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민은 왜 공주의 결혼을 못마땅해 할까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29 11:00
  • 호수 166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코 공주와 일반인 남성의 결혼에 대해 95.6%가 반대…일본판 ‘영국 해리 왕자 부부’ 될까 우려도

일본 왕실의 마코 공주(30)가 올해 안에 결혼한다는 소식이 일본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마코 공주는 나루히토 일왕(日王)의 동생인 후미히토 왕세제(王世弟)의 첫째 딸로, 대학 시절부터 교제해온 동갑내기 일반인 남성(고무로 게이)과 결혼할 예정이다. 일본 왕실 관련 법률인 ‘황실전범’에 따르면, 왕족 여성은 일반인 남성과 결혼할 경우 왕족의 신분을 상실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호주제처럼 여성이 결혼하는 경우 남편의 호적에 입적되기 때문이다. 단, 왕족 신분을 잃는 대신 품위유지비 명목으로 약 1억5300만 엔(약 16억원)을 일시금으로 지급받게 된다.

그러나 마코 공주와 고무로 게이는 품위유지비를 수령하지 않을 것이며, 결혼과 관련된 각종 왕실 의식도 전혀 거행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영국 왕실의 해리 왕자 부부가 결혼 후 영국을 떠난 것처럼 이들도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할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러브스토리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AP 연합
2017년 9월3일 일본의 마코 공주와 그녀의 약혼자 고무로 게이가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AP 연합

고무로의 가족사와 모친의 채무 문제 불거져

일본의 사립대 국제기독교대학(ICU)에서 사랑을 키워온 두 사람은 5년간의 교제 끝에 2017년 9월 약혼했다. 약혼 발표 및 기자회견 당시 마코 공주와 고무로는 서로를 태양과 달에 빗대어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특히 고무로가 마코 공주를 “달과 같이 조용하게 나를 지켜봐주는 존재”라고 설명한 것은 일본의 대다수 언론에 보도됐다.

마코 공주의 부모인 후미히토 왕세제와 기코 왕세제비도 가쿠슈인대학 재학 중에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까지 이어진 사례였기 때문에, 마코 공주의 약혼 소식에 축복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공주의 남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너무 컸던 나머지 고무로의 불우한 가족사가 언론을 통해 밝혀지기 시작했다.

고무로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그의 부친이 갑작스럽게 자살한 이후 조부모까지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2017년 12월에는 주간지 ‘슈칸조세(週刊女性)’가 고무로의 모친인 고무로 가요의 채무 문제를 특종 보도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고무로의 모친이 남편의 죽음 이후 교제 중이던 한 남성에게 고무로의 대학 입학금과 수업료 등 명목으로 400만 엔이 넘는 금액을 차용증 없이 빌렸으나 이를 변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무로의 모친이 신흥 종교를 믿고 있으며, 일본 왕실에도 손을 벌리려고 했다는 각종 추측성 보도가 이어지면서 고무로와 그의 모친이 의도적으로 마코 공주에게 접근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마코 공주가 받을 품위유지비로 고무로 가족의 채무를 청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무로의 가족사와 그 모친의 금전 문제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가운데 2018년 2월, 일본 궁내청은 그해 11월로 예정돼 있던 마코 공주의 결혼식을 2020년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마코 공주가 “결혼 준비를 위한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며, 결혼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고 싶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갑작스러운 연기 발표와 관련해 다양한 분석이 제시됐다.

2017년 9월 당시 일왕이었던 아키히토 상왕(오른쪽 두 번째)이 도쿄 아카사카궁 정원에서 열린 가을 가든파티 에 참석한 나루히토 당시 왕세자(오른쪽 네 번째) 등 왕족 들과 함께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AP 연합

결혼의례·품위유지비도 고사하고 미국행

대표적으로 당시 일왕(아키히토)이 현직 일왕으로서는 처음으로 퇴위 의사를 밝히고 있어 황실전범의 개정 및 퇴위와 관련된 의식 준비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고무로와 그의 모친에 대한 각종 보도가 이어졌던 만큼, 고무로 가족의 경제 상황을 이유로 왕실에서 결혼을 반대하고 있는 게 진짜 이유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마코 공주의 결혼 연기 사유에 대한 다양한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두 사람의 결혼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여론의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마코 공주는 지난해 11월 궁내청을 통해 결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표했다. 여러 이유에서 이 결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는 서로의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기 때문에 결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발표에서 구체적인 결혼 일정이 언급되지 않았고 결국 결혼은 재연기됐다.

왕족의 결혼이 전례 없이 두 번이나 연기되자, 두 사람이 정말 결혼하는 것인지 일본 국민들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결국 나루히토 일왕은 올해 2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코 공주의 결혼에 대해 국민들 사이에 많은 의견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며, “국민들이 납득하고 기뻐해줄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을 바라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전 일왕의 입장 표명에도 슈칸아사히(週刊朝日, 3월26일자)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5.6%가 마코 공주와 고무로의 결혼 의사를 “존중할 수 없다”고 답했다. 고무로가 금전 문제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필요 없다”가 52%, “필요하다”가 48%로 나타나 의견이 갈렸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답한 응답자 중 일부는 일반인인 고무로에게만 설명 책임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인 마코 공주와 왕세제 부부가 구체적인 경위를 설명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9월1일자 요미우리신문 보도를 시작으로 마코 공주가 올해 안에 결혼할 것이며, 결혼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할 것이라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또한 마코 공주는 부정적 여론을 의식이라도 한 듯, 왕실에서 진행하는 결혼의식을 전혀 거행하지 않고 품위유지비를 기부하는 방향으로 조정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품위유지비 지급은 법률상 정해져 있어 마코 공주가 품위유지비를 포기하기 위해서는 황실전범의 개정이 필요한데, 법률 개정까지 해 가면서 관련 조항을 수정하기보다 해당 금액 전액을 기부하는 것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마코 공주가 품위유지비를 기부하고 미국에서 생활할 경우, 영국의 해리 왕자 부부와 같이 인터뷰를 통해 일본 왕실의 각종 스캔들을 폭로하고 그 대가로 거액을 받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주간지 슈칸신초(週刊新潮, 9월16일자)는 자칫 마코 공주의 폭로로 일본 왕실이 붕괴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