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주 자존심 싸움에 FA 판돈 ‘들썩’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28 16:00
  • 호수 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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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FA시장 숨겨진 이야기…소속팀 A급 선수 놓칠 경우 ‘투자하지 않는 구단’ 오명 뒤집어써

‘스토브리그’ 정확하게는 ‘핫스토브리그’다. 정규리그가 끝난 뒤 야구팬들이 난로(스토브) 주변에 모여 앉아 선수·구단의 동향 등을 얘기하는 데서 유래한 이 용어는 비시즌 선수 계약과 팀 이동을 칭하는 말이 됐다. 야구 없는 계절, 팬들의 특정 선수를 향한 구애는 그대로 현실이 되기도 하고 좌절감을 맛보게도 한다. FA시장에서는 특히 그렇다.

올해 프로야구 FA시장은 KBO가 FA 자격 선수를 공시한 11월22일 개시됐다. 본격 협상 테이블은 26일부터 차려졌다. 겉보기에 칼자루를 쥔 쪽은 선수 같아 보이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번 FA시장에는 나성범(NC 다이노스), 김재환(두산 베어스), 박병호(키움 히어로즈) 등 거포가 대거 매물로 나왔고, 김현수(LG 트윈스), 손아섭(롯데 자이언츠), 박건우(두산) 등 A급 외야수도 즐비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강민호(삼성 라이온즈), 장성우(KT 위즈), 최재훈(한화 이글스) 등 주전 안방마님과 백정현(삼성) 같은 왼손 투수도 있다. 미국에서 유턴한 양현종 또한 자유계약 신분이다.

사진은 왼쪽부터 나성범, 박병호, 김재환ⓒ연합뉴스

강민호 ‘깜짝 이적’에 손아섭·민병헌 반사이익 얻어

혹자는 코로나19로 인해 FA시장이 얼어붙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하지만, 지난해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 지난해에도 준척급 내야수들이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FA시장은 이렇듯 야구단 재정 상황과는 별개로 진행돼 왔다.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계약이 나오고, 때로는 어부지리 성격의 계약도 성사된다.

지난해 이뤄진 ‘깜짝 이적’은 최주환(두산→SSG 랜더스)·오재일(두산→삼성)이었다. 복수의 구단이 러브콜을 보내면서 각각 4년 42억원, 4년 50억원의 계약이 이뤄졌다. 오재일의 경우 국내 야구 거포 부재가 심각해지면서 몸값이 상상 이상으로 올랐다. 30억원부터 시작한 몸값은 경쟁이 붙으면서 50억원에 이르렀다.

2018년 FA시장의 가장 큰 이슈는 두산 터줏대감이라 생각됐던 양의지의 NC 이적이었다. 양의지는 당시 4년 125억원이라는 파격적인 액수로 팀을 옮겼다. 마이너스 옵션 없는 순수 보장액이었다. 두산은 앞서 김현수·민병헌 등이 FA로 팀을 떠난 전례가 있고, 양의지가 팀 전력의 50%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해 양의지를 잔류시키려고 애썼으나 실패했다. 협상 초기 100억원 이하의 총액을 제시했던 두산은 NC 등의 참전에 부랴부랴 금액을 올렸으나 뒤늦은 결정이었다. 양의지는 이적 뒤 공수에서 맹활약하면서 2020년 NC의 창단 첫 통합우승에 이바지했다. 연평균 31억2500만원의 투자였지만 NC 우승 기여도를 고려하면 결코 아깝지 않은 액수였다.

당시 양의지의 팀 이적으로 공교롭게 김태군이 유탄을 맞기도 했다. NC 창단 멤버로 팀 붙박이 포수였던 김태군은 이듬해 FA 신분이었는데 양의지가 이적하면서 몸값이 확 깎였다. 그는 지난해 1월 4억원의 인센티브를 포함한 4년 13억원에 계약서 도장을 찍었다. 연봉은 오히려 FA 이전보다 3000만원 깎였다. 만약 김태군이 1년 빨리 FA 신분이 됐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FA도 결국 타이밍이다.

