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K팝의 성장동력 될까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2 12:00
  • 호수 16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상세계관의 시대, K팝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

가상현실은 K팝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까. 최근 K팝이 가상과의 결합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아이돌그룹의 아바타가 가상공간에서 팬들을 만나고, AI와 CG 기술이 결합한 사이버 가수가 공연을 하는 시대. 과연 K팝은 가상의 세계 어디까지 갈까. 

지난해 11월 싱글앨범 ‘Black Mamba’로 데뷔한 에스파는 카리나(유지민), 지젤(우치나가 애리), 윈터(김민정) 그리고 닝닝(닝이줘)으로 구성된 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이다. 그런데 에스파는 이들 멤버에 ‘아바타(분신)’라는 개념을 더했다. 각 멤버들은 자신들의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와 함께 활동한다는 것. 여기에는 에스파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담겨 있다. 저마다 개개인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아바타를 갖게 되는 세상이 등장하고, 이 세상을 해킹해 혼란을 가져오려는 위협적인 존재도 등장한다. 그저 이야기로만 구성된 게 아니고, 아바타들이 실제 활동에도 참여한다. 즉 뮤직비디오에서도 멤버와 아바타가 함께 등장해 춤, 노래와 더불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팬미팅이나 콘서트에도 멤버와 아바타가 함께 참여한다. 증강현실, 인공지능 같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겹쳐 놓는 기술들이 가능하게 만드는 이 세계는 이른바 ‘메타버스(metaverse)’다. 메타버스란 가상과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에스파는 가수 활동을 하는 걸그룹인데 어째서 이런 메타버스 세계관까지 가져오며 활동하게 된 걸까.

ⓒZEPETO
블랙핑크가 2020년 9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개최한 팬 사인회는 4600만 명이 모여 주목을 받았다.ⓒZEPETO

메타버스 기반의 K팝 세계관

그것은 가상이 가상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이미 현실과 연결돼 실제 경험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는 이미 상당히 많은 현실세계의 일들을 처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은행에 가는 일부터, 영화를 보고, 콘서트에도 참여한다. 또 쇼핑을 하고 교육을 받고 친구를 만나 함께 게임을 하기도 한다. 디지털 가상에서 현실 경험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건 메타버스가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걸 말해 준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비대면 일상’의 가속화는 이러한 메타버스 경험들을 좀 더 빠르게 우리의 삶으로 바꿔놓고 있다. 

에스파가 메타버스의 세계관을 본격적으로 가져온 건, 변화된 삶의 양태에 공격적으로 대응하려는 K팝의 또 다른 승부수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같은 K팝 아이돌들이 글로벌 팬덤을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기반이 디지털 네트워크라는 점은, 이런 승부수가 어째서 효과적인가를 잘 말해 준다. 만일 K팝 아이돌들의 아바타를 그들의 진정한 분신으로 팬덤(소비자)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메타버스는 현실의 많은 제약을 초월하는 다양한 일들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게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메타버스가 또 다른 삶의 공간이면서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가 실현되는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듯이 말이다. 

