(European Flood Awareness System·EFAS)’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EFAS는 본격적인 홍수 피해가 발생하기 사나흘 전인 7월10일 첫 경보를 각국에 전달했다. 이후 독일 바이에른·헤센·작센주, 그리고 본에 위치한 재난관리청에서 이를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EU에 따르면 EFAS는 재난관리청을 통해 7월14일까지 약 25차례 이상 경보를 울렸다.

경보는 재난관리청 자체 경보 앱 ‘니나’를 통해 송출된다. 그러나 독일의 스마트폰 사용률은 2020년 기준 전체 인구의 72.3%에 그치며(한국은 약 95%) 특히 고령층에서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본 적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홍수 피해가 컸던 지역들은 2030 자녀 세대가 학교나 직장을 위해 이미 도시로 떠나고, 그 부모 세대만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그 때문에 주민 상당수가 앱을 통해 홍수에 대한 경고를 전해 받는다는 점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설령 휴대전화가 있다고 해도 독일은 재난경보문자가 법적으로 금지됐기 때문에, 재난관리청의 ‘니나’ 앱으로만 제한적으로 경보를 받을 수 있다. 아르민 슈스터 재난관리청장은 니나를 다운로드한 횟수가 900만에 이르며, 자신들은 150개 이상의 경보를 내보냈으니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독일 내에선 다시 아날로그식인 경보 사이렌을 곳곳에 울리는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극복해야 할 장애물은 많다. 일단 1990년대부터 비용 절감을 이유로 사이렌보다는 방송이나 통신망을 이용한 경보를 선호하고 있다. 그 결과, 지역마다 곳곳에 존재했던 약 8만 개의 사이렌은 2015년 기준 1만5000개만 이용 가능한 상태가 됐다. 2020년 9월 다시 전국 경보 사이렌 테스트를 시행했을 땐 이미 대부분의 사이렌이 울리지 않는 고장 상태였다. 지난 7월19일 정부 측 책임자들이 연 기자회견에서 보수돼야 할 사이렌이 총 몇 개이며 각각 어디에 위치하는지, 또 보수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등을 묻는 질문에 책임자 누구도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공영방송, 속보 없이 정규 편성 내보내

사이렌 대체재로 지목된 방송은 경보를 충분히 내보냈을까. 홍수가 가장 극심했던 7월14일 독일 서부 공영방송에서는 정규 편성을 그대로 송출했다. 속보를 내보내고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할 긴박한 상황임에도 엄청난 재해 소식을 전혀 내보내지 않은 것이다. 독일은 공영방송에 국민이 내는 요금은 매달 17.5유로(약 2만2000원)에 이른다.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연일 극에 달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홍수 대비에 실패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재난관리청장과 마찬가지로 호르스트 제호퍼 연방 내무부 장관 역시 피해 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경보 시스템에는 문제가 없고 제 기능을 충분히 했다는 변명을 늘어놓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독일 정치인들은 피해 지역을 찾아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책임을 따지기 전에 피해를 복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애써 성난 민심을 달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피해 지역을 향해 곳곳에서 자원봉사와 모금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 국민은 자신의 집에서 각종 물품과 장비를 챙겨 피해 지역으로 모이고 있다. 옷을 걷어붙이고 물을 퍼내고 무너진 집을 복구하는 데 일조한다. 하지만 정부에선 어떤 지원을 얼마나 제공할지 아직 불투명한 채 모두가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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