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공간도 없는 우리 현실엔 원전이 제격 [최준영의 경제 바로 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5 10:00
  • 호수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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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산업화된 현실 감안해야…2050년 탄소 중립 위한 ‘전원 믹스’ 필요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면서 다시 한번 ‘전력 예비율’이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논란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신월성 1호기, 신고리 4호기, 월성 3호기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가동에 들어가면서 더 많은 원전이 가동되고 있었다면 전력에 대한 걱정이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탈핵을 주장하는 측은 태양광으로 대표되는 재생 에너지 발전 비용이 일반적인 발전에 비해 더 저렴해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더 이상 원전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에너지 정책, 그 가운데서도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갈등은 정치적·사상적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의 경우 원자력발전은 필요하다. 국가마다 입지조건이 다르며, 산업과 경제 구조 등이 모두 다름을 감안하면 유럽과 미국이 원전을 폐쇄하고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고 있다고 우리 역시 똑같은 전략과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곤란하다. 우리에게는 유럽의 북해 같은 바람이 풍성한 공간도, 미국의 네바다사막처럼 태양광이 연중 넘쳐나는 공간도 없다. 그렇다고 남미나 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이 대규모 수력 개발도 쉽지 않은 자연적 조건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에 비해 세계적으로 한 손가락에 꼽을 만한 수준의 제조업 국가라는 산업구조, 그리고 높은 도시화율과 인구밀도라는 사회적 조건으로 인해 전력수요는 클 수밖에 없다. 좁은 국토에서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은 집중된 공간에서의 대규모 전략생산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핵융합이 실용화되기 이전까지 이런 조건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은 원자력발전, 그리고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시설과 함께 가동되는 미래의 석탄화력발전 정도임을 고려하면 현시점에서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

제9호 태풍 마이삭이 부산에 상륙한 2020년 9월3일 오전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4호기가 가동을 멈췄다.ⓒ연합뉴스

사용후 핵연료 임시 보관하는 시설 필요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전력수요가 향후 2~3배 늘어난다고 보면 결국 조만간 우리가 겪을 문제는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것과 더불어 생산된 전력을 필요로 하는 곳에 보내는 것이다. 더 많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그리고 풍족하게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원자력은 확실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큰 단점도 함께 가지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 문제다. 원자력발전의 결과물로 배출되는 사용후 핵연료를 위한 영구처분장은 고사하고 중간저장시설도 건설하지 못한 상황에서 원자력발전 증설을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사실 현재의 원자력발전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원전 증설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존 시설에 더 빽빽하게 저장하는 방식이 한계에 도달함에 따라 기존 원전 옆에 신규로 건설된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을 만들고 거기에 다시 저장하는 방식으로 원전을 가동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렇게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저장돼 있는 사용후 핵연료를 한곳에 모아 영구적으로 처분하기 이전에 임시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간저장시설이다. 지난 2016년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서 2029년 영구처분장 부지 선정, 2036년까지 중간저장시설 건립이라는 시간표를 제시했지만 현재 구체적인 방향을 상실한 상태다.

생산과 더불어 그동안 간과됐던 것이 전기를 수요처로 보내는 송전과 관련한 문제다. 원자력발전소는 아무 곳에나 들어설 수 없다. 지질학적 안정성과 대량의 냉각수, 사고 시 피해 최소화 등을 고려하면 현시점에서 가능한 곳은 기존 원자력발전소 인접지역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소들은 도시의 아파트만큼이나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부지를 확보하더라도 전력을 필요로 하는 곳까지 보내는 송전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송전은 산에 철탑을 세우고 고압 송전선로를 깔면 되는 간단한 문제로 보이지만, 그 간단한 문제가 이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라는 점을 우리는 밀양에서의 765kV 송전탑 건설 과정을 통해 경험했다. 재생 에너지의 모범생으로 꼽히는 독일 역시 북부의 넘치는 전력을 수요처인 남부로 보내는 국토 종단 송전선로 건설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사유재산이 인정되는 나라 가운데 송전선 건설이 용이한 국가는 별로 없다. 원전의 가동과 증설이 이뤄지더라도 그곳에서 생산된 전력을 보내는 것은 더 이상 용이하지 않다.

폭염이 연일 계속되는 지난 7월28일 오후 서울 구로구 한 대형마트에 시민들이 냉방 가전매장을 둘러보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지역 간 차등전력요금제 도입 검토해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소비하는 측이 합당한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더 많은 송전선과 더 많은 발전시설, 원자력 시설이 존재하는 지역이 부담하는 리스크와 불편함에 상응하는 대가를 깨끗한 전력을 사용하는 곳에서 부담해야 한다. 쉽게 말해 수도권의 전력요금과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한 동남권이나 석탄화력이 밀집한 충청 서해안 지역의 전력요금을 다르게 책정하는 지역 간 차등전력요금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지역 간 차등전력요금제는 공정이라는 관점에서 합리적이다. 이와 더불어 지역 간 차등전력요금제는 그동안 계속 실패를 거듭하는 수도권 집중 억제와 지방균형발전 측면에도 일정 부분 도움을 줄 수 있다. 수도권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규제하기보다는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하도록 할 경우 무조건 수도권을 선호하는 경향은 완화될 수 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서울 시내 한강변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비현실적이지만, 서울과 수도권에서의 추가적인 비용 부담 없는 원전의 확대는 생각만큼 현실적이지 않다.

원자력의 역할과 한계가 분명하다면 어느 수준까지 역할을 맡길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다양한 전력생산 방식은 각각의 장점과 단점,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효과적으로 조합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이것이 ‘전원 믹스’라고 불리는 것이다. 교조적으로 핵은 나쁜 것이고, 없애야 할 물건이라고 접근하면 안 된다. 반핵과 탈핵의 도그마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원자력 부문도 국민들 앞에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폐쇄적인 전문가 집단이라는 기존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2050년 탄소 중립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재생 에너지 비중 확대를 위해 가능한 모든 곳에 태양광 패널을 깔고 풍력터빈을 설치해야 한다. 변동성이 높은 재생 에너지를 저장하기 위해 계곡을 막아 양수발전소를 만들고 물을 채워야 한다. 도시에서는 자체적인 전력생산 확대와 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해 소각로와 소성로를 더 많이 만들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바이오 연료 생산과 이용을 위해 산림은 논과 밭처럼 적극적으로 활용돼야 한다. 당연히 송전선로도 더 만들어야 하고, 눈앞을 가로지르는 고압 송전선로에 익숙해져야 한다. 대한민국 국토 면적 10만㎢에서 이러한 일을 다 해야 하는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고 회피하지 않는 정치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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