메타버스는 ‘세계관’으로 불리는 ‘가상으로 설정된 세계’와 이 가상을 마치 실제처럼 믿고 그 안에 들어와 노는 팬덤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제아무리 가상의 경험들이 현실 경험을 대체해 주는 시대라지만,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세계관은 팬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2011년 데뷔한 아이돌그룹 엑소의 사례는 세계관이 어떻게 K팝에서 점점 익숙해진 개념이 됐는가를 잘 보여준다. 즉 K팝에서 세계관을 처음 차용한 엑소는, 태양계 외행성(엑소플래닛)에서 날아온 멤버들로 염동력, 시간, 공간, 불, 물 같은 다양한 초능력을 갖고 있다는 세계관을 제시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엑소 멤버들조차 낯설었던 이 세계관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음의 코드로 활용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할 정도로 웅장했던 엑소의 세계관은 그 디테일한 설계로 K팝 팬들을 열광케 만든 중요한 요인이 됐다. 세계관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은 음악과 영상, 이미지 같은 콘텐츠 속에 녹아 들어갔고, 팬들은 그 의미를 해석하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일종의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면서 ‘아는 이들만 아는’ 그들만의 세계관은 오히려 팬덤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엑소 이후 K팝 아이돌들이 다양한 세계관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룹 B.A.P는 ‘마토 행성 출신의 소년들이 위기에 처한 행성을 구하기 위해 우주를 헤매다 지구에 도착했다’는 세계관으로 데뷔했고, 걸그룹 드림캐처는 판타지 세계 속의 7개 악몽을 상징하는 소녀들과 이들을 쫓는 악몽 헌터와의 추격전이라는 다소 어두운 세계관을 속도감이 느껴지는 강렬한 헤비메탈 사운드와 춤, 이미지로 표현해 냈다. 모두가 알다시피 방탄소년단은 헤르만 헤세의 성장소설 《데미안》을 모티브로 세계관을 삼았다. 이처럼 K팝 아이돌들은 이제 저마다의 세계관을 갖고 등장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다. 메타버스는 이 세계관을 기반으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확장현실(XR),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초고속 네트워크, 블록체인 등 새로운 기술이 더해지면서 스토리의 차원을 넘어 체감되는 세계로 등장한 것이었다. 

메타버스가 가상의 캐릭터들(아바타)을 실제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걸 전제로 가능하다는 점은 그 ‘실재감’을 주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요구했다. 다소 어설펐던, 1998년 등장한 국내 1호 사이버 가수 아담 역시 당시 CG 기술로는 어려운 도전이었던 ‘인물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 실재감을 만들려 했다. 이 사이버 캐릭터가 굳이 가수로 등장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연예인이라는 대중적 인기를 기반으로 다양한 비즈니스가 가능하다는 점과 더불어, 당시 기술로는 가수가 가장 CG 활용을 적게 하면서 활동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가수라는 직업은 뮤직비디오에 들어가는 CG와 ‘얼굴 없는 가수’의 노래와 목소리만 있으면 충분했으니 말이다. 너무 앞선 생각이었지만, 당시 아담의 제작자들은 CG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누구나 아바타를 갖는 메타버스 세상을 꿈꿨다. 하지만 아담은 결국 당시 기술력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내며 메타버스의 세계에서 하차했다. 

1998년 등장한 사이버 가수 아담
2021년 활동 중인 가상 모델 로지ⓒ로지 인스타크램

사이버 가수 아담부터 가상 모델 로지까지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최근 한 광고에 등장한 가상 모델 로지는 현재의 CG 기술이 얼마나 비약적으로 발전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가상 모델이라는 걸 알리지 않고 먼저 광고가 공개된 후, 거기 등장한 로지가 실제 사람이 아니라 가상 모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된 것. 이러한 CG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향후 다양한 아바타의 형태로 등장할 가상 캐릭터들과, 이들이 구성할 메타버스가 이제 눈앞에 도래했다는 걸 실감하게 해준다. 

이제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은 글로벌 K팝 팬덤들이 모여 함께 노는 공간이 됐다. 블랙핑크 팬사인회에 무려 4600만 명이 넘는 이용자가 몰려들었고, 이들은 자신의 셀카 사진에 AI와 AR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진 아바타를 갖고 이 세계를 활보한다. 콘서트에 가고, 굿즈를 구매하며, 팬사인회에 참석해 아이돌의 아바타를 만난다. 이것은 현재 팬덤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세계지만, 그 저변은 점점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넓어져 가고 있고 어느새 대중들은 메타버스를 실제처럼 점점 받아들이고 있다. 아바타는 나의 분신 같은 캐릭터지만, 메타버스의 세계에서는 나를 대변하는 존재가 된다. 이 믿음이 생겨나는 지점에서 메타버스에 선제적으로 올라탄 K팝의 미래가 그려진다. 메타버스는 이미 K팝의 중요한 성장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중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