김태군과 달리 손아섭은 강민호의 깜짝 이적으로 반사이익을 누린 경우다. 2017년 말 롯데 주전 포수였던 강민호는 삼성과 4년 80억원의 계약을 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적이었다. 강민호 붙들기에 실패한 뒤 부산 팬들의 성토가 이어졌고, 롯데는 부랴부랴 팀 내 또 다른 FA였던 손아섭을 4년 98억원의 거액을 주고 붙잡았다. 손아섭의 몸값이 뛴 것은 롯데 그룹 고위층의 불호령 때문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롯데는 강민호를 놓치면서 남은 돈으로 민병헌을 영입했는데 액수가 4년 80억원에 이르렀다. 원 소속팀 두산의 제시액이 한참 낮았고 시장가도 그리 높지 않았음에도 롯데로서는 ‘강민호 충격파’를 외부 FA 영입으로 만회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흥미롭게도 강민호·손아섭·민병헌 계약은 같은 에이전트가 주도했다. 에이전트가 미다스의 손이었던 셈이다.

구단들이 스토브리그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평판’이다. 구단주의 자존심까지 얽혀 있어 FA시장은 미묘하게 흘러간다. 자칫 소속팀 A급 선수를 놓칠 경우 ‘투자하지 않는 구단’을 넘어 ‘가난한 그룹’이라는 주홍글씨를 떠안기에 롯데의 경우처럼 선수를 뺏겼을 때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기도 한다. 사실 손아섭·민병헌은 쓰임새가 비슷해 둘 중 한 명만 잡았어도 됐다. 하지만 그룹 눈칫밥을 먹으며 1년 살림을 꾸려 가는 구단들에게 내일의 투자를 위한 숨 고르기란 없다.

 

4년을 넘어 6~7년 장기 계약에 자발적 연봉 삭감까지

FA 계약 연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허경민은 원 소속팀 두산과 7년 85억원에 계약했다. 4+3년 계약이기는 하지만 총 7년의 계약은 KBO리그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정수빈 또한 6년 56억원에 계약했다. 이들에 앞서 최정이 원 소속팀 SK(현 SSG 랜더스)와 6년 106억원에 도장을 찍은 바 있다. 6년 계약 시대는 2003년 정수근(6년 40억6000만원)이 두산에서 롯데로 옮기면서 처음 생겼다. 당시에는 6년 계약 자체가 파격이었으나 요즘은 아니다.

6년 이상의 장기 계약은 선수 입장에서는 부상 등을 걱정할 필요 없이 안정된 선수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총액이 수십억원 늘어나면서 선수에게 자부심을 안겨주는 효과도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0년 계약도 종종 나온다. 하지만 장기계약은 구단에는 모험에 가까운 계약이기도 하다. 당장 계약 첫해에 선수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FA 계약도 흔해진 터라 타 구단 이적이 쉽도록 보상액을 낮추기 위해 계약 3·4년 차 연봉을 자발적으로 대폭 깎는 경우도 흔해졌다. 일례로 손아섭의 올해 연봉은 지난해(20억원)보다 15억원이나 낮아진 5억원이었다. 강민호 또한 연봉이 12억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줄어들었고, 황재균 또한 12억원에서 8억원으로 연봉을 낮췄다. 이들 셋은 모두 올해 FA 신분이다.

프로야구 FA제도는 1999년 처음 도입됐다. FA 도입 첫해에는 8억원(3년)의 계약도 크게 보였지만, 현재 A급 FA들은 100억원을 기본으로 깔고 협상에 돌입한다. 야구 시장 규모에 비해 몸값이 턱없이 높아진 경향이 있지만 국내 굴지 기업들의 자존심 싸움까지 걸려 있어 선수 몸값 고공행진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코로나19 시대여도 대박을 터뜨리는 선수는 분명 있다. 곧 6년 이상 다년 계약에 100억원+α의 계약 소식이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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