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빗장 꼭꼭 걸어 잠그는 시진핑의 노림수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4 14:00
  • 호수 167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항공편 대폭 감축, 中 입국 시 3~4주 격리 여전
코로나19에 대한 승리로 3연임 굳히려 해

10월28일 중국 SNS에서 한 공무원이 올린 글이 큰 주목을 받았다. 중국철도건설그룹 기업문화부장인 다이룽리가 발표한 ‘루이리는 조국의 관심이 필요하다’가 그것이다. 루이리(瑞麗)시는 중국 서남부 윈난(雲南)성의 서쪽 끝에 자리 잡은 변경 도시다. 루이리는 1980년대부터 미얀마와의 국경무역으로 번성해 왔다. 특히 제가오(姐高)변경무역구는 미얀마 사람과 차량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다이룽리는 한때 루이리시 부시장으로 재임했었다. 그는 SNS에 올린 글에서 “루이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Xinhua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공산당 제19기 중앙위 원회 6차 전체회의를 통해 자신의 위상을 더욱 높이고 장기 집권을 위한 명분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Xinhua

‘제로 코로나’의 희생양 된 루이리

루이리는 필자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2008년 2월 첫 취재를 한 이래 세 번을 더 방문했다. 필자는 현지 상황이 궁금해 루이리에 사는 한족 및 미얀마인 지인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그들은 평소와 달리 통화를 꺼려 했다. 대신 메신저를 통해 여러 편의 뉴스 링크를 전해 왔다. 링크된 뉴스는 중국 매체의 루이리 관련 소식이었다. 루이리는 올해 3월말 한 미얀마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되고 지역 전파가 일어나면서 도시 봉쇄에 들어갔다. 시정부는 모든 시민에 대해 코로나19 검사를 받게 했고, 주민과 차량의 이동을 금지했다.

여기까지는 중국 내 코로나19 지역감염이 발생한 도시에서 흔히 벌이지는 풍경이다. 문제는 루이리의 전면 봉쇄가 너무 지나쳤다는 점이다. 주민과 차량의 이동이 한 달 가까이 금지되면서 경제활동이 올스톱됐다. 게다가 국경을 넘어온 미얀마인으로부터 코로나19 감염이 재발하면서 벌써 네 번째 봉쇄가 진행 중이다. 시 당국이 확진자가 한 명만 나와도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이른바 ‘제로 코로나’ 정책을 실시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주민들은 봉쇄 때마다 수 주일 동안 집에 감금된 채 지내야 했다. 대다수 상점은 영업이 중단됐고, 학교는 4개월이나 폐쇄됐다.

본래 루이리는 미얀마와의 교류로 먹고산다. 지난해 루이리의 대(對)미얀마 무역액은 764억8000만 위안(약 14조1335억원)이었다. 지난해 중국과 미얀마의 전체 무역액 중 62.5%가 루이리를 통해 이뤄졌다. 그런데 강력한 봉쇄정책이 이어지며 루이리는 빈사 상태에 빠졌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27만 명이었던 인구는 반년 만에 20만 명으로 줄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는 목숨을 끊은 한 시민의 소식,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호소 등이 계속 올라온다.

그러나 시정부는 통제 강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11월7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루이리 주민들은 거의 날마다 코로나19 검사를 강제로 받는다”고 보도했다. 한 호출 전용 차량 기사는 “7개월 동안 코로나19 검사를 90번이나 받았다”고 밝혔다. 결국 견디다 못한 루이리시 툰훙(屯洪)마을 주민 200여 명이 11월2일 마을 입구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주민들은 “지난 7개월간 수입이 전혀 없었고 지금 봉쇄도 언제 해제될지 모른다”며 시 당국에 생활비 지원을 요구했다. 중국에서 지역 봉쇄에 항의해 집단 시위가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루이리시 당국이 이렇게 고강도 방역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중앙정부의 방침 때문이다. 시진핑 정부는 ‘제로 코로나’를 기조로 강도 높은 도시 및 국경 봉쇄정책을 펼치고 있다. 만약 한 도시에서 지역감염이 일어나면 시정부 책임자는 옷을 벗어야 한다. 루이리에 첫 봉쇄 조치가 내려진 뒤 4월에도 시 최고책임자인 궁윈쭌 당서기가 해임되어 한직으로 쫓겨났다. 이것이 루이리에서 강경 일변도 봉쇄가 일어나는 배경이다. 문제는 루이리와 같은 중소도시뿐만 아니라 대도시에서도 무지막지한 봉쇄가 벌어진다는 점이다.

 

중국 철수 고려하는 해외 기업들 늘어

10월29일 간쑤(甘肅)성의 성도 란저우(蘭州)시에서 10명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러자 시 당국은 435만 명의 주민을 자택에 격리시켰다. 31일에는 상하이의 디즈니랜드에서 전날 방문객 중 1명이 감염되면서 순식간에 3만3800명의 발이 묶였다. 영문을 모르는 관람객들은 전원 핵산검사를 받고 밤늦게야 음성 결과를 받은 뒤 귀가했다. 11월1일 베이징의 한 초등학교에서도 교사 1명이 확진되자 해당 학교와 주변 학교의 학생과 교직원을 전수검사했다. 학교에 갇힌 그들은 다음 날 새벽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중국의 백신 접종률은 전 세계에서 최상위권이다. 11월10일까지 중국 내 2차 백신 접종자 비율은 78%에 달했다. 그러나 봉쇄의 빗장은 더욱 강해졌다. 이달 들어 중국은 외국인의 입국을 더욱 어렵게 했다. 여름철 한 주에 644편이었던 국제항공편은 11월부터 408편으로 37%나 줄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2.2% 수준으로 급감한 것이다. 주 1158편이었던 한-중 항공편도 현재 주 29편으로 2.5%만 운항하고 있다. 사실상 국경의 문을 잠가버린 것이다. 중국 당국의 이런 조치는 겨울철에 코로나19가 유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국에 입국해도 3~4주 동안 특정 시설에 격리당해야 한다. 입국자의 백신 접종 여부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지난해 중국 당국이 외국과의 교류 증진을 위해 운영했던 패스트트랙 제도는 진작 폐지됐다. 패스트트랙은 입국 시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으면 입국 절차와 격리 기간을 간소화해 주는 제도였다. 이로 인해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외국인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본사와의 긴밀한 협력 아래 사업을 진행하는 외국투자기업은 출장이 빈번했으나, 지금 본국과 중국을 오가는 건 꿈도 못 꾼다.

게다가 중국 당국은 주재원 배우자와 자녀의 비자 발급마저 꺼리고 있다. 따라서 본국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 3~4주나 격리되는 어려움과 경제적 부담 때문에, 1년6개월여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이가 허다하다. 충칭(重慶)에 진출한 한 대만계 기업 책임자는 필자에게 “벌써 2년 가까이 귀국하지 못했다”면서 “임기가 끝나기만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중국에서 철수를 고려하는 외국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전력난과 중국 당국의 각종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사업 환경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국이 ‘제로 코로나’를 고수하는 데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초기에 시 주석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강력한 봉쇄정책으로 지역 확산을 빠르게 종식시켰다. 그 덕분에 시 주석의 위상과 공산당 통치체제의 우월성이 크게 제고됐다. 여기에다 중국은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코로나19 확산 없이 치러 국가 위상을 높이려 한다. 또한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코로나19에 대한 승리를 발판 삼아 내년 10월 제20차 전당대회에서 3연임을 굳히려 한다는 시각마저 불거지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