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에게 시진핑 사상 교육시켜라”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07 12:00
  • 호수 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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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명 스타들에 잇따라 철퇴
자오웨이·장저한·정솽 등 추방되거나 거액 벌금

8월26일 중국 온라인동영상플랫폼(OTT)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유명 여배우 자오웨이가 주연을 맡은 영화와 드라마의 동영상이 검색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소개란의 출연진 명단에서 자오의 이름이 사라졌다. 현재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부분의 출연 영화와 드라마 동영상까지 삭제된 것이다. 게다가 OTT에서 자오를 검색하면 “관련 법규·정책에 따라 결과를 표시하지 않음”이나 “관련 동영상을 찾을 수 없음”으로 나온다. 중국에서는 흔히 반체제나 반정부 인사를 검색할 경우 이런 안내문이 뜬다.

드라마 《황제의 딸(還珠格格)》은 바이두와 OTT에서 검색은 가능하다. 하지만 OTT에서 동영상이 삭제됐고 출연진에서 자오 이름이 빠졌다. 《황제의 딸》은 1998년 방송돼 마지막 편이 62.8%의 시청률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던 작품이다. 여자 주연을 맡았던 자오를 비롯해 판빙빙, 린신루는 모두 스타덤에 올랐다. 또한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는 예정에 없던 후속편이 제작돼 1999년 2부, 2003년 3부가 방송됐다. 한국에서도 공중파TV로 방송돼 ‘중드’ 붐을 이끈 작품으로 꼽힌다.

ⓒ장저한 인스타그램 캡쳐·AP 연합
ⓒ장저한 인스타그램 캡쳐·AP 연합

《황제의 딸》의 스타, 탈출하듯 프랑스로 출국

2001년 《소림축구》, 2003년 《옥관음》, 2009년 《뮬란: 전사의 귀환》 등 자오웨이가 주연을 맡았고 한국에서도 개봉됐던 영화의 동영상은 사라졌다. 지난 5월부터 방송돼 7월에 종영됐던 드라마 《학구방(學區房)》도 동영상이 삭제됐고 출연진에서 자오가 빠졌다. 재앙은 자오의 팬클럽에도 미쳤다. 바이두 카페의 자오웨이클럽은 8월27일 아침부터 새 글을 올리는 기능이 삭제됐다. 현재 자오웨이클럽에서는 그 어떤 글과 사진, 댓글도 올리거나 달 수 없다. 자오웨이클럽이 운영하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도 마찬가지다.

이에 중국 언론은 관련 소식만 전할 뿐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런데 8월29일에 대만 언론이 자오웨이의 최근 신상에 대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자오는 8월27일 새벽에 전세기를 타고 프랑스 보르도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자오는 승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가 한 와인농장으로 향했다. 자오가 묵는 농장은 예전에 그가 사들인 와인농장 4곳 중 하나다. 그는 그곳에서 먼저 도착한 남편 및 딸과 상봉했다. 이 같은 보도 내용은 자오가 중국에서 퇴출돼 마치 탈출하듯 출국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다만 대만 언론이 밝힌 퇴출 사유는 아리송했다. 자오웨이가 2001년 일본 욱일기로 디자인한 의상을 입은 사진이 공개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당 사진을 보면, 일본 국기와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를 모티브로 한 도안이 확연했다. 대만 언론은 “욱일기를 입은 사진이 폭로돼 중·일 관계의 민감한 이슈를 들춰냈다”고 보도했다. 대만 언론의 이런 추측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올해 초에 방송됐던 무협 드라마 《산허링(山河令)》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가 얼마 전에 퇴출됐던 배우 장저한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장저한의 발목을 잡은 것은 2018년 일본 방문 시 야스쿠니신사에서 ‘V’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한 사진이었다. 또한 장저한은 노기신사에서 열린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노기신사는 러일전쟁에서 승리에 공헌한 노기 마레스케를 봉안했다. 결혼식에서는 반중(反中) 인사인 데비 수카르노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데비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아내였는데, 태생은 일본이다.

