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대신 수술하는 간호조무사…이래서 ‘수술실 CCTV 설치’ 목소리 높았나
  • 이정용 인천본부 기자 (teemo@sisajournal.com)
  • 승인 2021.09.14 14:00
  • 호수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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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천21세기병원, 간호조무사들에게 조직적·전문적으로 ‘대리수술’ 시켜
연봉 9000만원 받고 ‘수술전문간호사’로 불려

의료법상 의료인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와 간호사를 말한다.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의료인도 취득한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고도의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의료행위를 비의료인에게 지시하거나 위임해서도 안 된다. 전체 수술 과정 중 단 일부의 행위도 비의료인이 할 수 없다. 수술실에서의 처치는 의사만, 처치보조는 간호사만 할 수 있다. 반면 보건의료인으로 분류되는 간호조무사는 수술실에서 처치보조를 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해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100만~1000만원의 벌금도 병과된다.

그런데 인천21세기병원의 대표원장 등 일부 의사들이 특정 간호조무사들에게 거액의 연봉을 주면서 조직적으로 대리수술을 시켜온 사실이 밝혀졌다. 의사를 대신해 환자를 수술한 간호조무사들은 척추수술 중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의사가 수술실에 들어오기 전에 각종 수술기구를 이용해 수술 부위를 절개하고, 의사가 눈으로 병변을 볼 수 있도록 뼈에서 근육을 떼어내고 지혈했다. 또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가면 직접 수술 부위를 봉합했다. 확인된 사례 가운데 의사가 수술실에 머무른 시간은 길어야 약 6분30초에 불과했다.

이들 간호조무사는 직접 전자의무기록지를 열람해 대리수술 순번을 정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들 의사와 간호조무사가 조직적이고 전문적으로 대리수술을 진행했다고 보고, 최근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수술기록과 수술대장, 진료내역 등을 분석하면서 여죄를 캐고 있다.

(아래사진)인천 남동구 구월동 인천21세기병원 입구 모습ⓒ시사저널 최준필·이정용

대리수술 간호조무사 월급 750만원

시사저널의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9월1일 인천21세기병원 대표원장 등 의사 3명을 구속하고 의사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의료인이 아닌 간호조무사들에게 대리수술을 시킨 혐의(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를 받고 있다. 또 마치 의사들이 수술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환자에게 수술비를 받고,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의료급여를 받아 챙긴 혐의(사기)도 받고 있다.

경찰은 또 이들 의사를 대신해 전문적으로 환자를 수술한 간호조무사 3명을 구속하고, 이들 간호조무사를 보조하면서 대리수술을 방조한 혐의로 간호사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수사 결과, 의사를 대신해 환자를 수술한 간호조무사들 중 2명은 매달 750만원 상당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연봉으로 따지면 9000만원 수준이다. 이들은 인천21세기병원이 2006년 개원할 때 대표원장이 영입했고, 2006년 12월 간호조무사 자격을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간호조무사의 대리수술을 보조하다가 단독으로 수술 부위를 봉합했던 또 다른 간호조무사 1명은 42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발간한 ‘2018년도 한국직업정보’에 따르면, 일반 의사의 평균연봉은 7357만원이다. 간호조무사의 평균연봉은 2399만원이다. 인천21세기병원에서 전문적으로 대리수술을 맡았던 간호조무사들이 일반 의사들의 평균연봉보다 많고, 간호조무사들의 평균연봉보다 무려 3배나 많은 급여를 받은 셈이다.

이들 간호조무사는 병원의 행정업무와 관련된 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병원 수술실로 출근하면서 ‘수술전문간호사(PA)’로 불렸던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이들은 전자의무기록지를 직접 열람할 수 있는 아이디를 부여받아 수술 일정을 확인한 후 순번을 정해 번갈아가면서 대리수술을 진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간호조무사가 올해 2월16일부터 4월14일까지 의사를 대신해 환자 10명을 수술한 동영상 증거를 확보해 놓고 있다. 수술기록지에 명시된 척추수술 시간은 약 1시간30분이다. 이 중 각종 수술기구를 이용해 환자의 수술 부위 절개와 시야 확보, 봉합은 간호조무사가 맡았다. 이들 간호조무사는 인천21세기병원 대표원장으로부터 이런 수술기법을 직접 교육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래전부터 관행적으로 대리수술 진행돼

인천21세기병원 대표원장이 고용한 의사 2명도 이들 간호조무사에게 수술을 맡겼다. 수술을 맡긴 의사들은 매달 1500만원 상당의 급여를 받는 조건으로 매달 2억원 상당의 매출을 올리기로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들이 급여조건에 맞는 매출을 올리기 위해 간호조무사들에게 대리수술을 맡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의사들이 수술시간을 줄여 환자를 더 많이 진료하기 위해 간호조무사들에게 대리수술을 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인천21세기병원이 매출을 올리는 데 급급하면서 환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겼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로 인천21세기병원 대표원장 등 의사 5명은 간호조무사들이 대리수술을 한 환자 10명에게 마치 자신들이 수술한 것처럼 “수술이 잘됐다”고 거짓말을 하고, 약 4700만원의 수술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간호조무사를 통해 대리수술을 해놓고 의사가 수술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약 1700만원의 보험급여를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인천21세기병원이 연간 70억~80억원 상당의 보험급여를 청구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환자들은 마취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로 누가 수술을 진행했는지 전혀 몰랐던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대리수술 피해자는 수술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천21세기병원에서 대리수술이 관행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리수술을 진행한 간호조무사들의 손놀림이 상당히 능수능란하다는 판단에서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인천21세기병원의 최근 7년 치 수술기록과 수술대장, 진료내역, 휴대전화 통화내역 등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대리수술을 진행한 것으로 보이는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환자들의 수술시간이 겹치거나, 수술환자와 병원을 방문한 외래진료환자들의 진료시간이 중복되는 사례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또 의사들이 환자를 수술하던 시간에 통화했던 휴대전화 기록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인천21세기병원 대표원장 등은 경찰이 확보한 동영상 증거를 제외한 대리수술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호사가 작성한 수술대장에 오류가 있거나 다른 의사가 수술을 도와줬다고 핑계를 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수술기록지나 수술대장에 간호조무사가 수술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술실 내부에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지난 8월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오는 2023년부터 전신마취 등 환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하는 병원은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며, 환자의 요청이 있으면 촬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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