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바쁜 마사회, 발목 잡는 회장님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5 10:00
  • 호수 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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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회장, 욕설 파문으로 취임 5개월 만에 직무정지
역대 마사회장 수난사 다시 도마에

한국마사회(마사회)는 국내 공기업 중에서 가장 알짜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연도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매출은 7조원대 중후반, 영업이익은 2000억원 안팎을 기록했다. 부채비율은 3~4% 수준이다. 자기자본을 웃도는 부채로 몸살을 앓고 있는 다른 공기업과 비교돼 왔다. 8조원 규모의 국내 경마산업을 마사회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로 무관중 경기가 계속되면서 마사회의 경영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김우남 회장(왼쪽)은 취임 5개월 만에 직무정지를 당했다.ⓒ연합뉴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꼴찌 ‘수모’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상황이 1년 넘게 지속되면서 마사회는 치명상을 입었다. 무관중 경기로 경마 관련 매출이 사라지면서 경영 상황이 악화된 탓이다. 지난해 마사회는 1조1018억원의 매출과 460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85.1%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됐다. 부채비율 역시 7.73%로 1년 전(4.74%)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0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마사회는 꼴찌를 기록했다. 공기업 36곳 중에서 E등급(아주 미흡)을 받은 곳은 마사회가 유일했다. 부동산 투기 사태로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보다도 낮은 점수였다.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우남 마사회장은 이런 문제를 안고 지난 2월말 취임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업무 시작과 함께 구설에 휘말렸다.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낸 A씨를 비서실장으로 특채하려다 무산되자 담당자에게 ‘XX새끼’ ‘잘라버리겠다’ 등 막말과 욕설을 퍼부었다는 의혹이 내부에서 제기된 것이다.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됐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감찰을 지시했을 정도다. 마사회의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청와대 감찰 결과를 바탕으로 김 회장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김 회장은 해임이 부당하다며 재심의를 요청했지만, 농식품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도 최근 김 회장을 강요미수 및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한 상태다.

마사회는 지난 7월말 김 회장에 대한 직무정지 조치를 내렸다. 지난 2월26일 회장으로 취임한 지 5개월여 만이었다. 마사회 측은 “(김 회장이) 해임된 게 아니다”고 강조한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직무만 정지된 상태로 비상경영 체제로 회사가 운영되고 있다”면서 “농림부에서 김 회장 개인에게 해임을 통보했기 때문에 이후 상황은 우리도 알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당장 내부 직원들의 동요가 컸다. 농식품부가 청와대에 마사회장 해임을 건의한 사례가 1949년 회사 설립 이후 처음이기 때문이다. 마사회 직원들은 올해 경영실적 평가에서 회사가 E등급을 받으면서 성과급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서 유급 휴업도 진행 중이다. 마사회 직원들은 현재 법정 기준보다 낮은 50%의 수당만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장마저 직무를 정지당하면서 술렁거림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마사회장의 수난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회장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논란을 빚었다. 내부 승진한 박창정 전 회장(30대)을 제외하고 정권과 밀접한 정치권 인사나 관료 출신이 회장으로 선임되는 게 관례였다. 퇴임 때도 각종 비리에 연루되면서 중도 퇴진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윤영호 전 회장(29대)이 대표적이다. 윤 전 회장은 2005년 수뢰 혐의로 구속돼 징역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윤 전 회장 후임자로 내부 승진한 박창정 전 회장 역시 공범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오경의 전 회장(25대)의 경우 마사회 장외발매소 선정에 도움을 주는 대가로 리조트 업체로부터 거액을 수뢰한 혐의로 징역형을 받기도 했다.

 

유보금 바닥나 차입 경영 불가피

이후 취임한 회장들도 말이 많았다. 참여정부 때 취임한 이우재 전 회장(31대)의 경우 재임 중 뺑소니 의혹이 불거졌다. 이명박 정부 때 취임한 김광원 전 회장(32대) 역시 화상 경마장 건설과 관련한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전력이 있다. 장태평 전 회장(33대) 때는 마사회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비리에 휘말렸다. 기수와 조교, 조폭, 심지어 마사회 직원이 함께 짜고 승부를 조작한 사건이었다. 장 전 회장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1년이나 임기를 남긴 상황에서 물러나야 했다.

박근혜 정권 때인 2013년 12월 삼성물산 회장 출신인 현명관 전 회장(34대)이 취임했다. 정치인이나 관료가 아니라 기업인 출신이라 “이번엔 뭔가 다르겠지” 하는 기대가 마사회 안팎에서 나왔다. 하지만 현 전 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았다. 후임으로 이양호 전 회장(35대)이 2016년 취임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로 국정이 운영될 때였다. 이 전 회장의 경우 정권과의 유착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마사회장의 수난사를 끊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왔다. 이 전 회장 역시 취임 일성으로 “마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임 기간에 부산경남경마본부 소속 마필관리사가 석 달 간격으로 잇달아 목숨을 끊으면서 고용부로부터 특별근로감독을 받았다.

마사회장의 수난사는 문재인 정권 때도 이어졌다. 36대 김낙순 전 회장과 37대 김우남 회장도 관료나 정치인 출신으로 낙하산 논란이 재연됐다. 김낙순 전 회장 시절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기수들의 잇단 자살로 마사회 내의 부조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경영 악화로 마사회는 경마 역사상 최대 위기에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취임한 김우남 회장 역시 취임 5개월 만에 직무정지를 당하면서 직원들의 허탈감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마사회는 송철회 부회장 겸 경영관리본부장이 회장 직무를 대행하고 있다. 김 회장이 해임된 게 아닌 만큼, 후임 인사는 아직 진행조차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경영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쌓아둔 유보금은 바닥을 보인 지 오래다. 직원들이 자진해서 유급휴직 수당을 70%에서 50%로 낮췄지만 출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매년 2000억원 안팎의 흑자를 내던 공기업이 차입 경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김우남 회장의 막말 파장으로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차입 경영 문제는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뿐 아니라 기재부와도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면서 “내부적으로 논의를 하고 있지만 공식화하기엔 아직 무리가 있다. 이사회 안건 상정과 의결 등 거쳐야 할 과정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만큼 지켜봐 달라”고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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