이로 인해 장저한은 8월13일 먼저 광고계에서 퇴출당했고, 15일에는 연예계에서 추방됐다. 출연했던 영화와 드라마의 동영상은 삭제됐고 출연진에서 이름이 사라졌다. 17일에는 바이두 카페의 장저한클럽이 폐쇄당했다. 장저한클럽도 처음에는 자오웨이클럽처럼 글·사진·댓글을 새로 올리거나 달 수 없었다. 하지만 자오의 사례를 장과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자오가 욱일기로 디자인한 옷을 입은 일은 2001년에 이미 문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자오는 두 차례에 걸쳐 사과했고, 옷을 기획한 패션잡지 편집장은 사임했다.

따라서 자오웨이와 알리바바그룹 창업자인 마윈의 관계에 대해 주목하는 시선이 또 다른 이유로 부각되고 있다. 자오는 알리바바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했었다. 2014년에는 알리바바그룹 산하 알리바바픽처스의 지분 9.1%를 31억 홍콩달러(약 4637억원)에 사들였다. 무려 2대 주주였는데, 평소 친분이 깊었던 마윈이 배려해 주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덕분에 자오는 알리바바픽처스가 이듬해 상장하면서 44억 홍콩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자오는 알리바바그룹 산하의 핀테크금융 업체인 앤트그룹이 설립한 A라운드 파이낸싱에도 참여했다.

모친 명의로 6000만 위안의 직접 투자와 30억 위안의 대출로 상장사 주식의 30%를 사들였던 것이다. 비록 감독기관에 발각돼 증시 5년 참여 금지를 처벌받았으나, 마윈과의 끈끈한 관계는 변치 않았다. 현재 사정 당국은 자오웨이뿐만 아니라 마윈과 인연을 맺었던 공직자들도 강도 높게 조사하고 있다. 마윈이 지난해 10월 금융감독 당국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면서 시작된 중국 정부의 보복이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자오가 포함된 것이다. 문제는 자오뿐만 아니라 중국 연예계 전반에 당국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데 있다.

8월27일 상하이세무국은 여배우 정솽에게 벌금 2억9900만 위안(약 535억원)을 부과했다. 정솽이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소득 1억9100만 위안을 신고하지 않았고, 세금 4526만 위안을 탈루하고 2652만 위안은 덜 납부했다는 혐의다. 또한 국가광전총국은 정솽이 출연한 드라마 《천녀유혼》의 방송을 금지했다. 8월17일에는 국내 아이돌그룹 엑소의 전 멤버인 크리스(중국명 우이판)가 강간 혐의로 정식 구속됐다. 크리스는 뮤직비디오 촬영을 미끼로 여러 명의 여성을 강간한 혐의다. 피해자 중 미성년자도 있다.

 

‘연예인 교육 관리와 도덕성 강화 방안’까지 발표

비록 이들은 혐의가 각기 다르지만, 중국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유명 스타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당국의 눈 밖에 나거나 정부의 규정과 방침 등을 어기면 파리 목숨처럼 퇴출당하고 활동 이력까지 말살당하고 있다. 심지어 8월30일 중국 문화여유부는 ‘연예인 교육 관리와 도덕성 강화 방안’까지 발표했다. ‘방안’에는 연예인들이 이론 학습과 연구 교류 등을 통해 시진핑 국가주석의 사상을 공부하도록 규정했다. 즉, 몇몇 개인의 일탈을 빌미 삼아 전체 연예인의 사상과 의식까지 통제하려는 속셈이다.

당국의 이런 지침은 해외에서 활동 중인 중국 출신 연예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K팝 계 가수들은 수년 전부터 중국 정부의 입맛에 맞는 정치적인 발언을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이들은 남해 분쟁, 홍콩 민주화시위 사태, 신장(新疆)위구르족 문제, 한국전쟁 등과 관련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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